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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부인 Sep 09. 2024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차를 달려 경주로 향했다. 오랜만에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니 주변 풍경이 정겹다. 우리가 향한 관성솔밭은 울산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해변으로 해수욕장 주변은 이미 해돋이를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캠핑카나 텐트를 치고 화로에 불을 피웠다.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따뜻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 해를 기다렸다. 바닷가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로웠다. 드디어 해가 떠올랐다. 구름에 비춘 해가 진분홍빛으로 빛났다. 그 해를 마주하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작은 소망 하나가 떠올랐다.     


40대 후반에 찾아온 손님은 나를 꽤 불편하게 했다. 다니던 직장을 쉬어야 했고 좋아하던 맥주를 더는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몸 어딘가에 생긴 이 작은 손님은 숨가쁘게 돌아가던 나의 세상을 멈추게 했다. 나는 비상사태였다.

몸이 신호를 보낸 건 40대 초반부터였다. 두통이 잦았고 허리를 삐끗하는 일이 많았다. 목도 불편했고 어깨에 생긴 석회로 통증이 심했다. 육아에 지쳐 몸을 돌보지 않은지 오래였다. 40대 중반 복직해서 6년 육아휴직으로 손을 놓았던 일에 매진했다. 폐경이 찾아왔고 갱년기 증상과 함께 몸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운동하라는 남편의 말에 짜증이 났었다.

 

세상이 멈추고 나서야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 가을부터 겨울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걸었다. 하루 3만보. 남편은 내게 1만보는 보통 사람이 일상을 위해 걷는 양이고, 2만보는 보통 사람이 건강을 위해 걷는 양이며, 3만보는 건강을 잃은 사람이 체질을 바꾸기 위해 걷는 양이라 했다. 체질을 바꾸자며 하루 3번을 걸으라 했다. 노곤한 몸이 되어 잠이 들었다.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뒷산으로 향했다. 숨이 턱에 차며 싫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걸을 만했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다. 산을 오르고 걷는 것이 편해졌지만 다른 일을 신경쓰거나 추가로 어떤 일을 해야할 때에는 여전히 피곤이 몰려왔다. 근력이 부족했다.

딸이 다니는 체육센터를 기웃거렸다. 오전에 주부반 수영이 있고 헬스장에는 파워스트레칭 시간이 있었다. 3개월 수영과 헬스를 등록했다. 출근하듯 센터로 향해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고 수영을 했다. 짧아진 근육이 여기저기서 붙잡았다. 호흡이 가빴다. 그래도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근육을 늘렸다. 호흡을 늘렸다. 

6개월 휴직도 연장했다. 일과 운동을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체지방이 많고 근육량이 부족하며 허리며 고관절, 어깨 등 몸 여기저기 결리고 아픈 곳이 많았다. 복직 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 루틴이 필요했다. 수영을 하고 보니 일상에서도 짧은 호흡으로 가쁘게 살아왔음을 느꼈다.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알맞은 호흡으로 하루를 편안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럼 달려볼까? 달리기는 위급할 때가 아니면 할 이유가 없는 행동이었다. 일부러 달릴 일도 없지만 몇 발 달리더라도 숨이 차면 곧 포기하고 마는 내 인생에서는 거의 사라진 행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달리라고 하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저런다며 화를 냈다. 그러던 내가 스스로 달릴 생각을 하고 있다. 직장에서 돌아와 집안일을 마치고 운동까지 하려면 수영까지 할 여유는 없다. 짧은 시간에 긴 호흡을 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달리기가 좋지 않을까? 그래, 달리기를 하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낭만적인 러너로도 유명하다. 그는 달리기를 했기에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의 일과 마라톤을 비슷한 성격의 일로 생각하는 것도 새로웠지만 나는 그가 달리기를 시작했던 이유에서 곧바로 그의 철학에 매력을 느꼈다. 카페를 운영하던 그는 서른세 살에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작가의 길을 선택함과 동시에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는 자신이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라고 말한다. 매일 원고지 20쪽의 글을 쓰는 힘은 주 6회 매일 10km를 달리는 힘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도 오십의 나이에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늦깎이 건강인으로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서있었다. 몸에 병이 오고서야 알게 된 사실은 휴식과 여행으로 찾있던 회복은 감정적인 부분이 컸다는 것이다. 매일 직장에 나가 일할 수 있는 힘이나 가족을 돌보며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체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 그 체력을 중심에 두고 러너로서 살아볼까 한다.     

지금은 비록 런닝머신에서 시속 8km로 5분 뛰고 시속 6km로 5분 걷기를 반복하여 30분 정도 달리는 수준이지만 매일 꾸준히 한다면 몸은 서서히 적응하여 10km도 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영을 배우며 몸이 아주 조금씩 변하며 적응하는 것을 느꼈다. 꾸준히 계속하면 분명히 좀 더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터득했으므로 나도 언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러너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나의 목표는 주 4회 10km다. 9월 복직 전까지는 수영과 헬스를 계속하고 이후에는 주 4회 10km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체력 관리를 해야겠다.      


분홍빛 새해를 보며 떠오른 소망은 일상을 지킬 수 있는 체력을 갖는 것이었다. 갑자기 찾아왔던 손님 덕분에 건강과 체력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두려움 없는 하루를 살기 위해 나는 이제 달려보려고 한다. 나도 여행 중 만났던 건강미 넘치는 여성처럼 이어폰을 끼고 레깅스 차림으로 공원을 달릴 수 있을까?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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