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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r 18. 2024

8. 우리 집에 마음빨래하러 오세요:)

그림책 작가되기 프로젝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아이들이 모두 개학을 해서 학교를 가고 내 몸을 감싸던 두꺼웠던 패딩도 벗어던지며, 곳곳에 새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누군가에게는 매년 때가 되면 오는 그냥 ‘봄’이겠지만,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2024년 봄이 드디어 왔다.


그동안 마지막 작업이라 하여 프로크리에이트로 그리던 그림을 한번 포토샵으로 옮겨서 색조정을 다 하고 출판사에 넘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목을 정하고 표지를 정하면 된다고 편집장님이 아주 ‘가볍게’ 말씀하셔서 정말 가볍게 끝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림책에 작가 소개 문구를 적어야 한다고 했다. 작가 소개 문구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유심히 보는 편이다. 작가 소개에도 그 작가의 성격이 드러남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작가는 내가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적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기도 한다. 이미 출판서적이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지금껏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을 줄줄이 적어 내리기도 한다. 나는 글 쓰는 것에 울렁증이 있어서 그 몇 줄을 적어내는데도 한참을 망설였다. 처음 내는 그림책이니까, 내가 왜 이 책을 내고 싶었는지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두 가지만 담백하게 적어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써 내려가다 보니 조금 길어졌다. 내 취향은 5줄 안에 끝내야 하는데… 조금 아쉽지만, 줄일 곳이 없어 그냥 그대로 출판사에 넘겼다.


 마지막 관문, 바로 표지 그리기. 처음에 내가 몇 개 생각한 스케치를 2,3개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러나 1주일 후 돌아온 대답이,

작가님, 일단 그리지 마시고요
저희도 레퍼런스를 좀 찾아볼게요.
작가님도 구상만 하고 계셔요~

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내 스케치가 다 마음에 안 드는구나… 사실 표지는 정말 중요하다. 요즘 그림책들은 비닐에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표지만 보고 골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3초 컷 광고와 마찬가지이다. 나도 사실 책표지를 보고 책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독자 손까지 잡히느냐, 안 잡히느냐는 본문보다 표지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일단 출판사의 말을 듣고 그림을 그리진 않았다. 다만 다른 외국 작가들의 그림책 표지만 엄청 찾아보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또 마음이 불안하다. 내 책이 봄이 아니라 여름에 출판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함께 하염없이 출판사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며칠 후, 디자인 팀장님이 연락을 주셨다.

작가님~ 아무래도 표지를
작가님이 지금껏 그리신 그림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해요~

 내가 그동안 인스타에서 그렸던 그림들을 몇 개 보내주셨다. 이 느낌을 살리며 그림책에 있는 스토리를 입혀 보자고. 아, 왜 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자꾸 다른 작가, 다른 그림책에서의 멋진 표지만 볼 생각을 했지. 왜 내 안에서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몇 가지 다시 스케치를 해서 보냈다. 그중에서 딱 2장으로 추려졌고 그 그림을 완성도 있게 그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다행히 제목은 내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제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나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기보다는, 왠지 이것만큼 어울리는 제목이 없어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2개 단어의 조합을 좋아하고, 그 2개 단어가 조금 흔히 조합되는 단어가 아닌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번 나의 그림책 제목의 조합은 이게 최선이었다. 표지 시안을 완성시킨 후 팀장님께 보낸 후, 다시 한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출판사랑 일하다 보면 기다림의 익숙해져야 한다. 나 같은 많은 작가들이랑 소통을 할 테니 얼마나 바쁠까 싶다. 물론 마감을 앞둔 내 작품이 우선순위에 있긴 하겠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일단 디폴트값으로 존재한다.



작가님~ 이제 마지막으로
실제 종이재질에 출력해 보고
표지 확정 지으러 한번 미팅해요~

 만나자는 연락은 사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한다. 나는 이제 정말 마지막 미팅이라는 생각에, 처음 출판사를 찾아간 날을 기억하며 오랜만에 꽃 3송이 가지고 출판사에 찾아갔다.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카톡으로 전화로 자주 연락을 하던 팀장님들과의 만남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이제는 조금씩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편해진 사이가 되었다. 디자인 팀장님이 뽑아주신 나의 그림책의 가제본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제 정말 끝이다,라는 홀가분한 감정과 함께, 봐도 봐도 부족한 것만 같은 내 그림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첫술부터 어떻게 배부르겠냐!라는 생각으로 지금의 나는 이것이 최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그리고 표지 2가지 안을 뽑아서 보여주셨다. 하나는 제목이 기존 글꼴로 타이핑을 친 표지였고, 또 하나는 내 글씨체로 제목이 쓰인 표지였다. 개인적으로 타이핑을 친 표지가 더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쓴 글씨체는 왠지 눈에 확 띄진 않았다. 다만 내 글씨체가 조금 더 내 그림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편집장님과 디자인 팀장님, 그리고 마케팅 담당자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투표를 한 결과… 두구두구두구. 내가 쓴 글씨의 표지로 채택이 되었다. 부끄러움이 1이 더 추가되었다.


 모든 결정을 다 한 후, 이제 이틀 후에 인쇄소에 넘긴다는 디자인 팀장님의 말씀. 이제 정말 내 손에서 떠나간다고 하니 얼떨떨해졌다. 그러다가 지난 페어 때 만들었던, 얼마 안 남은 굿즈를 몇 개 선물로 드렸다. 너무 이쁘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 책에도 한정판으로
같이 주면 좋겠네요~

라고 팀장님께서 제안해 주셨다. 안 그래도 나는 내 그림책이 출판되면 굿즈를 몇 개 만들어서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팔려고 했다. 그림책만 나오면 굿즈도 만들고 오랫동안 쉬었던 이모티콘, 오지큐 스티커도 다시 만들 계획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신나게 팀장님 앞에서 이야기하니, 너무 좋다며 오프라인에서 북토크 같은 것 할 때도 나눠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 굿즈로 탄생되는 기쁨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리고 그 굿즈를 소소하게 사람들이 이쁘다고 사랑해 주시면 더더욱 기쁘다. 나는 그래서 자꾸 돈도 안 되는데(?) 굿즈를 만들고 있나 보다.


 2주 후에 인쇄소에서 책이 들어오면 출판사에 방문하기로 했다. 서평단 모집용 책에 작가 사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이다. 와… 책에 사인을 하게 되다니. 손이 엄청 떨릴 것 같아서 미리 문구를 생각해 두고 가야겠다. 2주 후에 만날 약속을 잡고 나는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가 책갈피가 생각이 났다! 페어 때 자석 책갈피가 실용적이라 그런지, 평이 좋았다. 단가도 그리 비싸지 않고 실용적이기도 하고 그림책과 같이 팔아도 어울리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편집장님께 연락을 해서 책갈피에 대한 설명을 했다. 편집장님도 너무 좋다면서 마케팅팀이랑 논의를 해본다 하셨다. 며칠 후 팀장님께 연락이 왔다.

작가님! 책갈피 400개
주문하기로 했어요!
온라인 판매 때 쓰기로 했어요!

 나는 사실 내 자비로라도 만들어서 내 책을 사주신 분들께 따로 드릴 생각까지 있었다. 그런데 흔쾌히 400개나 제작해 주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신인작가라 많이 응원해주고 싶다는 말씀을 덧붙여주셨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렇게 다시 자석 책갈피에 들어갈 그림을 디자인 팀장님과 함께 고민 후, 발주를 넣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팀장님께, “열심히 저도 영업하겠습니다!”라고 열의를 내비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림책 작가로서 어떤 영업을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작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마 이것은 독립출판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정말 운 좋게 좋은 출판사, 편집장님 그리고 디자인팀장님을 만나 한 없이 부족한 나의 작업을 성장시켜 주셨고 예쁘게 포장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작업 하나 만을 바라보고 1년 반 동안 함께 달려왔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화합을 이루는 작업 때문에 계속해서 그림책을 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문도 만들고 창문도 만들고 지붕도 만든다. 그리고 페인트칠도 하고 화단도 꾸민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나의 집. 이제 곧 나의 집의 대문이 활짝 열린다. 집 안을 들어서면 향긋한 커피 향과 달콤한 쿠키도 있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도 들릴 것이다. 그렇게 손님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이렇게 함께 집을 1년 반동안 지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나의 아름다운 집이
오픈합니다.

 <마음빨래>로 오세요!

오늘 하루 보송보송한 하루
보낼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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