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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Sep 27. 2022

분리수거도 귀찮다면 제로 웨이스트

 일요일 오후. 씻지도 않은 채 늘어져 쉬고 있던 남편과 나의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지난주에 내가 갔다 왔잖아. 오늘은 네가 갔다 와라."

"분리수거 정도는 좀 해주라. 나 진짜 나가기 귀찮단 말이야."

"그럼 공평하게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가위, 바위, 보." 


 결과는 남편의 승리. 


"제발 한 번만. 나 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나갔다가 누구 만나면 어떡해. 제발. 응? 응?"


 못 들은 척 요지부동인 남편을 뒤로하고 깊은 한숨을 쉰 뒤, 주섬주섬 쓰레기를 주워 담는다. 평화롭던 주말 저녁, 집안 공기를 싸늘하게 만든 범인은 다름 아닌 분리수거. 일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하는 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누가 나갔다 올지를 두고 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도대에 이 많은 쓰레기가 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우리 집만 이 정도면 아파트 전체는 얼마나 되는 거야?'


 온라인에서 장을 보면 나오는 박스. 그 안에 각종 포장재와 얼음팩. 배달음식을 먹고 난 후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와 음료수 캔. 터치 한 번으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든다니 놀라운 일이다. 


 '쓰레기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든 현실적인 이유는 귀찮아서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고. 매번 두 손 가득 가지고 나가야 하는 분리수거가 번거로워서 양이라도 줄여 볼 참이었다. 분리수거는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수시로 버려야 하는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까지 합치면 꽤 자주 쓰레기를 버려야한다. 귀찮은 일이다. 나갈 때 하나씩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할 말 없다. 그 잠깐도 귀찮아서 꾀가 나니까.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쓰레기 하나만 버려줘." 하고 부탁하면 남편은 "나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거 알잖아. 자전거 끌면서 쓰레기까지 들 손이 없어. 미안.” 하고 말한다. 아이에게 "쓰레기 좀 버리고 나가자."고 하면 “엄마, 쓰레기 버리려면 돌아가야 하잖아. 나 유치원 늦어.” 한다. 쓰레기가 쌓여서 거슬리는 사람은 언제나 나뿐인듯. 그래, 까짓것 많은 양도 아니고 잠깐이니까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차장에 갈 때면 지하로 내려가니 1층에 들려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일이 성가시고, 하얀 블라우스나 바지를 입을 날에는 혹여나 옷에 묻을까 들고나가기 꺼려지고, 어떤 날은 약속시간에 늦어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나, 둘 쌓이고 그럼 일이 커지니까 혼자 들고나가기가 어려워지고. 또 주말이 되고. 뭐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랄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애초에 쓰레기를 안 나오게 하자는 거다. 일주일에 한 번 버리는 재활용 쓰레기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면 줄여보자. 그렇게 해서 인터넷을 뒤지다 알게 된 개념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세계적인 환경운동이다. 자, 이제 집안을 쓰윽 둘러보자. 무엇부터 바꿀 수 있을까.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가장 손쉬운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욕실. 바디워시, 샴푸, 컨디셔너, 치약, 클렌징 폼, 핸드워시. 이 모든 것이 플라스틱 통 안에 든 채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버려야지 생각하고 보니 한 번도 거슬린 적 없던 것들이 모두 쓰레기로 보였다. '윽, 저 많은 통들 다 쓰면 또 내가 갖다 버려야겠지!'. 조용한 반란이 시작되었다. 하나씩 하나씩 욕실의 플라스틱 통을 없애기 시작했다. 


 바디워시, 샴푸, 컨디셔너, 클렌징 폼, 핸드워시는 모두 고체비누로. 치약도 고체 타입으로.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한 요즘 우리 집 욕실의 모습은 이렇다. 


 바디워시와 컨디셔너는 액체타입으로 돌아왔다. 샴푸와 클렌징 폼은 비누로 쓰고있다. 성인 치약은 고체타입으로 쓰고 있지만 어린이용 치약은 무리였다. 재활용이 안 되는 치약 튜브 대신 펌핑 치약으로 바꿨다. 핸드워시도 비누로 바꿨다. 2차 세안을 위한 클렌징 오일은 안타깝게도 대체품을 찾지 못했다. 비누와 고체 치약은 다 사용하면 쓰레기가 나오지 않고, 아이를 위한 펌핑 치약은 다 쓰면 내부를 비워 플라스틱으로 분리수거하면 된다. 분리수거도 귀찮아서 시작한 제로 웨이스트. 덤으로 훨씬 깔끔해진 욕실. 


 분리수거도 귀찮다면 한번 실천해보시길. 제로 웨이스트가 뭐 별건가.





*사진출처 : pixabay


*주의 : '살림이 귀찮은 전업주부' 매거진은 살림에 대한 완벽한 노하우와 대단한 정보, 고급스럽고 깔끔한 인테리어 팁 등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살림이 귀찮은 주부의 진짜 살림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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