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동지를 찾습니다.

내향형 엄마의 육아공동체 만들기

by 책봄
안녕하세요. 저는 4살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가정보육 중인데 또래와 만날 기회가 없어 너무 아쉬워요. 내년까지는 집에서 보육할 생각인데 비슷한 생각 가지신 분 계시면 정기적으로 만나면 어떨까요? 집이든 야외든 키즈카페든 어울릴 수 있는 친구 구해요. 관심 있으신 분 댓글 주세요^^


육아카페에 글을 남겼다. 다른 사람 글만 보고 댓글도 잘 달지 않는 내가. 나에게는 큰 용기를 낸 일이었다. 더욱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만나자는 글을 올리다니!! 아이가 없었다면 절대 했을 리 없는 일이다. 아이가 자꾸 나를 변하게 만든다.


'진짜 연락이 오면 어쩌지? 아니지. 댓글이 하나도 안 달리면?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차라리 다행인가?'


글을 올려놓고 두근거렸다. 만나자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몇 시간 뒤 댓글이 달렸다.


- 반가워요. 저도 4살 아들을 키워요. 만나고 싶어요~

- 안녕하세요. 괜찮다면 저도 함께 하고 싶어요^^


반가웠다. 떨리기도 했다. 두 사람이나 관심을 보이다니.


'만나면 어색하지 않을까?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렇다. 나는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 괜한 일을 만든 건 아닐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댓글까지 받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에게 채팅을 보냈고 며칠 뒤 동네 키즈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두 아이 모두 활발한 남자아이였다. 키즈카페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를 탐색하며 뛰어다녔다. 우리는 각자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인사만 겨우 나눴다. 부끄럽거나 낯을 가릴 시간도 없었다. 각자 아이를 챙기기에 바빴다. 얼마나 놀았을까? 낮잠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는 보채기 시작했다. "카톡 드릴게요."라고 한마디 남기고는 부리나케 키즈카페를 빠져나왔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모임을 주선해놓고 흐지무지 끝내버린 것 같았다. 잠이 든 아이 곁에 누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몇 마디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괜찮으시다면 자주 만나면 좋겠어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네. 좋아요^^ 그런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렇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통성명도 나누지 못했다. 아이 이름만 겨우 들었다.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이런 이상한 만남은 처음이다. 함께했지만 따로 노는 만남. 그런데 나는 이런 만남이 편했다. 그래. 나는 내향적인 사람. 첫 만남부터 많은 것을 공개하고 섣불리 다가오는 것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친해지는 것이 더 잘 맞았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다시 만났다. 한가한 평일 오전 시간을 이용해 나들이도 다녔다. 자주 만날수록 아이들끼리도 가까워져서 어떤 날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온라인에서 만남을 가진 것은 이후 두 번이나 더 있었다. 예민한 아이들의 자유놀이 만남, 가정 보육하는 아이들의 놀이터 모임이었다. 물론 매번 잘 노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잘 노는 날 보다는 나에게 딱 붙어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또 항상 유쾌한 만남만 있지는 않았다.


한 번은 함께 만난 엄마가 우리 아이에게 계속 "야! 야!"라고 부르는 거다. 웃으며 아이 이름을 다시 알려주었는데도 그 엄마는 급하면 또 "야!"라고 불렀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싫었다. 그런 만남은 조용히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카톡방을 나왔다. 온라인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자발성'이었다. 오며 가며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아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점이 오히려 편했다. 그렇게 모임을 이어나갔다.


또 무엇이 모임을 이어나가게 했을까?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친구가 필요했다.


첫째, 외로웠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지내다 보면 가장 그리운 것. 성인과의 대화다. 하루 동안 느낀 감정, 아이와의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나누고 공감해 줄 사람이 절실했다. 주로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남녀의 차이일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육아를 하지 않으니 사소한 일까지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회사에서 시달리고 온 남편도 집에 와서는 좀 쉬고 싶었을 수도.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남편이 내 마음대로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면 된다. 육아에 공감해 줄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섰다. 이름하여 '육아 동지'.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1명이라도 잘 만나 두면 남편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된다.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공감대도 쉽게 형성되고 서로의 정보도 나눌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는 내가 먹고 싶은 것 1인분을 당당히 시키고 아이 음식을 하나만 시켜서 두 아이가 나눠먹게 두면 된다. 이렇게 육아 동지와 하루를 보낸 날은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낮 동안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하고 밥도 든든히 먹어두었으니 남편에게 토로할 불만도 별로 없었다.


둘째, 서로 보고 배울 점이 있었다.


아이는 모임에 나가면 안 보는 척, 안 노는 척 하지만 상황을 다 보고 있었다. 누나, 형이 어떻게 노는지 다 보고 있다가 나중에 혼자 따라 했다. 어느 날은 우리 아이처럼 조용히 혼자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운이 좋으면 둘이 잠깐씩 놀기도 했다. 동지애를 느끼는지 혼자 놀고 있는 아이한테는 마음을 좀 열었다. 나도 많이 배웠다. 아이를 대하는 방법, 적극적으로 아이와 함께 놀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참여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매번 새로운 다짐을 했다.


셋째, 아이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다.


육아 동지를 찾는 과정에서 아이의 친구 사귀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절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멀리서 다 관찰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친구와 전혀 놀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재미있었다고 말할 때가 있었다. 무엇이 재밌었냐고 물으면 아이는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가끔은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친구의 옷차림이나 사소한 말, 행동까지도 기억하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를 위해 엄마를 위해 깨고 나오길...


이후 아이는 기관에 갔고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 아이가 기관에서 혼자 노네요."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만약 아이가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마냥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선생님, 아이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너무 강요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시면 금방 적응할 거예요."


오히려 선생님을 안심시켰다. 실제로 관찰의 시간이 끝나면 아이는 어김없이 자신과 비슷한 친구를 찾았다. 잘 어울릴만한 친구를 찾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친해졌다.


코로나가 터지고 지방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그때 만났던 온라인 모임은 모두 끝이 났다. 그중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이런 모임이 없었다면 그 외롭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온라인 모임에 성공하는 소소한 Tip>

1.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지역맘 카페, 육아카페보다는 특징 있는 카페를 공략한다.
- 예민한 아이를 둔 엄마 모임, 가정 보육하는 엄마 모임 등은 실제로 성공 확률이 높았다. 예민한 엄마들은 섬세했고 가정 보육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헌신적이라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2. 오프라인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온라인 단톡방 모임을 활용한다.
- 책 육아 모임, 7살 외동아이 모임 등 온라인에 모집 글을 올리면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린다. 이렇게 단톡방을 운영하다가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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