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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부인 Sep 30. 2024

오랜 피아노

모든 것은 인연 닿아 생기고 인연이 다해 사라진다. 잘 쓰다 인연이 다한 물건도 있고 나중에 쓰겠다 챙겨둔 것이 그 쓰임을 찾지 못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이사를 앞두고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인연이 다한 물건이 많다. 보낼 물건들 속에 정들었던 마음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친정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입학하고 사주신 피아노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물건이다.  대형폐기물로 버리긴 아까워 ‘중고 피아노 매입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고 전화를 걸어보니 너무 오래돼서 매입할 수 없다고 했다. 미리미리 다른 집에라도 보내줄 걸 ‘보물 1호’라며 데리고만 다닌 것이 미안했다. 나의 보물이 갈 곳이 없다.


6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건반을 누르며 악보를 익히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악보를 쉽게 익히고 곧잘 배우는 게 신기했던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도 비싼 피아노를 집에 들이셨다. 방 한 칸에 옹기종기 살던 시절이었는데 커다란 피아노가 좁은 방을 비집고 들어왔다. 실력이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노력한 덕에 콩쿠르도 나가고 라디오 방송에 나가 인터뷰도 했다. 학교에서는 애국가 반주나 음악 시간 오르간 연주 기회가 오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배운 피아노 실력은 학창 시절을 지켜준 나의 자존심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피아노 배우기를 그만두었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피아노를 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가끔 암기한 곡들을 잊지 않았는지 확인해 본 것이 전부였다. 어른이 되고 결혼하기까지 피아노를 친 기억은 거의 없다. 부질없이 자리를 지키던 피아노는 3번 이사를 할 때마다 같이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나의 결혼과 함께 대전 친정집에서 서울 신혼집으로 옮겨졌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시댁에서 주말부부로 지내며 첫째를 낳고 직장을 서울로 옮겨 둘째를 낳았다. 가사와 육아에 지쳐 갈등이 잦았고 마음이 서늘할 때마다 낯선 서울에서 내가 갈 곳은 없었다. 작은 방에 놓인 피아노가 나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악보를 펴고 한참을 치고 나면 마음이 후련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좋았다. 피아노를 치며 마음껏 노래라도 부르면 흐려졌던 나의 존재가 다시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3살 5살 때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왔다. 동요 반주를 해주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이 예뻤다. 큰아이가 7살이 되니 피아노를 가르쳐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다. 어릴 적 피아노 실력은 나의 자랑이었지만, 하기 싫어도 그만둘 수 없었던 학원에 다녀야 했던 기억이 좋지만은 않았다. 첫째에게는 집에서 악보 보는 법 정도만 가르쳐 주었다. 둘째와 셋째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다. 학원에 보내니 배워온 곡들을 집에서 연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결혼하고 네 번 이사할 때마다 조율을 했다. 악기가 오래돼서 음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반을 새것으로 바꾸고 부품도 일부 바꾸면 훨씬 나을 거라는 말에 피아노를 리폼했다. 이리저리 옮기느라 부딪히고 상처 난 외관도 무광으로 깔끔하게 단장하고 오래된 피아노 줄과 페달, 의자를 바꿨다.


한동안 아이들이 자주 피아노를 쳤다. 실력이 늘 때마다 기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가사 일로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집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우울한 마음을 날려주었다. 주말이면 나도 가끔 그 앞에 앉았다. 소나티네를 펼치면 어른들 앞에서 긴장했던 기억이 생각났고 명곡을 연주할 때면 20대에 했던 결혼식 아르바이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들이 몇 년 동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자 집에서도 피아노 소리가 뜸해졌다. 나 역시 배운 지 오래되니 새로운 곡보다는 익숙한 곡만 몇 곡 치다 그만두게 되었다. 피아노 주변은 잡다한 물건들로 쌓여갔다. 피아노가 언제 악기였는지 아련하고 방치된 가구가 된 듯했다. 아주 가끔 마음에 변덕이 나면 피아노를 치고 싶기도 하지만, 긴 시간을 마냥 기다리게 하기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나 보다.


오래 함께 한 물건들은 그 함께한 시간만큼 정이 들어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서 먼저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쌓인 정을 고마운 마음으로 먼저 정리를 해야 고이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곳에 가서라도 잘 쓰인다면 마음이 덜 무거울 텐데 이제는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피아노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물건이었다. ‘나의 피아노’, ‘보물 1호’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내게는 의미가 컸다. 긴장감과 성취감을 모두 맛보게 했고, 인내심과 끈기를 키워주었다. 무엇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40여년을 곁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내게는 피아노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느껴진다. 밑둥까지 쉼터로 내어주는 나무처럼 피아노는 나의 삶을 위로해주었다. 이제는 그 인연이 다한 ‘나의 피아노’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나도 너에게 좋은 벗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잘 지냈다. 친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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