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아리 Sep 26. 2022

우리 아이는 학습식 영어유치원을 좋아해요. 사실일까?

습식 영어 유치원, 그중에서도 공부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몇몇 영어 유치원에 대한 논란은 이 지역에서조차도 여전하다. 유명 학습식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영어 유치원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은 실상 이곳을 보내지 않는 엄마들만 해요. 실제 여기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만족하거든요.”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영어 유치원을 좋아해요. 수업도 재밌어하고 즐거워해요.  

    

과연 아이들은 정말 그 영어 유치원이 좋아서 다니는 걸까? 나는 묻고 싶다. 고작 3~5년 산 아이들에게 무엇이 좋고 싫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있을까. 아이들에게 일반 유치원과 학습식 영어 유치원을 모두 경험하게 한 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을 때도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을 선택할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좋고 싫은지조차 분명히 판단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기준으로 선택한 하나의 선택지만 제시하고는, 그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너무 모순이다.  

   

간혹 어떤 엄마들은 본인의 선택을 이런 말로 합리화시킨다. 본인은 정말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안 보내도 되는데, 아이가 영어 공부를 너무 좋아한다고. 그러면 나는 묻고 싶다. 부모가 언제부터 아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해주는 존재가 되었냐고. 하다못해 사탕이나 아이스크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니 못 먹게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이다. 그런데 고작 6살, 7살 아이가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선택을 하는데도, 아이가 원한다면 해주는 것이 맞을까?     


차라리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영리해서 부모의 기대를 너무나도 잘 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부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부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늘 애쓴다. 영어 유치원이 힘들다고 말하면 실망할 부모의 모습을 아이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 정말 영재성이 있어, 여타 평범한 아이들과 일반적인 교육을 받으면 오히려 재미가 없고 지루한 아이도 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이러한 소위 ‘영재’라고 칭할 수 있는 아이는 고작 전국의 0.1%. 이런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유아 교육 과정을 넘어서는 몰입식의 고난도 교육을 받아 마땅하다 인정하겠다. 그런데 현실은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이 다녀야 할 일반 유치원은 물론 놀이식 영어 유치원조차 사라지고 있다. 그럼 영재가 아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유치원을 다니는 것일까.

그러니 영어 유치원을 다니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틱’이 생기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아이가 정말 0.1퍼센트의 아이라 확신하는가.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나에게 말한다. “그쪽 아이는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보내도 잘할 것 같으니 한번 보내봐요.” 그러면 나도 그렇게 말한다. 저도 알아요. 보내면 잘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안 보내려고요. 내가 아는 우리 아이는 아마도 내가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보낸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어 감각도 좋은 편이고, 영어에 대한 관심도 많다. 우리 아이는 일반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1년간 영어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듣고 이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보내지 않으려 한다. 만약 아이가 나는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꼭 가고 싶다고 해도 보내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다.      


물론 학습식 영어 유치원을 간다고 모두가 틱이 오고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 아이들은 일부이고, 대부분은 어떻게든 적응해서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아마 누구도 그런 아이는 결코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내 주변에도, 그들의 주변에도 몇 명씩 있기 때문에.      


내 아이는 아닐 거라는 생각, 내 아이는 괜찮을 거란 생각, 내 아이는 버텨줄 거란 생각, 이런 생각들로 아이들을 책상 앞에 끌어다 앉힌다. 그러다 내 아이가 끝내는 버티지 못하는 아이가 되면, 그제야 너덜너덜해진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 밖을 나온다.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나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결코 아이의 잘못이 아님을. 나는 그 불확실한 확률에, 우리 아이를 밀어 넣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우리 아이의 유아기를 책상에 앉아 영어 공부만 하며 보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위하는 엄마로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유아기에는 영어를 공부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믿는다. 친구들과 뛰어놀며 배우는 사회적 관계, 부모와 시간을 보내며 쌓이는 정서적 안정감, 혼자 놀고 생각하며 얻는 사고력 등. 만약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대가로 아이가 레벨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 또한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아이가 그 시기에만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다. 하루에 6시간 가까이 앉아서 공부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많은지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궁금하고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매일매일이 기다려졌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 아이는 매일 잠에 들며 말한다. “내일은 뭘 하고 놀지?” 그렇게 기대에 차서 잠들고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우리 아이의 유아기를 그렇게 지켜주고 싶다.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제6장 중

이전 16화 영어유치원에 '들어가서도' 과외를 해야 한다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