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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 주기의 철학

[본선 2R] 급수 전략 대결

by 시트러스

1. 난과 바질 사이

유독 숨 막히는 7월이었다. 재난 문자 없이 지나간 날이 드물었다.

폭염 경보가 일상이 되었고, 특보는 배경음처럼 울렸다.


에어컨 바람에도 열기가 채 식지 않던 교실, 아이들은 퀴즈 끝에 영화 감상에 들떠 있었다.

나도 같이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11층 베란다로 날아갔다.


2. 사랑이라는 오두방정

“얘들아!” 퇴근 후,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베란다 문을 열어젖혔다.

바질들은 여전히 작고 귀엽게 잘 있었다.

촥촥, 이제 인사가 된 분무기 리듬을 따라 물을 줬다.



겉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물을 주라고 하는데,

내가 겉흙이 아닌 이상 만져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사실, 만져 봐도 잘 모르겠다.

“말랐나? 마른 거 같은데!”

“말랐네, 말랐어.”


출근이라도 안 했으면,

하루 종일 오두방정을 떨며 분무기를 들고 있을 게 뻔했다.

아예 낚시 의자를 베란다 문 앞에 가져다 놓고

바질들을 지키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3. 그 손 매뉴얼

그렇다. 아무나 식물계의 똥손이 될 수는 없다.

조바심에 물 준 데 또 주고, 혹시 몰라서 남은 물 다 들이붓기.

햇빛 듬뿍 주자구, 직사광선에 화분 노출시키기.

그러다 좀 강하게 키워야 하나? 일주일 물 공급 중단하기.


이 정도는 돼야 식물계의 줄초상을 책임지는 똥손이다.

다년간의 노하우를 떠올리며 분무기를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막았다.


4. 손길과 눈길

다시 한번 숨을 골랐다. 과연 바질이 지금 내 관심이 필요한가?

이 물을 주는 손길이 필요한 것인가?

바질의 입장도 생각해 보자.


달갑지 않은 관심에 나는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다.

생각보다 교사들은 일상적으로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된다.


“선생님, 예뻐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인사나 관심의 표현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아이들은 냉정하다.

고등학교 때 그들은 나의 화장술까지 평가했다.

“선생님, 오늘 눈썹 갈색으로 그리셨네요?”


5. 찬의 무게

처음 고등학교에서는 일일이 받아치거나 좀 거북한 티를 냈다.

“선생님, 가르마 이상한데요?” “관심 꺼.”

"선생님! 옷이..." "걸어. 쭉 걸어가. 그렇지, 복도 끝까지."


초등학교에 오자, 그때처럼 장난으로 받아치기 힘들었다.

바질싹처럼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시크한 농담은 금물이었다.

외모를 평하는 말에 인상 쓰는 대신, 웃으며 “고마워. 선생님 너무 기분 좋은데?”


베란다를 지나 안방 거울을 한번 쓱 본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자기 검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들이 칭찬으로 꼽은 점은 나를 비추는 평가 기준이 된다.


6. 선생님 지금 진지하다

물론 내가 어디 가서 사람을 치게 생겼다거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뭘 봐?' 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요즘 애들식 농담 아닌가?" 남편이 의혹을 제기했다.

"농담 맞겠지.." 정작 속으로는 간식이라도 뿌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천석꾼 부자들은 쌀알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어쩌다 볏섬이나 들어오면,

몇 줌 안 되는 재산을 이리 세고 저리 세며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좀 인상이 좋긴 하지...'

며칠간 괜스레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6. 손이 들킨다는 것

거울 속, 오른손으로 막은 왼손에 분무기가 들려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왼손잡이다. 단지 이 이유만으로도 어릴 때부터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왼손잡이야?'라는 말부터, 글씨를 한번 써보라거나, 연필을 왜 그렇게 잡느냐는 시선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유심히 보곤 했다.


태어난 대로일 뿐인데,

조금 다른 존재는 언제나 설명하거나, 견디거나, 웃어야 했다.

그때도, 지금도, 관심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의 출발점이었다.


바질에게 분무기를 들이밀던 손이 멈칫했다.

지금 내가 주려는 이 물이, 정말 그 싹에게 필요한 걸까.

내 마음이 간절한 만큼, 그 작은 잎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걸까.


7. 물 뿌리기의 철학

나 역시 누군가의 관심 속에서 자랐다.

때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때로는 평가와 조언으로 포장된.

내가 원하지 않았던 관심도 있었고,

그 관심들이 결국 나를 움츠리게 하던 날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물을 줄 때마다 잠시 멈춘다.

‘지금 이 관심이 정말 필요한가?’

‘이 물을 뿌리는 대상은 바질인가, 내 불안함인가?’


삶에서 내가 배운 물 뿌리기의 철학은

관심이 사랑이 되려면, 멈춤과 망설임이 먼저라는 것.


상대방에게 필요하지 않은 관심은 촉촉한 흙이 아니라

때로는 뿌리를 썩게 하는 과습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왼손이 뿌리려 할 때, 먼저 한번 막는 오른손이 되자.


사랑은 물처럼 주는 게 아니라, 흙처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하지 않는 것'이 진짜 돌봄이 된다.




[오늘의 분무기 한 마디]

"천석꾼은 물을 퍼부어도 걱정 없지만,

한 줌의 흙으로 키우는 사람은

한 방울도 망설인다.


물만 뿌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강약, 중간약, 때로는 쉼표.


모든 건 결국,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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