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5인 가족이다. 딸, 아들에 네 살 터울로 딸을 하나 더 낳았다. 5인 가족이 되니 4인 가족으로 맞추고 살았던 균형이 흔들렸다. 남편이 큰아이 둘을 재우고 놀아주며 아빠 역할을 더 해야 했다. 가족이 외출할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녀도 불안했다. 한 사람이 막내를 업거나 안으면 남은 사람이 두 아이 손을 잡고 다녔다. 혼자 세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전쟁터로 나가는 비장한 마음도 챙겨야 했다.
세상은 4인 가족이 살기에 좋았다. 5인 가족이 식당에 가면 4인석에 의자를 하나 붙여 앉거나 6인석이 나기를 기다렸다. 손님이 많을 때는 자리를 마련하느라 순서를 내 줄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 택시는 4인까지 탑승할 수 있다. 어쩌다 택시를 타게 되면 두 대에 나눠 타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되었다. 온 가족이 5인승 승용차에 타도 문제는 여전했다. 뒷자리 가운데에 누가 탈 건지 늘 티격태격했고 서로 밀지 말라며 싸우는 통에 차 안은 늘 시끌벅적했다.
그중 가장 까다로운 건 여행할 때 숙소 문제였다. 막내가 어릴 땐 4인 숙소를 이용하다 좀 더 자라서는 드물게 5인 숙소가 있고 다자녀 할인도 해주는 휴양림으로 다녔는데 예약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대형 텐트를 차에 싣고 국립공원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숲이나 바닷가에 있어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데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풀어놓고 놀게 할 수 있어 좋았다.
국내 여행이 이러하니 해외여행은 더 복잡했다. 패키지로 가면 2인이 사용하는 방 세 개를 쓰는 요금을 내거나 요금을 다 내고도 두 개만 나눠서 썼다. 여행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나이가 제각각인 아이들을 데리고 패키지 일정에 맞춰 다니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 해외여행은 자유여행으로 다녔다. 온 가족이 떠날 땐 여러 날 인터넷을 뒤져 5인 가족에 맞는 숙소를 찾았고, 때로는 부모 중 한 명이 아이 중 한둘만 데리고 다녀왔다.
한동안 코로나19로 여행을 하기 어려웠다. 시기도 그러했지만 클수록 각자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 어려웠고 오래 걸려 의사결정을 해도 이미 그 과정에서 지치고 만족감이 떨어져 차라리 집에 있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다. 그러다 올해는 큰딸이 대학에 합격하고 막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두 딸이 엄마와 여행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뜸했던 여행을 계획하려니 의욕이 나질 않았다.
셋이 가는 여행도 숙소가 애매했다. 그렇다고 아들까지 넷이 되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돼서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갈피를 못 잡고 지지부진하던 여행에 불이 붙은 건 남편의 합류였다. 5인 여행이 복잡하다 해도 남편이 같이 가면 든든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의 6박 8일 여행이 시작됐다.
베트남의 호치민, 무이네, 나트랑을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다 같이 가게 되었지만, 이번 여행은 두 딸에게 중심을 두었다. 큰딸과 내가 계획하고 막내에게 동의를 얻었다. 남편과 아들은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심부름을 담당했다. 딸과 숙소를 상의했다. 대도시인 호치민에서는 현지인처럼 에어비앤비로, 관광지인 무이네와 나트랑은 리조트를 예약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로 고른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토바이 경적이 울리는 도시를 그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넓은 거실에 간이 매트리스를 펴고 잘 수 있어 온 가족 숙소로 그만이었다. 거실에 둘러앉아 시장에서 사 온 열대 과일을 먹으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깔깔거렸다. 아이 둘이 사춘기를 지나며 셋이 같이 있는 걸 이렇게 오래 지켜보는 게 참 새로웠다.
붉은 모래사막과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이네에서는 남편과 내가 더블룸을 쓰고 아이들은 패밀리 룸을 사용했다. 아이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조식과 아침 산책을 즐겼고 아이들이 쉬는 동안 마사지도 받았다. 마지막 장소인 나트랑 숙소는 방 크기가 넓은 리조텔로 정해 침대와 소파가 크고 넉넉했다. 첫날은 두 방을 오가며 여자, 남자로 나눠 쓰고, 다음 날에는 아이들, 어른으로 나누어 사용했다. 한 곳에 다 모여 있어도 좁지 않은 크기의 리조텔이었다.
5인 여행에서 또 하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차량도 쉽게 해결했다. 베트남에는 1인, 5인, 7인승 그랩이 있어 다 같이 이동할 땐 7인승 그랩을 타면 됐다. 그러다 아들이 1인용 오토바이 그랩을 타보겠다 하면 나머지는 5인 승용차를 불렀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허름한 지프에 운전자까지 6명이 끼어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숙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5인 가족은 트랜스포머다. 큰딸이 나트랑 시내를 더 보고 오겠다 하여 헤어지니, 돌아온 우리는 아들과 막내 4인 가족이 되었다. 노을 지는 해변에 누워 훌쩍 자란 아들과 막내 둘의 실루엣을 보던 순간은 얼마나 감동이었던지. 막내가 언니, 오빠랑 같이 있으니 부부만의 여행도 가능했다. 아침 늦게까지 꿈나라인 아이들을 두고 해변 낀 리조트를 손잡고 걸으며 산책하고 자전거를 탔다. 피아노가 놓인 로비에 남편을 앉히고 더듬더듬 ‘엘리제를 위하여’를 쳤던 기억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균형은 다시 5인 가족으로 맞춰지고 적절히 무게 이동을 하며 흔들린다. 5인 가족이라 느낄 수 있는 따로 또 같이하는 재미에 물들고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 살아갈수록 살기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5인 가족의 묘미는 또 어떤 맛일지도 궁금하다. 큰딸이 공부하러 가며 분가하고 우리는 다시 1인 가족과 4인 가족으로 돌아간다. 다시 무게 중심이 흔들리겠지만 득과 실을 따지기 전에 새로운 상황을 기쁜 마음으로 마주한다면 인생의 이 주는 숨겨진 선물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