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아리 Sep 21. 2022

영어유치원에 들어가려면 과외를 해야 한다고요?

공부하는 것 같지만 그림 그리는 중인 엉뚱한 첫째



5세 입시


‘입시’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게 힘들고 어렵다. 입시를 치르는 대상의 나이를 고려하다면 대학 입시와 다를 바 없는 스트레스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5세 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3세 혹은 늦어도 4세부터 ‘5세 입시 과외를 해야 한다. 실제 아이를 유명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킨 엄마를 만나 들어보니, 입학한 아이들의 90프로 이상이 과외를 해서 들어온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5세 입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웃음을 쳤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한들 기저귀도 못 뗀 3, 4세의 아이들을 붙잡고 뭘 얼마나 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본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소수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곳의 너무 많은 엄마들이 ‘5세 입시’에 매달리고 있었다. 각자의 교육관이 다른 일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심각한 수준이었다.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다. 내 자식 키우느라 잊고 지낸 교육자로서의 사명감마저 끓어오를 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의 맘 카페와 사교육 카페에 늘 올라오던 글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하루에도 몇 개씩 영어 유치원 관련 과외를 구하는 글이었다. 관심이 없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글이었다. 다시 들어간 카페에는 유명 영어 유치원 입시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글, 영어 유치원 숙제를 봐줄 선생님을 구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심지어는 영어 유치원 입학 테스트와 레벨 테스트가 있는 하반기에 가면 과외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취재의 목적으로 내가 실제 과외를 문의했을 당시가 8월이었는데,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대기를 걸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고작 4세의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것이다.     


입시 열풍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과외 금액 또한 천정부지로 솟고 있었다. 보통은 1회 45분 기준 7만 원에서 8만 원. 한 달이면 60만 원의 돈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일반적인 과외 기준이고, 고액 과외는 상상을 초월했다. 4세를 대상으로 하는 고액과외의 금액은,

1회 30분에 15만 원

주 2회, 한 달이면 120만 원이었다. 누군가는 돈 많은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비싼 과외를 시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외를 받는 대상이 기저귀도 떼지 못한 3, 4세의 어린아이들이 라면, 문제의 소지는 충분하다. 그 어떤 이유를 댄다 한들, 그 나이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단어를 외우게 하고 알파벳을 쓰게 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있을까?   

   

또한 교사들의 자질 또한 문제 중 하나이다. 실제로 영어 유치원 입시 전문 과외 교사 중에는 본인의 학력을 교묘하게 속이거나 위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본인의 실력보다는 인스타 마케팅이나 주변의 인맥을 활용하여 유명세를 떨치는 경우도 많다. 이보다 더욱 문제는 과외 교사들이 사실상 영유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나이의 아이들을 마치 초등학생 대하듯 혼내거나 지시하는 등의 잘못된 교육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 동네에서 ‘5세 입시 과외’와 관련한 큰 사건이 있었다. 30분에 15만 원을 받는다는 선생님에게 본인의 아이를 과외시킨 학부모가, 그 선생님을 비판하는 글을 ‘동네 맘 카페’에 올린 것이다. 상황을 요약을 하자면, 4살 아이를 유명 학습식 영어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주 2회씩 고액 과외를 시켰다. 하지만 교사는 생각만큼 아이를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고, 아이의 실력도 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어떻게든 아이의 영어 실력을 올려보려 또 다른 고액 과외 교사까지 붙여서 '주 4회' 영어 과외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영어 거부는 극에 달하고, 영어 과외 시간만 되면 겁을 먹고 울었다고 한다. 결국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과외를 모두 끊고자 했으나 환불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다행히도 좋은 ‘놀이식 과외 교사’를 만나게 되며 아이의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었고, 결국 그 유명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합격했다며 끝을 맺었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꽤나 울었던 것 같다. 당사자 엄마가 쓴 길고 장황한 글 속에서 나는 단 한 명의 모습만 머리에 맴돌았다. 눈물을 흘리며 과외 교사 앞에 앉아있던 4살짜리 아이. 이 비극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물론 30분에 15만 원이라는 돈을 받고도, 아이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형식적으로 수업을 진행한 교사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4세 아이를 앉혀 놓고는 과외를 시키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외를 주 4회로 늘리는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그리고 더욱 비극이었던 것은, 이 글에 달린 100개가 넘는 댓글의 내용이었다. 나는 글을 읽으며 글을 쓴 학부모에 대한 비판이나 조언의 댓글이 많이 달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댓글의 대부분은 그래서 그 유명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합격시켜준 놀이식 과외 교사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누구도 감히 그 엄마에게 비판을 하지 못했고, 누구도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도 묻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곳에 보내야겠냐고, 그래서 그렇게라도 해서 그곳에 간다면 그간 아이가 겪은 모든 일들은 괜찮아지는 거냐고.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제6장 중

이전 14화 영어유치원 족보를 받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