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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05. 2022

미니멀 살림 노하우

살림을 줄여야 내 시간이 생긴다. 

“여보, 나 어깨 좀 주물러줘. 오늘 일 너무 많이 했나 봐."

"뭐 했는데?"

"하긴 뭘 해. 집안일이지. 힘들어 죽겠어."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요리는 사 온 거 데우기만 한 건데 그렇게 힘들어?”     


 그러게 말이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청소는 청소기가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한 게 맞다. 그런데 나는 분명 힘들다. 왜 그럴까? 어째서 집안일이라는 건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도 티가 나지 않는 걸까?

      

 생각해보면 ‘청소, 빨래, 요리’ 한마디로 정의되는 일들이 사실은 꽤 세분화되어 있다. 청소는 화장실, 베란다, 부엌, 침실, 옷방 등 장소별로 해야 할 일이 다르다. 화장실은 변기, 욕조, 세면대, 바닥에 따라 사용하는 세제의 종류와 도구가 다르고 베란다는 창틀, 바닥, 유리마다 청소방법이 따로 있다. 침실이나 옷방도 침구정리, 옷 정리부터 먼지 털기 등 완벽하게 하려고 치면 끝도 없다.      

 빨래는 어떤가. 색깔별로 옷을 구분하여 세탁기에 넣는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건조기에 돌릴 옷과 아닌 옷을 구분하여 건조기를 돌리고 나머지는 건조대에 넌다. 그전에 건조대에 널려있는 옷가지를 먼저 잘 개어 가족별로 서랍에 넣어두어야 한다. 가끔은 이불, 실내화, 운동화를 빨아야 하고 더러워진 아이 양말은 손빨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세탁기에 돌릴 수 없는 옷은 따로 모아 세탁소에 맡기는 일도 모두 ‘빨래’의 일부다.

 요리라고 사정이 다를까. 먼저 메뉴를 선정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한다. 레시피를 검색하고 요리를 한다. 조리도구를 씻고 주방을 행주로 한번 닦아준 후 행주는 빨아서 널어두고 더러워진 가스레인지 위를 닦는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준비한 요리로 식사를 챙기고 식사가 끝나면 다시 설거지를 하고 행주로 식탁과 싱크대 주변을 다시 한번 닦고 행주를 빨아 널어둔다. 다음 식사메뉴를 정하고 식재료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은 미리 구입해둔다.      


 당장 생각나는 일들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이렇게 보니 왜 바쁘게 움직여도 티가 나지 않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집안일이라는 것은 굉장히 작은 일들의 연속이다. 시간이 크게 들지는 않지만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날에는 다음 일들에도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건조대에 널린 옷을 미리 걷어두지 않으면 세탁기가 다 돌아갔을 때 옷을 널 수 없고, 식재료를 미리 구입해놓지 않으면 요리를 완성할 수 없다. 이렇듯 공통점도 없는 다양한 일들이 곳곳에서 반복된다. 매우 사소한 일이므로 내가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다 해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반대로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그건 또 금방 눈에 띄니 이렇게 억울한 일도 없다.      


 열심히 해야 표도 안나는 일.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할까? 나는 살림을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일. 여기서 핵심은 최소에 있다. 살림 미니멀이다.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대청소를 한 날 맛있는 저녁까지 차리기는 불가능하고 마트에 다녀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온 날 아이와 놀이터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살림은 최대한 미니멀로 하고 열심히 하면 눈에 띄는 일,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 좀 더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미니멀 살림 노하우 1. 집안일 루틴을 만든다

     

 직장인이 출근해 모닝커피 한잔을 마시며 어제 온 메일함을 열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듯, 아이가 등교해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듯, 집안 일도 루틴을 만들면 좋다. 루틴이 굳어지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기억하기 때문에 조금 덜 수고롭다. 


 나의 아침은 항상 똑같다. 일어나자마자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먹은 것을 대충 싱크대에 넣어두고 샤워를 한다. 집을 나서기 전 로봇청소기 버튼을 눌러놓는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세탁기가 다 돌아가 있다. 그럼 제일 먼저 건조대에 있는 빨래들을 일단 바닥에 내려놓고 빨래부터 넌다. 그리고는 마른빨래를 접어 서랍에 넣어둔다. 옷가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돌아오는 길에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해놓는다. 이쯤 되면 로봇청소기도 자기 일을 마치고 충전기로 돌아간다.  

 아침 집안일은 이걸로 끝이다. 더 이상 집구석을 둘러보지 않는다.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보통 9시 30분 늦어도 10시면 나만의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다. 식탁에 앉으면 너저분한 주방이나 거실이 눈에 거슬릴 거다. 그래도 집안일은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일부러 안 한다. 그래야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다시 집안일을 살피는 시간은 오후 5~6시 사이. 저녁 준비를 위해 요리를 하는 일이다.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 아침에 먹을 식사를 함께 만든다. 볶음밥 야채를 손질하며 된장찌개 야채를 미리 썰어두는 식이다. 이렇게 하루 집안일은 정해진 시간에 딱 두 번만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최대한 주말로 미룬다. 평일 가족이 없는 시간을 최대한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는데 매진한다. 

   

 미니멀 살림 노하우 2. 매일매일 미루지 않고 한다  

   

 앞에서 말한 루틴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매일매일 미루지 않고 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미루면 루틴을 이어갈 수 없다.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루 빨래를 안 하면 다음 날 널어야 할 옷이 많아지고, 로봇청소기를 돌려놓지 않으면 걸레를 들고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럼 정해진 시간 안에 집안일을 끝내기 어렵다. 그렇게 실패가 반복되면 루틴이 무너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쉽다. 쌓여있는 집안일을 보고 한숨만 쉬고 있는 상황. 그래서 매일매일 미루지 않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오전에 커피 약속이 있는 날도 마찬가지다. 10시쯤 약속을 잡고 집에 들러 오전 집안일을 마쳐놓고 만난다. 등원 후 바로 집에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예약기능을 이용한다. 집에 돌아올 시간을 예상해서 그 시간에 빨래가 끝나 있도록 설정해놓고 나가는 것이다. 저녁식사도 마찬가지. 밥솥의 예약기능을 이용하면 편하다. 어쩌다 몸이 아프거나 도저히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웬만하면 오전 루틴은 지키고 오후 살림을 미룬다. 식사 준비는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배달이나 퇴근길 남편 찬스를 쓸 수도 있으니까. 또 냉동실에는 항상 아침식사용 국이 몇 가지 구비되어 있으니 오후 살림은 그날 그날 컨디션에 따라 건너뛰기도 한다. 


 미니멀 살림 노하우 3. 대형마트 대신 온라인 쇼핑을 이용한다

 

 죄책감 없이 쇼핑을 하고 싶어 대형마트에 가는 것은 괜찮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쇼핑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데 내 것을 사자니 양심에 찔릴 때. 남편 눈치가 보일 때. 그럴 때 나는 대형마트를 간다. 가족을 핑계로 먹을 것을 이것저것 담고 그 틈에 살짝 내가 사고 싶었던 것도 끼어넣으면 기분이 좀 좋아지는 날도 있다. 그런 목적이라면 대형마트 쇼핑도 환영이다. 전업주부에게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않겠는가. 출근을 핑계로 예쁜 옷이나 구두를 살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마트에 가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을 이용한다. 보통 마트보다 온라인이 저렴하고 편리하다. 그때 그때 필요한 물건이 생각날 때마다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아이를 재우고 자기 전에 주문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20분만 일찍 나가서 가장 가까운 슈퍼로 간다. 20분 전에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두리번두리번 괜히 하나라도 더 사게 된다. 시간이 부족해야 꼭 필요한 것만 사 가지고 나올 수 있다. 


미니멀 살림 노하우 4.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다. 살림은 어렵다. 정말 하기 싫다. 하지만 살림하는 것을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살림이라는 것은 결혼의 유무, 워킹맘인지 전업맘인지와 상관없이 독립해서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기혼자이든 미혼자이든 하루 세끼는 챙겨 먹어야 하고 빨래를 해야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고 청소를 해야 말끔한 집에서 살 수 있다.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한들 나이 드신 부모님이 차려주는 밥상을 가만히 앉아 받아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성인이라면 집안일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 혼자가 아니라 아이의 의식주를 챙겨야 한다는 점. 거기까지는 괜찮다. 내 아이니까. 정말 억울한 점은 다 자란 성인(=남편)의 의식주까지 대신 챙겨줘야 한다는 점일 거다. 그러니까 하긴 하되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자. 억울한 마음이 들만큼은 하지 말자. 내가 조금 부족하게 해야 남편도 움직인다. 설거지를 쌓아놓아야 보다 못해 한번이라도 고무장갑을 낄 테고 양말이 부족해봐야 세탁기를 돌릴 테니까.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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