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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부인 Oct 21. 2024

우선 순위

“엄마, 아직도 그대로면 어떡해?”

기숙사에서 온 큰딸이 집에 오자마자 볼멘소리를 했다. 월요일 아침, 아이에게 이번 주는 꼭 집을 치우겠다고 했었다. 딸을 안심시키려고 둘러댔지만, 주중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눈 깜빡하니 금요일이었다. 퇴근해서 딸이 올 시간을 재가며 거실을 정리했다. 식탁과 주방도 너저분했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나?’ 걱정하던 찰나에 딸이 들이닥쳤다.


두 달 전, 딸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싱가포르로 국제교류 갔을 때 만난 학생이 이번에 우리나라에 온다고 했다. 딸과 친구가 이틀간 머물렀던 집의 아이였다. 둘 중 한 명이 그 학생을 집으로 초대해야 했다. 친구도 우리처럼 가족이 다섯인데 우리 집이 친구 집보다 도시에 있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오는 건 좋은데 우리가 집을 치울 수 있을까?”


일하며 세 아이를 키우느라 집 정리를 미루고 산 지 오래였다. 청소와 정리는 요리나 빨래보다 시급하지 않았다. 아이가 늘수록 많아지는 짐을 관리하기 어려웠다. 철마다 옷이나 이불을 바꿔주는 것도 버거웠다. 퇴근하고 돌아와 밀린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해서 먹고 나면 집안 정리할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 편한 자리에 둥지를 틀고 주변에 물건을 늘어놓는 습관이 있었다. 어려서 정리 정돈을 잘 가르치지 못한 문제도 있고, 사춘기 아이들에게 하라고 해봐야 잔소리가 될 뿐이어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어수선한 물건을 볼 때마다 ‘절간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음을 비워야했다. ‘내가 모두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우리 집에 손님이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층간소음 문제도 있어 누구를 초대하기도 어려웠고 그러던 중 코로나 팬데믹이 생겨 집에 오라고 할 일은 더 없었다. 집 정리 문제로 잔소리하시던 친정어머니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버티니 ‘너 알아서 하라.’며 방문이 뜸해졌다. 막내가 친구들을 부르겠다고 하면 이런 집을 친구들에게 보일 수 있냐고 나무라며 마지못해 보이는 곳만 정리해주었다.


그런 우리 집에서 3박 4일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다음 주 토요일이면 싱가포르에서 온 학생과 딸의 친구가 집으로 온다. 이번 주말에는 기필코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 했다. 방문하는 학생이 남학생이어서 아들 방을 비우기로 했다. 친구는 딸과 같이 지내면 됐다. 막내 방에서 오빠가 지낼 수 있도록 짐을 안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토요일 오후, 외출하고 돌아오니 딸은 식탁 주변에 즐비하게 세워놓은 액자와 막내의 작품을 모두 상자에 담아 정리해 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주방이 훤해진 느낌이었다. 딸의 행동에 나도 용기가 났다.

‘그래, 한번 해보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믹서, 토스트기 등 소형 전기가전제품을 모두 상부 장에 넣었다. 그릇을 포개두던 물받이 망을 치우고 설거지한 그릇을 빈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세정제를 뿌려 기름으로 오염된 후드와 전기레인지도 닦으며 주방 곳곳을 청소했다. 정돈되고 깨끗해진 식탁과 주방이 따스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거실에 나와 있던 짐들은 남편에게 부탁해 수납장에 넣었다. 지저분한 거실과 화장실까지 치우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드디어 ‘질롱’이 도착했다. ‘질롱’과 보낸 3일 동안, 집은 깨끗했다. 가족을 합해 일곱 명이 지내는데도 어수선하지 않았고, 물건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때그때 정리하니 힘도 안 들었다. 외출했다 집에 오는 것이 즐거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롭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몇 주 전부터 집 정리를 하겠다고 했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엄두를 못 내고 시간만 보냈었다. 시간이 임박했기에 몸을 움직였다고도 할 수 있지만, 분명 딸이 식탁 주변을 치운 것에 자극받았고 그때 나의 무언가가 달라졌다. 문제의 답을 찾는 것처럼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평소와 뭐가 달랐을까?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깨끗한 곳은 더 깨끗해지고 더러운 곳은 더 더러워진다는 심리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여기저기 늘어놓은 물건이 있을 땐 굳이 지금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로 갖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방 한 곳이 깨끗해지니 주변을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질롱’이 있는 동안 우리는 모든 계획을 비우고 손님맞이에 집중하며 한가하게 지냈다. 우선순위가 손님맞이에 있었고 나머지 집안일은 그때그때 하니 별로 어렵지 않았다. 가족들도 손님이 지내는 동안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두고 동참했다.


그러나 ‘질롱’이 돌아가고 집은 원상태로 돌아갔다. ‘우리 집에서 가족의 우선순위는 정리가 아니라 휴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각자 편한 방식으로 생활하며 밖에서 긴장한 몸과 마음을 쉬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우선순위였다. 그래도 우선순위를 바꾸면 집을 깨끗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건 뜻하지 않은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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