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놀이터에도 잘 못 갔다.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만나는 사촌과도 매번 어색했다. 오죽하면 동갑내기 조카는
"에휴, 언제까지 기다려야 나랑 놀거야!"
라며 서운해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얼굴이 화끈거리는 때는 한 달에 한번 시댁에 방문할 때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항상 문 밖에 나와 아이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가 내리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반기시지만 아이는 문 앞에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고개만 겨우 끄덕이고는 곧바로 장난감이 있는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는다. 사과는 엄마 몫이다.
아이의 사회성은 늘 숙제였다. 아이에게 사회성이란 대체 뭘까? 어떤 사람은
"엄마가 너무 끼고 키워서 그래" 라든지 "어린이집에 보내면 좋아져요" 라며 쉽게 조언했다.
나에게는 별로 설득력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낯을 가리는 아이를 기관에 맡겨봤자 내가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여러 책을 읽고 비슷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교류하며 나는 내가 사회성과 사교성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교성
: 남과 사귀기를 좋아하거나 쉽게 사귀는 성질 (출처:표준국어대사전)
사전에 나와있는 사교성의 정의다. 흔히 말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아이는 사교성이 좋은 아이다. 하지만 사교성이 좋다고해서 꼭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친구가 좋아서 안아주고 손을 잡으려 하지만 상대는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친구를 도와주려고 한 행동이 오해를 사기도하고 같이 놀고 싶어서 한 장난이나 말 때문에 오히려 친구와 멀어지기도 한다. 아직 사회생활의 경험이 충분치 않고 발달단계상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아이일 때 흔히 있는 일이다.
사회성이라는 말은 좀 더 포괄적이다.
사회성
: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관계의 원만성 따위를 말한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집단의 규칙과 규율을 이해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일,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여 행동하는 일 이런 것들이 사회성이라는 말에 좀 더 어울리는 설명일 것이다. 그렇다. 아직 어린아이가 갖추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사교성이 타고난 아이의 기질이라면 사회성은 후천적 학습으로도 어느 정도 길러질 수 있는 요소다.
무릎을 탁 쳤다. 우리 아이는 사교성을 타고 나지 않은 것이지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는 아니었다. 나 역시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사람을 사귀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잘 발달된 사회성 덕분이었다.
그이후로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주기 위해 내가 노력하고 있는 일은 세가지다.
첫째, 규칙과 규율을 가르치는 일. 하지만 때로는 예외도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일.
우리 아이는 한 번 정해진 규칙은 무조건 지키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그야말로 FM 이다. 이 성격의 가장 큰 단점은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극성이던 때, 유치원에서는 수시로 손소독을 시켰다. 원래 피부가 약했던 아이는 잦은 손소독으로 결국 손가락 피부가 벗겨졌다. 피부과에서는 손소독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는 "모든 아이들이 하는 규칙"이라며 계속 하겠다고 했다. 이 아이를 설득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처방받아온 연고를 손에 발라주며 왜 손소독을 하면 안되는지, 계속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었다. 손소독을 하지 않는 대신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 된다는 대안도 제시해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선생님의 반응도 설명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등원하며 원감선생님께 "피부과에서 손소독을 하지 말라고 하세요." 라고 직접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알겠습니다"하는 원감선생님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안심하고 규칙에도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드렸다.
둘째, 또래와의 소속감을 느끼고 함께 놀이할 수 있게 하는 일.
일단 아이가 편안해 할 수 있는 또래를 찾는게 가장 중요하다. 행동이 크지 않고 돌발행동이 적은 아이, 말로 많이 노는 친구를 찾았다. 그런 친구와 일대일로 놀 수 있도록 자주 만났다. 기꺼이 우리집을 개방하고 친구가 좋아할만한 간식도 넉넉히 준비해두고 기다렸다. 일대일 관계가 편안해질 때쯤 일대다수로 점점 확대하며 놀이의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한번은 친구와 키즈카페를 가기로 한 날, 갑작스럽게 처음 보는 아이들과 합류하게 되어 놀게 된 적이 있었다. 아이는 키즈카페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친한 친구와는 놀고 싶지만 낯선 친구들이 있어서 싫다고 했다. 어찌어찌 설득해서 키즈카페까지는 갔지만 아이는 자꾸 이상한 핑계를 대며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내가 나설 때다. 말로 노는 것보다는 몸을 쓰며 노는 편이 덜 어색하다. 트램폴린에서 신나게 뛰며 아이를 대신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넌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무슨 반이야? 뭐 좋아해?”
아이가 궁금해할만한 정보를 대신 수집해주고 아이가 기분 좋은 틈에 슬쩍 자리를 피했다. 이 방법이 성공할 확률은 50%. 다시 내 옆에 와서 앉아있더라도 아이를 채근하지 않았다. 일단 처음 보는 아이와 어떻게 놀면 되는지 엄마가 직접 보여주었으니 아이가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다보니 이제는
"엄마, 나 오늘 00이랑 처음 만나서 어색했는데 같이 놀아보니 괜찮았어. 다음에 또 만나고 싶어.”
라고 말해주는 날도 더러 있다.
셋째,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일.
엄마가 가르쳐주기 가장 쉬운 부분이기도 어려운 부분이기도하다. 일상에서 엄마와 아이는 늘 감정을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아이는 같은 행동을 해도 혼이난다. 엄마가 기분 좋은 날은 혼날 만한 행동을 해도 웃으며 넘어가기도 한다. 일관성이 없는 엄마라며 한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인간이라서 기분에 따라 행동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이에게 설명해준다. 오늘 내 기분이 어떤지,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엄마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화가 난다'가 아니라 서운한건지, 당황스러운건지, 억울한건지 감정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아야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선 소리부터 지를 때가 훨씬 많다. 일단 소리를 질렀더라도 감정이 누그러지면 꼭 이 부분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한다.
“좀 전에는 미안해. 엄마도 세탁기가 고장나서 당황스러웠어. 그런데 00이가 자꾸 놀아달라고 하니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답답하고 화가 났어. 그럴 때는 00이가 잠깐 기다려주면 좋겠어. 엄마가 급한 일을 먼저 해결하고 놀아줄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럼 아이는 대부분 엄마의 뜻을 눈치챈다.
아이들은 자란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자란다. 지금 고민하는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해결된 듯 보일뿐 안에서는 곪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이제 아이의 사회성을 두고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은 하지만 '우리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나?' 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결론을 찾았기 때문이다.
고민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을 찾거나 전문가의 유튜브 강의를 보거나 믿을만한 지인에게 상담을 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고 넘어가려 노력한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아이는 한뼘 더 자라있고 고민하던 문제가 자연스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같이 자란다. 아이와 함께 자라자.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자라는 엄마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