무려 오백만 원이 넘는다네요
5,770,000 원.
반지 브랜드의 홈페이지에 적힌 가격이다. 심지어 33개의 0.2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박혔다는 고급 모델인 오른쪽 모델은 왼쪽의 반지보다 220만 원이나 더 비싸다. 홈페이지에는 내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싶었다.
결혼할 때 장만했던 결혼반지의 가격은 두 개를 다 합쳐 32 만원이었다. 종로 귀금속 상가를 뒤지고 뒤져 적당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대를 찾아냈다. 내게 귀금속이란 꼭 필요하니 마련하되, 적당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혼수도 냉장고와 침대를 제외한 모든 것은 기존에 각자 쓰던 걸 가져와 합쳤을 뿐이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조차도 선물 없이 가까운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기념하곤 했다. 가끔 꽃을 받은 날도 있는데, 가격대는 2만 원대로 부탁했다. 일 년에 한 번 뿐이라지만, 매해 돌아오는 생일에 거창한 비용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회사, 집, 회사, 집일 텐데 새로운 물건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았고, 이어지는 야근 러시에 입고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기념일이라는 명목하에 꼭 갖고 싶지도 않은 물건에 돈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결혼 9년 차이자, 삼 년 동안의 휴직
무슨 바람이었을까. 저 반지가 가지고 싶었다. 꼭 저 반지여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반지를 사고 싶긴 했다. 그러나 반지를 사러 갈 시간도 보러 다닐 시간도 없었다. 가끔 인터넷으로 찾아보긴 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반지가 없었다. 복직 전에는 나를 위한 선물이자 응원으로 반지 하나 정도는 사고 싶었다. 복직을 하고 나면 나를 위한 쇼핑은, 아니 쇼핑을 위해 낼 수 있는 시간은 없을 테니.
어느 날 반. 지. 추. 천.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자 상위에 랭크되어 있던, 그렇게 본 이 디자인의 반지가 몇 년 동안 본 반지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렇게 비싼 반지가 반지 추천에 많다는 것도 신기하다.)
처음엔 가격을 몰랐다. 이런 장신구를 구입해 본 적이 있어야지. 게다가 결혼반지도 종로에서 두 개 합쳐 32만 원에 맞춘 내가 귀금속을 알아봤자 얼마나 알았겠는가.
그래 비싸봤자 이백만 원 정도지 않겠어?
복직 선물로 삼 년간 고생한 내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하며 호기롭게 백화점으로 갔더란다.
아......
가격은 상상외였다. 무려 내가 예상한 가격의 3배! 아니 내가 예상한 가격도 맥시멈이었지 미니멈이 아니었다고!
물건에 대한 큰 욕심이 없는 나지만, 물건이 눈에 아른거린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아. 어떡하지.
앞으로 펼쳐질 절절한 복직 드라마를 위해 내게 응원의 반지를 부적처럼 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쉽게 좌절하게 되다니. 이 반지를 가지지 못하면 행운조차 내게 안 올 것만 같은 억지가 펼쳐졌다. 반지 검색을 해보니 죄다 결혼식 때 비싼 반지 하나 쯤은 하던데, 나도 그때 거 지금 한다고 치면 안될까? 결혼 9년 차, 직장생활 십 년 차 그간 생일 선물 기념일 선물 하나 안 받았으니 이거 하나는 사도 되지 않을까? 일 년에 선물이 이십만 원이라고 쳐도 십 년에 이백만 원이다. 짱구를 굴려도 답이 안 나온다.
그래 까짓 거.
호기롭게 질렀다.
나를 위한 복직선물이라며. 무언가 첫 순간부터 좌절하고 싶지 않았다는 핑계로. 앞으로 거절과 좌절은 차고 넘칠 테니까. 그렇게 이유를 대며 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비싼 몸값 자랑하시는 반지답게, 주의사항도 많았다. 네 개의 링을 이어 붙인 것이라 사우나에도 들어가면 안 되고. 집안일을 할 때도 흠집을 주의하라고 했다. 김치 등 색이 밸 수 있는 요리를 할 때도 물들 수 있으니 조심하란다. 순간, 당황했다. 갖고 싶었던 반지지만 매일 문신처럼 끼고 다니고 싶었는데 매일같이 집안일을 해야 하는 주부인 나에게 주의사항이 과하다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인 것을.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 사지 않을 주의 항목들이었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나는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반지가 상징적 의미를 가지듯(물론 내게 이 반지는 긍정적 상징이지만), 앞으로의 험난한 복직 생활에 부적처럼 작용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반지는 나에게 왔다. 반지를 받자마자 고급스러운 포장을 개의치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풀어버렸다. 점원 분은 그런 날 보고 꽤나 당황하시는 눈치였다.
저 이 반지가 꼭 끼고 싶었거든요.
내게 힘든 일이 생긴다면,
반지야 네가 좀 물리쳐주렴!
매우 쉽지 않은 가격 대의 반지라고 생각합니다. 자랑글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보상이자, 앞으로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응원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어여쁘게 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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