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한 잔
해가 뜨기 전
구름 사이로 흘러내리는
금갈색 따스한 향
가을비 몰려오기 전
회청색 유약 안으로 떨어지는
묵직한 숯빛 드립
맑게 익은 홍시 같은
저녁 하늘의 크레마
혹은, 능소화빛 구름 얹은
노을색 라떼
설탕처럼 흩어진
풀벌레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
조각난 갈색 침묵들
티스푼으로 마음을 재량할 때,
모든 것이 멈춘 듯
작은 잔 속으로
세상이 침몰할 때
나는 이런 색들을
수집하러 나선다
에스프레소 부은 나뭇길을 지나
낙엽이 깔린 길 위로
뚜벅뚜벅, 탄 향을 따라 걷는다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휘—휘,
컵 가장자리 따라
휘파람 같은 김을 불며
나는 걷는다
또, 시간 속을 걷는다
그리고 내 자리로 돌아와
좋아하는 온도
색을 모은 잔을 감싸면
세상은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따뜻하게
다시, 돌아간다
나는 세상을 들어
가을 한 잔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