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가실래요?
1. 물을 끓이며, 내 마음도 끓는다
나는 지금 배신감에 몹시 떨리고 있다.
지난주, 좋아하는 작가님 두 분과 랜선 티파티를 열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에 동시에 최애 티팟과 차 글을 올리기로 한 것.
아니, 그런데...
와 이런 식으로 쓴다고?!
무명독자 작가님은 너무나 영롱하고 아름다운 티팟과 티컵.
정갈한 국화차와 다식까지 세팅하여 맑고 향기로운 글을 올리셨다.
심지어 귀여운 조카 분의 포크까지. 이거는.. 반칙 아닌가?
작가님은 얼마나 더 귀여워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나는 익히 아는 무명님의 사랑스러움에 부들부들 떨었다.
하 그런데 마봉 드 포레 님?
이렇게까지 작정하고 웃기게 글을 쓰셨다고??
약간 웃자고 모인 장기 자랑 대회에서
잠깐만, 하더니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 윈드밀을 추고
사람들이 놀란 사이 팝핀 댄스까지 추는 것과 다름이 무엇인가?
잠깐, 물이 끓는다.
자, 그럼 라면 파티를 시작하지.(부들부들)
2. 항상 스프 먼저
언제나 1번은 스프다.
끓는 물에 스프를 넣을 때 확- 퍼지며 라면 냄새도 퍼질 때 이 순간이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라면은 항상 냄새로 먼저 먹는다.
그 구수하고 칼칼한 냄새는 누구에게라도 없는 입맛도 일으키는 힘이 있다.
스프가 들어가 매콤한 색을 띠게 되면 면 차례다.
반으로 뽀각 부셔서 넣는다.
나는 퍼진 면보다 살짝 덜 익어 쫄깃한 면파다.
라면 국물 속에서 면발이 바삭에서 쫄깃으로 가는 그 과정.
젓가락으로 휘저어 면발을 푸는 손에도 물기가 살짝 맺히며 뜨거워질 때쯤.
라면 끓이기의 하이라이트 차례다.
3. 누가 계란 푼 소리를 내었는가
계란을 냄비 모서리에 콩콩 쳐서 깬다.
이때, 아무리 연마해도 냄비에 흰자가 살짝 눌어붙는 걸 피할 수가 없다.
요리똥손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이다.
계란은 절대! 풀지 않고 살짝만 휘저어 한 곳으로 모은다.
깨트린 계란을 휘휘 저어 온 냄비 전체로 퍼트린다?
나와는 라면 겸상, 겸냄비는 절대 할 수 없으며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도 시전할 수 있다.
라면 속 계란이란 모름지기 한데 모여서
마치 하나의 새 건더기 멤버마냥 있어야지,
온 국물에 퍼져 계란향으로 덮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 확고한 내 라면 취향이다.
4. 최애 라면을 물으신다면
각기 다른 라면 맛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이 없는 바,
솔직히 최애 라면이 따로 있지는 않다.
그나마 10년 전쯤 간짬뽕이 출시됐을 때,
나는 그 맛에 충격을 받았다.
적당한 불향과 매콤 달콤한 스프맛.
국물 없이 자작하게 졸여 먹는 그 라면이 그래도 가장 최애에 가깝다.
그 외에는 물을 콸콸 들이부어 다른 의미의 한강 라면만 만들지 않는다면 내게는 다 맛있다.
그 구수한 라면향이 좋고, 언제든 상비해 둘 수 있어 infj의 초조함을 채워주는 그 저장성도 좋다.
5. 김치 vs 단무지, 승자는?
자, 이제 보글보글 끓인 라면이 완성되었다.
오늘은 그나마 계란이나 버섯도 없어서 순정 라면이다.
비록 그냥 라면이지만 오늘은 비장의 무기가 있어 든든하다.
친정에서 보내주신 갓 담근 새 김치!
아버지와 두 분이서 그 많은 절임배추에 양념 속을 일일이 넣어 만드셨을 새 김치. 그걸 또 멀리 사는 딸네집에 보내신 마음.
그 마음을 비추듯, 저 영롱한 비주얼의 새 김치를 이길 수 있는 곁들임 음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난 라면에는 김치보다 단무지 파다.
대학생 시절. 지금처럼 세련된 만화카페는 있지도 않았다.
시험 기간, 한 달 내내 교육학과 통사론에 시달리다가 시험기간이 끝나면 선배들과 어두컴컴한 만화방에 몰려갔다.
이토 준지 만화책을 보면서 막 끓인 라면과 노란 단무지를 먹을 때면, 그 매콤 구수한 맛에 이제 시험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오곤 했다.
만화방과 피시방은 무슨 영업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집에서 갖은 재료를 넣어 만들어봐도 그 맛이 안 난다.
그래도 한 번씩 끓여보는 라면은, 역시나 중독적인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만인의 기호 식품 그 자체다.
6. 라면 먹고 가실래요?
작가님들의 멋진 티 파티 현장에서 부들거린 것도 잠시.
내게 이런 대단한 글벗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진다.
티파티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 라면.
그 시절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던 이 음식이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라면이 만인의 기호 식품인 만큼 그 사연도 만 가지일 것이다. 나는 오늘 작가님들과 함께 한 라면 파티 사연을 덧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꼬불꼬불, 길게 길게 이 인연이 쫄깃하게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자, 꼬들꼬들한 라면을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이제는 여러분들 앞에 먹음직스러운 새 김치와 함께 놓아드린다.
"라면 먹고 가실래요?"
라면 맛집입니다.
https://brunch.co.kr/@eafbf83b47d94c7/138
이 집 라면 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