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윤효 Apr 28. 2024

내 사랑, 고여사!

1. 사랑은 물살을 타고....

2020년 여름 어느 조용한 토요일 오전이었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들이 부모님 집 주위를 서서히 둘러쌓고, 마을 분들은 이미 피신을 한 상태였다.


소를 키우시는 아버지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끓여 놓은 라면이 다 퍼지도록 집으로 들어오시지 않아 애가 탄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빨리 라면 한 그릇 먹고 다른 사람들처럼 차량을 타고 피신을 하기로 하셨는데 소들에게 빠지신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으니 엄마의 맘은 타들어 간다고 하셨다.


급한 마음에 아버지께 전화를 들이고 구례 지역 향후 일기예보를 살펴보았다. 이미 마을의 절반이 물로 잠겼고, 급한 우리 5형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구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군인인 둘째 오빠는 인근 삼대대 대대장과 연락을 취했고, 서울 큰 오빠는 구례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다급한 나는 부산 119로 전화를 걸어 부모님 구조 요청을 했었다. 그 시간 구례는 물바다로 구조를 기다리는 다급한 전화 때문에 119조차 계속 통화 중이었다. 부모님은 이미 마을을 덮어 버린 물 때문에 차량으로 이동하시려는 계획을 포기하기고, 우리 집 지붕 아래 빈 공간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통화는 되지 않고, 뉴스에서 나오는 속보는 구례의 물난리를 실시간 보도를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양정마을인 우리 집에 2번의 물난리 피신 기억이 있다. 그중 한 번은 다행히 집 마당까지만 물이 차서 큰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 인숙이 집은  한지로 된 안방의 문 중간까지 진한 흙 자국이 있었다. 두 번째 물난리의 기억은 마치 영화의 한편 같다. 섬진강이 넘쳐 어른들과 아이들이 흘러 넘실거리는 물결을 읍내에서 지켜보았었다. 떠내려 가는 돼지들과 가전 도구들 그리고 정체 모를 물건들이 물결 따라 어디론가 행렬하듯이 흘러내려갔다. 주위 어른들의 한숨과 막연한 두려움이 아이들에게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걸 느끼 도록 해주었지만 그 이후 어떻게 수습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부모님이 마을에서 나오시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오빠와 작은 오빠는 인맥을 동원해 두 분을 구조할 다양한 방법을 다른 도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펼쳐 나갔다.  오후 늦게 부모님이 보트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큰오빠의 처갓 집으로 이동 중이시라는 소식을 듣고 잠시 안도의 숨을 골라 쉬었다.


성이 고씨인 엄마를 가끔 막내 동생이 '고여사 님~ '이라고 부르곤 했다. 막내라 엄마에게 더욱 살갑게 대하는 녀석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딸이지만 애교나 살가운 성격이 없어 늘 엄마와 나의 거리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듯했다. 장녀인 언니는 엄마와 친구처럼 서로 간의 삶의 고단함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지만 나는 늘 내 안의 문제를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서 해결하기 위해 끙끙 되었다.


엄마는 내게 큰 산 같은 사람이다. 혼자서도 척척 무엇이든 해내는 여장부 같은 기질과 불면증으로 수많은 밤들을 홀로 치르는 전쟁에 있어서도 결코 나약한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주 가끔 엄마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결코 일을 손에 놓으시지는 않았다. 집 주위의  800평이 넘는 땅에 다양한 채소를 가꾸며 집안일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 대신에 소까지 키우시며 자신의 몸이 양초처럼 타 들어 가심을 모르셨다.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자식들에게 꼭 잘 가르쳐야겠다는 그녀의 일념이 어린 나에게도 전해 졌다. 책을 사거나 학교에 관련된  모든 일에 단 한 번도 망설이시지 않으셨다. 반면, 자신을 위한 우유 한잔도 아끼시는 모습을 부모로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 한 이기적인 딸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고 생활의 고단함이 물결처럼 밀려들어와도  남편의 긍정적인 말과 위로가 삶의 고단함 속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남편과 다섯 아이들 그리고 홀로 지어낼 밭과 소들을 어떻게 견뎌 내셨을까? 단, 한 명의 지원자 없이 스스로의 신념으로 어려운 시절 바람 앞의 갈대처럼 무너지고 일어서고를 수십 번 해낸 그녀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두 다리 무릎 관절 수술,  어깨 인대 수술, 갑상선 그리고 고지혈증 다양한 증세들이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아낸 그녀 삶의 상처들이다.


일요일 오전에 다행히 물이 빠져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하지만 물이 남긴 상처가 집안 곳곳에 있었고 나이 드신 부모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서울 오빠를 제외한 부산, 대구에 사는 4형제는 수건과 간단한 구호품을 들고 집을 향했다. 집에 도착하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이미 엉망이 된 도로는 진입이 불가한 곳도 있었고, 곳곳에 흙탕 물들이 도로변 집들의 벽에 인장을 찍어 두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흘러들어와 자신을 놓아 버린 물건들이 마을 곳곳을 장악하고 있었다. 사돈어른과 엄마는 수건을 가지고 집 밖에 있는 저장고 안을 닦고 앉아 계셨다. 그 수척함이 가슴 깊은 곳에 못처럼 꽂히는 듯했다. 집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엉망이었고 쓸 수 있는 물건도 거의 없어 보였다.


중요한 건 당장 부모님이 계실 공간과 다들 일을 하고 있었기에 수해 복구를 주말밖에 도와 드릴 수밖에 없는 시간적 제한이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무사하신 것과 40마리 소들이 단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버텨 준 것이 다 조상님 탓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금도 좌절하신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다.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집과 외양간이 물결 속에 일렁일 때 아버지를 기다리셨던 어머니의 그 애타는 마음이 모든 물질을 사소하게 만드셨을 것이다.


물이 소들 목 언저리까지 올라오니 겁이 난 소들은 구원의 소리를 질렀고 80이 넘으신 아버지는 팬티 바람으로 차가운 물속에서 소들의 목줄을 하나하나 풀으셨다. 한 시간 동안 아버지가 아끼시는 소들을 살려 내기 위해 진흙물속에서 사투하신 모습을 생각하니 감사함과 아버지의 용기 그리고 엄마의 말처럼 조상님의 도움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주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가서 수해 복구를 도왔다. 어려움 속에서 우리 다섯 형제는 똘똘 뭉쳐 최선을 다해 집안 구석구석을 장악하고 있는 진흙들을 닦아 냈다. 벽에 걸린 새로 산 티브이는 다행히 쓸 수 있는 상태였고 넘어진 냉장고도 잘 일으켜 안과 밖을 닦다 보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며 아버지의 한 마디기 내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뒷 밭에 가셔서 엄마가 홀로 우 시드라는 말에 그 강인한 산 같으신 우리 엄마도 여린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 있어 엄마는 언덕이다. 그 언덕이 삶의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음을 안다. 단 한 번도 나약함을 보이시지 않으셨던 분. 홀로 우셨을 어머니를 보니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제부터는 미루지 않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나실 때면 엄마가 커온 시절 그리고 어려운 시절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엄마의 역사가 담긴 글을 써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엄마는 우리 다섯 형제에게는 이미 영웅이다. 그분의 삶을 기록해 드리고 엄마가 살아오신 그 세월들이 얼마나 멋진 인생이었는지 알려 드리고 싶어 그녀의 삶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사랑이 물살을 타고 우리 다섯 형제에게 다가왔다. 지금 우리 곁에 계신 부모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고, 또한 지금이 바로 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대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겸손을 배운다.세상사 맘대로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쯤우리는 오만이라 형체 모를 그 감정을 살며시 내려놓는다.외모에서 세월의 흔적이 하나둘씩 나타날 때,그때서야 지나온 삶의 길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지나온 길 만큼 더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 보다 짧은 길이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길 위를 걷는 나그네 같은 우리는 실수투성이로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성장한다. 넘어져야 안다. 그동안 얼마나 안전한 길을 걸어왔는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대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겸손을 배운다.

세상사 맘대로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쯤

우리는 오만이라 형체 모를 그 감정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외모에서 세월의 흔적이 하나둘씩 나타날 때,

그때서야 지나온 삶의 길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지나온 길 만큼 더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 보다 짧은 길이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길 위를 걷는 나그네인 우리는 실수투성이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성장한다. 

넘어져야 안다. 그동안 얼마나 안전한 길을 걸어왔는지......


<우리집 밭에 핀 복숭아 꽃!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