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산책을 하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평상시 모습과 많이 달라. 좀 호탕한 척하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
산책을 자주 하며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런 평가는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가끔 만나는 손위 시누이들에게 쿨하게 농담을 하기도 하고 캠핑가는 이웃들에게 너그러우며 좋아하는 동료와 전화할 때는 하이톤이 되어 신이 난 나를 남편은 자주 생경하게 보았다.
그러나 ‘연결고리가 없다’는 남편의 말은 어떤 부연 설명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편한 사람을 대하는 평상시 모습과 가끔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그리고 ‘호탕한 척’은 또 무언가? 남편은 말로 잘 표현이 안 된다며 대화를 끝내려 했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릴 적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린 나이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남매 중 맏이였고 어머니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무엇이든 잘해야 했고 친구들의 인정도 받고 싶었다. 어리숙한 마음과 부족한 실력을 들킬까 감정은 늘 불안했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곳은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과 질투심이 뒤섞인 복잡한 속내를 감추어야 했기에 겉으로 친하게 지내면서도 마음의 거리가 필요하곤 했다. 두루두루 알고 지냈지만, 마음을 두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더 신경을 썼다. 비록 성적은 떨어져도 친구들에게 좋은 아이로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 시절 내가 ‘착한 아이 증후군’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뜻하는 이 증상이 그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유능한 직장인의 모습에 ‘성격 좋음’을 포함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평가를 들으려고 애썼다. 싫은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못마땅한 상황을 여기저기 푸념하며 풀어보려 했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순응하곤 했다. 그래야 성격 좋은 직장인이 되는 것 같았다.
이런 내가 못마땅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 생각을 주장하지 못하고 억울해하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 특히 결혼하고 남편과 오래 갈등을 겪으며 여전히 내 안에 ‘착한 아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 갈등이 있어도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집안일과 육아에 더 힘썼다. 다투고 나서 마음이 회복되지 않아도 가족들 눈치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려 애썼다. 발랄했던 감정이 무뎌지고 먹먹해지고 나서야 나는 더는 ‘착한 아이’로 살고 싶지 않았다.
우선 가족들에게 힘을 뺐다. 남편의 눈치를 보며 예민하게 굴던 마음을 풀고 내 마음을 먼저 살폈다. 세 아이 키우며 ‘집안일이 다 내 일이냐’ 불평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캠핑이며 여행이며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내 일정도 가족들 일정만큼 중요하게 챙겼다. 가족들 염려하는 걸 멈췄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한걸음 먼저 챙기다 지치고 망연해지는 마음을 여러 번 겪고 나서는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면 된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우선 가족들 속에서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있어도 괜찮아지고 싶었다. 부정적인 마음도 화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음을 바꾸고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이제 남편에게 그럭저럭 생각과 감정을 잘 털어놓는다. 가족들에게도 과한 관심을 거두고 가볍게 대화한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도 있는 그대로 전한다.
남편이 본 호탕한 내 모습에는 ‘착한 아이’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반갑게 대하는 그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안 느끼는 건 아니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고 넘길 수 있으면 넘기고 흘려보낼 수 있으면 흘려보낸다. 하지만 반복되는 문제가 생기면 솔직하게 대화하기 어려워 적당히 거리를 두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약간 들뜬다. 남편이 ‘호탕한 척 한다’라고 표현한 데에는 나의 이런 점을 꼬집는 것 같다. 속을 다 보이지 않고도 서로에게 갖은 호감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시누이, 캠핑지기, 동료들 뿐 아니라 뒷집 할머니, 빵집 아가씨하고도 마음이 맞고 대화가 통하면 아주 신이 난다. 그들의 삶이 궁금하고 오고 가는 대화가 즐겁고 배울 점이 아주 많다. 대화에 흥을 내려고 맞장구를 치며 더 호탕한 척하지 않았을까.
‘연결고리가 없다’는 남편의 말은 자신을 그들처럼 신나게 대해주지 않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일 수 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대하는 태도에 부정적인 부분이 많고 호탕하기는커녕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정작 가족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잘 보이지 못하고 지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좋은 사람을 대하듯 나를 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듯 나를 좋아하고 좋은 면을 살피고 마음을 봐주고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조금은 더 즐겁고 신나는 하루를 살 수 있지 않을까? 친구의 전화를 반갑게 맞아주듯 내게도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하고 쿨하게 대해보자. 그 어색한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편안해진 내가 웃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