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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Apr 07. 2024

놓을 수 있는 것은 시간뿐,

마음만은 놓을 수 없는 이에게 보내는 장

당신이 여전히 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 여전히 못 견디게 참담하다는 진술뿐이래도, 끝끝내 살아있으므로 감사합니다. 지독하게도 봄이 핍니다. 가혹하게도 삶은 살아집니다. 그것이 삶인 당신과 그런 당신이 매년 참 다행인 나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피어싱을 뚫은 지 얼마 안 된 자리를 무심코 건드렸을 때의 고통, 피맛 나는 고통, 차라리 칼날로 귓등을 내리쳐 떼어버리고 싶은 괴로움, 단 한순간도 머무르게 두고 싶지 않은 괴로움, 그러나 당장 쇠붙이를 빼버린다 해도 뚫린 자리를 메울 수 없는 현실, 선명히 텅 빈 구멍과 언젠가는 아물 것이란 해이한 약속만 남아있는 현실. 조잡한 비유임을 압니다. 헤아리고자 함이 아니라 그저 맞대기 위함이니 노여워 마세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


참으로 떫고 텁텁한 문장입니다. 광활한 야구장에서 똑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떼로 외칠 법한-말하자면 응원 구호처럼 느껴지는 문장이지 않습니까. 가끔은 일종의 염원이라 여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바에야 '부디 살아주세요' 하는 간청이나, 그저 침묵하는 목례가 되려 더 친절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마땅한 위로 한 마디 쥔 것 없이 방문하는 나에게 말없이 한 덩이의 슬픔을 잘라 나누어주는 당신은 이리도 사려 깊은데.


당신이 뜨거운 차를 내리는 동안, 나는 퍽퍽한 슬픔을 조금씩 덜어 먹었습니다. 당신 몫은 너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산 사람'입니까. 자꾸만 죽은 사람의 꿈을 꾼다는 당신은. 탁자 아래 쭈그려 숨은 채, 찬 바닷물에 반쯤 잡아먹힌 채, 잠긴 불길 속에서, 사람더미 틈에서 자꾸만 깨어난다는 당신은. 과연 산 사람입니까.


아야지, 하는 말이 과연 적합한 지 나는 통 모르겠습니다. 손목을 스치고 지나간 말에서 쓰디쓴 화약 냄새가 났습니다. 찻잔을 들어마시는 당신의 손등에 굵은 핏줄이 팽팽합니다. 그러쥔 장면들 중 그 어떤 것도 영영 놓지 못할 이었습니다. 놓을 수 있는 것은 시간뿐, 살게 되는 이유라면 아마 그것일 텝니다.


시간을 오래 들여 찻잔을 비우고, 반나절 치의 슬픔을 삼십 번, 오십 번, 조각조각 씹어도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낮이 무감히 노곤해지면, 나머지 슬픔을 밀봉해 두고 당신은 흰 천과 오색 실을 꺼내었습니다. 십자수는 읊조리는 대신 꿰매는 기도이자, 끄적이는 대신 인화하는 서신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무수히 많은 낱장의 하루들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수놓겠습니까. 기억해 내기 위한 것을 그리겠습니까, 기리기 위한 것을 그리겠습니까. 번번이 선택입니다.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나는 모든 아침이 투쟁인 당신에게.


지극히 사소한 일상의 그 어떤 한 조각도 사치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를테면 아침 밥상에 단백질이 있는지 꼭 확인해 주세요. 바지 무릎이 해지지 않았는지도요. 간밤에 이루지 못한 잠을 다음날 오후쯤에는 다 먹어치우시고요. 해가 반짝 나면 빨래만 널지 말고 몸뚱이도 구석구석 말려주세요. 눈물은 그치지 않을지라도 곰팡내는 면하도록 말입니다.


오늘밤에도 당신은 향 한 개비를 다 피울 것입니다. 창문을 여는 일을 잊지 않았겠지요. 향내를 멀리멀리 보내주려면요. 향의 꼬리가 길고 집요해서, 기필코 하늘 끝에 닿을 듯합니다. 천국 하나를 다 짓고도 남겠어요.


자욱한 어둠 속에 당신은 깊이 잠겨 있습니다. 한 발짝 뒤에서, 감히 함께 평안을 빌어도 되겠습니까. 하나는 당신을 위해, 다른 하나는 당신이 그리워하는 천국을 위해.


오늘은 부디 덜 사나운 꿈이 찾아오기를 기도합니다. 미처 걷어내지 못한 모든 절망이 사랑으로 수렴하는 꿈을 꾸기를.


그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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