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MRI를 찍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경우에 퇴사를 할까?
일이 성격에 맞지 않을 때?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 때?
연봉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나만의 일(사업)이 하고 싶을 때?
..
지금까지 여러 번 이직을 경험했고 15개월 간 육아를 위한 공백기간도 있었지만, 이번엔 정말 이상한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바로 뇌 MRI 사진을 찍게 된 것.
돈 당장 안 벌어도 되지 뭐 어때?
5개월 전인 2025년 2월로 돌아가보면 난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모자 브랜드를 한답시고 준비했는데, 15개월 동안 '준비만' 하며 정작 시작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돈은 당장 벌지 않아도 돼'라는 식의 정신승리에 가까운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제품 런칭 시점은 자꾸만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혼자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없고, 정량적인 아웃풋 없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없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고, 결국엔 '무엇이든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야 나라는 존재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돈만이 이유였던 건 아니다. 그곳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똑똑하고, 일 잘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소위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 그들과 동료가 되어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고, 숨 쉬고,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거 같다.
고민 끝에 본부장님에게 연락을 드렸고,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일, 10년 넘게 해온 컨설팅 업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처음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꽤 즐거웠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명확한 과제가 주어졌고, 그에 맞는 일을 하면 됐다. 출근해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고 하루를 마친 뒤 퇴근하면 되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는 순간에도 나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그 사실 만으로도 뭔가 더 유익한 사람이 된 거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갔다. 숨 쉬는 게 답답해지고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엔 오랜만에 일을 시작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신분당선, 9호선, 6호선을 거쳐 출퇴근을 했는데, 특히 사람이 많은 신분당선과 9호선에 몸을 밀어 넣을 땐 마음의 각오가 필요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열차조차 사람이 많아 타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지하철 밖을 스쳐 지나가는 불빛조차 눈을 자극해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게 매일 사람들 틈에 숨이 막히듯 끼여 두 손을 어깨에 올리고.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천장을 향해 들고, 흔들리는 열차에서 중심을 잡아야 했는데, 그런 날들이 계속되며 증상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신경과를 가야 하나 정신의학과를 가야 하나?
병원을 가려고 했지만 이런 증상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도대체 어느 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의사 지인들과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꽤나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 전화를 했는데 결론적으론 신경과, 그 이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정신의학과 진료를 보기로 결정했다.
동일한 증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으면 신경과에 먼저 방문해 보길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다. 입원을 하고 뇌파검사, 혈압검사, 열 사진, MRI 촬영 등의 검사를 받았는데, 진료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해석이 생각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사진으로 직접 확인을 시켜주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줬기 때문에 신뢰를 가지고 치료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건 뇌 MRI 사진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유럽 리그에서 한쪽 다리 없이 축구를 하는 손흥민 같다고 했다.
공부를 잘할 수 없는 뇌, 머리 쓰는 일을 할 수 없는 뇌
초등학교 때 뇌졸중의 영향으로 언어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좌뇌 영역에 데미지가 있는 상태였다. 사진을 보면.. 정말 없었다. 듣고 정리하는 능력, 기억하는 능력, 말하는 능력 부분을 처리하는 영역에 데미지가 있었다. 난 공부를 해서 이만큼 이루었고(게다가 수능 언어영역은 1등급이었다.) 지금은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일까.
정말 미친 노오력으로, 그리고 선천적인 예민함과 똑똑함으로. 그리고 손상된 곳 주변 뇌와 우뇌의 캐파까지 끌어다 써서 겨우겨우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원래는 불가능하단다. 양쪽이 다 멀쩡했으면 한강 작가가 되었을 거란다. 의사 선생님이 엄지손가락을 드셨다. 그동안 듣고 이해하고 정리하고 말하는 부분에서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그런 부분을 커버하려 발버둥 쳤지만 쉽지 않았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다.
내 뇌가 지금까지 참 고생했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잘할 수 없는 일을 주인이 요구하니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발버둥 쳤겠구나. 그런데 난 얘한테 아직 부족하니 더 노오력을 하라고 했다. 뇌한테 미안했다.
입원한 병상 위에서 42살 아재의 진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 그렇게 공부하고, 여러 자격증을 따 낸 후에 주 100시간씩 일하고, 출퇴근시간이 아까워 고객사 근처 고시원들을 전전하고.. 그런데 내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일을 그만해야 하는 걸까. 아쉽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정말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속 시원하기도 했다. 아마도 '스스로 퍼포먼스에 만족하지 못했던 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 같다. 인풋만큼 아웃풋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다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알았으니 트레이닝하면 되지 않을까'
'아닌가 이건 미련인가'
이런 생각들이 천천히, 집요하게 기어올라왔다.
하지만 난 탁월하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죽어라 노력해도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일을 계속 끌고 가는 건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퇴원 후, 회사와 계약 종료를 했다. 나는 그렇게 완전한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제, 뭐 먹고살아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