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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부인 Nov 04. 2024

몽실이를 어쩌니

아래층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1102호입니다. 오늘 새벽에 개 짖는 소리가 너무 들려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새벽 시간대에 그렇게 끊임없이 개가 짖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게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공동주택에 사는 이상 최소한의 예의와 질서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늦은 밤 새벽 시간대 소음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온 신경이 바짝 섰다. 밤사이 괴로웠을 아랫집도 신경 쓰이고 남겨두고 온 몽실이도 걱정이 됐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지금 제주 여행 중이고 집에는 아무도 없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몽실이는 2년 전 가족이 되었다. 코로나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막내를 위한 선택이었다. 고등학생 언니, 중학생 오빠도 좋아했다. 몽실이는 어수선한 가족들 틈에서도 잘 지냈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며 몽실이를 데리고 가야할 지 고민했다. 애견호텔에 맡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예전에 맡겨보니 가게 문이 열릴 때마다 주인이 온줄 알고 짖어 목이 갈라지게 쉬어 있던 경험이 있어 내키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여행에는 몽실이를 데려갔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니 사방을 살피며 불안해했고 문에서 인기척만 나도 심하게 짖었다.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문을 지켰다. 또, 배에 태우지 못해 선착장에 있는 반려동물 보호소에 맡겨야 했다. 시설은 협소했고 너무도 낯선 곳이었다. 마음을 쓰는 나에게 남편은 괜찮다며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말했지만, 어미 없이 어릴 적부터 사람과 살아온 반려견에게 혼자 남는 상황은 익숙하지 않다. 배에서 돌아와 보니 몽실이는 얼마를 짖었는지 심하게 목이 쉬어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여행을 가지 않았다. 집에서 지내는 몽실이는 낮에 주로 배를 깔고 자다 저녁이 되면 가족 중 누군가와 산책을 했다. 규칙적인 일과로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가족들이 나가면 따라나서고 현관문 인기척에 쏜살같이 달려오던 모습은 점점 덜해지고 저녁 산책 갈 때만 따라나섰다. 사료를 많이 두고 자율배식을 해도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천천히 먹었다.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는 몽실이를 두고 가기로 했다. 혼자 두기에는 긴 시간이지만, 데리고 가거나 호텔에 맡기기에도 4박 5일은 긴 시간이었다. 혼자 지낼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지만 ‘잘 지내겠지’ 생각하며 슬며시 걱정을 내려놓았다. 


우리 가족은 쉼이 필요했고 각자 나름대로 고단했기에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 제주에 다녀오고 싶었다. 일정을 잡고 배편과 숙소만 예약했다. 사방이 바다고 곳곳에 걸을 수 있는 오름이 있으니 특별한 계획은 없어도 좋았다. 준비랄 것도 없이 옷가지 몇 개와 양치도구만 챙겨서 차에 싣고 출발했다.

여행을 떠난 지 하루 만에 문자를 받은 것이다. 오늘 바로 맡길 애견호텔을 찾아도 여행 마지막 날 저녁배로 목포에 도착해서 그날까지 맡겨야 하니 기간이 4박 5일이나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김녕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에 맡겼던 애견호텔 두 곳에 전화를 했다. 한 곳은 폐업으로 맡길 수가 없고 다른 한 곳은 휴업일이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일렁였다.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맡길 만한 곳을 물으며 잠시 맡아줄 수 있는지 어렵게 부탁을 했다. 미리 집에 가본 적이 있거나 자주 어울린 사이라면 부탁하기 덜 어려웠겠지만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집에 맡겨보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지나친 궁여지책이었다. 


결국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당장 맡길 수 있는 애견호텔을 찾아 예약을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집에 있는 몽실이를 데려다 호텔에 맡길 구세주를 찾는 것. 이 궂은일을 부탁할 사람은 집 근처에 사는 남동생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날은 공교롭게도 친정어머니께서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어머니의 상태를 살펴드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남동생은 몽실이가 밤새 짖느라 흥분했을까 걱정하며 평소 몽실이와 안면이 있는 딸을 태워 늦은 밤 집으로 출동했다.


아래층 부부는 우리가 이사온 날부터 층간소음 문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늦은 밤 올라와 항의하기 일쑤였고 관리실을 통해 말을 전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밤에는 조용히 지내라고 하는 통에 아이들은 부부와 마주치기 무서워 피해 다니기 바빴다. 오래된 아파트인데다 비어있던 집에 5인 가족이 이사를 왔으니 발자국 소리도 천둥처럼 들렸을 거라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갈등은 점점 깊어갔다. 결국 말다툼을 끝으로 서로를 지나친 사람들로 치부하고 6년째 살고 있던 중이었다. 묵은 감정이 꽤 쌓였을 터인데 몽실이를 두고 온 것이 또 화근이 되었다.      


늦은 밤 동생으로부터 몽실이를 잘 맡겼다는 연락이 왔다. 그제야 날 선 신경이 조금 누그러졌다. 혼자 있느라 불안했을 몽실이 걱정보다 아랫집으로부터 불편한 문자를 받았다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니 애견호텔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왔다. 다른 강아지랑 잘 어울리지 않고 사람만 따라다닌단다. 그제서야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편하게 지낼 곳을 찾아 두었어야 했는데 가족은 갑자기 사라지고 낯선 곳으로 보내졌으니 궁여지책의 뒷감당은 오롯이 몽실이 몫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애견호텔에 갔다. 문 여는 소리와 동시에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몽실이는 우리를 보자 밖으로 뛰어나올 듯 점프를 했다. 안아주어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꼭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 눈송이가 굵어지더니 바람에 어지러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온 몽실이는 의자 아래 누워 오랫동안 잠을 잤다. 아이처럼 측은해 보였던 몽실이가 울지도 떼쓰지도 않고 그저 잠만 자는 게 신기했다. 한참을 자더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잠시 반려견과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사람을 위해 사람이 사는 공간에 함께 살게 한 것이 바로 나였다. 씻기고 똥 치우고 산책도 시켰으니 혼자 두어도 괜찮을 거라 가볍게 생각했다. 여기서 ‘가볍게’는 마땅히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강아지도 혼자 오래 두면 우울증에 걸린다. 아침, 저녁 집을 오갈 때도 ‘다녀올게’, ‘잘 기다렸네.’ 말해주는 것이 좋다는 생명체를 5일씩이나 혼자 두려 했다니 가볍게 생각한 것이 맞다.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여행할 것이고 그때마다 몽실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할 것이다. 몽실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은 여행을 하거나 맡길만한 익숙한 환경을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 성격이 비슷한 강아지와 어울려보고 집에 혼자 두어야 할 때 서로 맡아보는 것도 좋겠다. 


아랫집 부부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조치를 하고 답장을 보냈지만 밤새 소음과 걱정에 시달렸을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마음을 전하지는 못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행복한 공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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