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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Dec 07. 2022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처음 산부인과를 가던 날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수백 번 불러만 보았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엄마’라는 단어를 듣던 날, 나는 생각했다. ‘건강하게만 태어나렴. 엄마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아마 모든 엄마들이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아는 순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간은 엄마의 관심사는 여전히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다.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주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엄마는 매일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할지를 연구한다. 그래서 그즈음의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나면, 이야기의 주제는 늘 아이의 식사나 잠, 놀이와 관련된다. 무엇을 잘 먹는지, 어떻게 하면 잘 자는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들은 하나둘 바라는 게 생긴다. 이제 더 이상 아이의 건강이나 행복만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되던 아이는, 하나둘 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한글도 깨쳐야 하고, 영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수학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물론 할 줄 알기만 하면 안 되고 ‘잘’ 해야 한다. 아이는 학생이 되고 부모는 학부모가 되는 순간이다.      


분명 엄마라는 이름을 얻을 때는 분명 내가 너를 행복해주겠다 다짐했는데, 학부모라는 이름을 얻을 때가 되니, 아이가 무엇이든 척척 잘 해내서 나를 좀 행복하게 해줬으면 하게 된다. 사뭇 다른 마음가짐과 다른 태도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연히 학부모가 된다. 아이가 자라면 누구나 학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부모들은 너무 ‘빨리’ 학부모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빨리 학부모가 되고 싶은 부모들 덕에, 아이들은 이르면 3세, 늦어도 5세면 아이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어서 학부모가 되고 싶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당황스럽다.     


요즘 부모들은 왜 그렇게도 빨리 학부모가 되고 싶은 걸까? 아마도 좀 더 일찍 ‘학생’이 되어, 더 빨리, 더 많이 배워야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학습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 나이다. 그럼에도 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학습에만 전념해야 한다. 부모의 권유로 너무 빨리 학생이 된 아이들은 그만큼 빨리 지치기도 쉽다.      


게다가 일단 학부모가 된 압구정의 부모들은 학부모의 역할에만 몰두하게 된다. 학부모는 부모의 많은 역할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한번 학부모가 되면 다른 것은 망각하기 쉽다.

아이를 낳기 전 간절하게 빌었던 엄마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기대로 가득 찬 학부모의 마음만 남는다.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던 엄마는, 아이는 여전히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건만 만족하지 못한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던 엄마는, 가끔씩 아이가 불행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분명 나도 언젠가는 학부모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기를 당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때가 되면, 내가 엄마가 되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보자고.     


좀 더 천천히 학부모가 되어도 되지 않을까?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는 학습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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