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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Oct 06. 2022

미니멀, 나를 알아가는 길

 직장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자가 많은 곳이었다. 협력사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여기서 받은 청첩장만 한 트럭이라고 말할 정도로 결혼 적령기의 여자가 많은 곳이었다. 실제로도 5년이라는 길지 않은 근무기간 동안 결혼과 출산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었다. 누구는 결혼하면서 명품백을 받았다느니, 출산하는데 고생했다며 현금을 받았다느니 하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선배의 손에 들린 명품백만 봐도 그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소박한 차림에 검소해 보인던 사수도 프러포즈 때 받았다는 명품백을 들고 와서는 구경하러 온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만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대던 모습이 생각난다. 얼마 지나 내 차례가 돌아왔다. 청첩장을 돌리는 내게 누군가 물었다.      


 “자기는 결혼 선물로 뭐 받았어?”     


 대답을 망설이자 금세 흥미를 잃고 지나갔다. 대답을 망설인 이유는 내가 열심히 설명해보았자 큰 관심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끌만큼 화려하고, 고가의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결혼 준비를 하면서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결혼을 계기로 고급 선물을 받고, 혼수 장만하는 김에 이것저것 사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참에 하나 사야 되나?’ 망설였다. 백화점 VIP카드를 만들고 큰 마음먹고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 매장을 드나들었지만 구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싸게 준 물건을 관리하며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북적대는 출근길에 누군가의 손톱에 긁혀 흠집이 나도 속상하지 않을 딱 그 정도의 가방이 필요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도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정도의 악세 사리면 충분했다. 그렇게 소박하게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실용적이기로 말하면 남편도 내로라하는 실용주의자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면 죽이 척척 맞는다. 아기자기한 소품에는 관심이 없고, 인테리어도 잘 모른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도 없다. 사용할 것도 아닌데 왜 모아만 두는지를 이해 못 하는 극 실용주의자. 그런 점에서 우리 부부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살기에 딱 좋은 유형이다. 물건에 욕심이 없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 부부에게 물건은 내 삶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쓰임이 분명할 때만 가치가 있다. 당장 쓸모없어도 잠재력을 보고 구매한다거나 호기심에 사는 일은 없다.    

  

 그 덕분에 결혼 후에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마다 의미 있는 선물 대신 실용적인 선물을 요구하곤 했는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음식물처리기 등이 그것이다. 꽃을 사 오는 남편보다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오는 남편이 더 사랑스러운 나는 극 현실 실용주의 자니까. 그런 쪽으로는 죽이 잘 맞는 남편은 기념일 선물로 가전을 요구하는 나에게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그렇게 해주었다. 그러고는 본인도 함께 행복해했다.      


 “이제 퇴근하고 와서 설거지 안 해도 되겠네.”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안 버려도 되니까 너무 좋네.”


 다행이다. 남편이 기념일에 나 몰래 꽃이나 손 편지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감동받은 척 연기하다 속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 서로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결국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일과 같다. 오기를 부리며 내 생일이니까 비싼 옷을 한 벌 사달라고 한들 사주지 않을 남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고가의 옷을 사고 행복한 건 잠시. 한 달 동안은 생활비를 아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의 결혼 아니던가. (나만 그런가? 다들 그 정도 비상금은 가지고 사는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똑같이 돈 쓰고도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것이 남는 일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나에게 꼭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더 단순하고 깔끔하게 살 수 있게 된다. 미니멀하게. 결국 미니멀하게 산다는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것만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고 나를 더 명확하게 알아가는 일이 아닐까. 


@ 우리집 가전 3대장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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