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의 투명성
이전에 나는 사조그룹의 한 상장사 재경팀 1차 면접을 진행한 적이 있다.
며칠 뒤, 도서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급히 뛰어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사조~ 인데요. 2차 면접 ~~에 보러 오실 수 있으신가요?"
2차 면접은 처음이었다. 물론, 1차 면접 때 옆사람보다 월등히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2차는 몇 명이서 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튀어보이기 싫어 그냥 가능하다고만 말했다.
2차 면접은 임원진 면접으로, 임원들은 어떤 질문을 하나 싶어서 정말 많이 검색했고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기소개와 입사후포부가 부족했었고 이 사실을 준비할 땐 몰랐다.
2차 면접 준비 때문에 다른 기업 지원서 데드라인이 지나갔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쨌든 2차 면접만 합격하면 바로 취뽀니깐.
면접 당일.
조만간 또 입을지 몰라 밖에 걸어놨던 다크 네이비색 정장을 다시 입었다. 최근에 자주 입어서 그런지 와이셔츠 목 부분이 약간 변색되어 있었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거 아니겠어?"싶다가도 막상 정말 직장인이 될 생각에 평상시랑 다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한 없이 멋져 보였던 내 모습이 유독 답답하게 느껴졌다. 넥타이를 조금 풀어봐도 이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눈 앞에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덧 면접 당일이 되었다.
잠도 충분히 잤고 말도 잘 나왔다. 느낌이 막 좋진 않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1차 면접 때 20분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일찍 와달라고 했기에 무려 50분 일찍 회사 앞에 도착했다. 그래도 50분 일찍은 너무 이른 거 같아, 바로 옆 카페에 가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랑 미니크로와상을 먹었다. 디카페인을 좋아하지 않으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뛸까봐 선택했다.
먹고나니 배가 슬슬 아파서 카페 사장님께 화장실을 여쭤보았고, 재밌게도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내가 면접 보는 건물의 1층이었다. 화장실 안쪽에 글자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이 뭔가 내 미래를 알고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 보기로 한 xxx입니다."
면접 시작 30분 전, 여유롭게 들어왔다. 대기실에 들어가 벽면을 한 번 보니 최소 몇 년 어쩌면 최대 수 십년을 근무할 수도 있을 이 사무실이 너무 노후되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사무실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깨끗한 공간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이렇게 안 좋은 것만 보이는 이유가 정말 안 좋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 속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약 15분쯤 뒤에 다른 지원자가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또래 같아 보이는 한 청년이었다. 대기시간이 10분이 넘어갔기에 우리는 조금씩 스몰토크하기 시작했다.
"몇 살인지, 세무사 시험 준비했는지, 취준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신기하게도 나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이는 둘다 27살이고, 둘 다 세무사 시험을 18~24개월 준비했다는 점까지도.
"이제 임원면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벌써 2번째 뵌 한 인사팀 직원분이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저번과 같은 오래된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똑같았지만, 다른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임원분이 포함되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굉장히 심한 담배냄새가 났다는 것.
역시 참치회사 아니랄까봐, 아니 1차 산업 회사아니랄까봐 보수적이고 군대식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그런 기업에서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 가족관계였다.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지원자와 여기서 정반대로 대답했다. 나는 솔직하게 "아버지 몸 안 좋아서 퇴직하셨고, 어머니 쉬시고, 누나는 아파서 쉰다"고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부모님 두 분 다 일하셨으나, 정년 퇴직 머지 않으셨다. 형은 최근 취업했다"고 했다.
나는 나의 대답이 "아 이놈 열심히 일하겠네. 집 안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못 그만두겠네."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렇게 보이길 원했지 사실 그 정도로 취업이 급하진 않다. 내년 상반기까지만 취업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엄마한테 듣기로는 오히려 그 사람들은 "아, 이놈 가족 중 아픈 사람이 많네. 회사 업무 하는데 영향 줄 수 있겠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면접 결과부터 말하면 떨어졌다.
솔직히 가족관계에 대한 내 대답을 듣고난 뒤 대표이사는 대부분을 내 옆 지원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몇 번 없는 면접 경험이었지만, 확실히 면접관들은 본인이 뽑고 싶은 사람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바라본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 1차를 통과했으니 말이다.
임원이 날 쳐다보지 않기에 고개를 더욱 힘차게 끄덕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참 어른인 사람이 말하는데 고개만 까닥까닥 흔드는 게 맞을까?란 생각이 든다. 임원이 내 오른쪽에 있었고 다른 지원자는 내 왼쪽에 있어서 그 친구가 어떻게 고개를 흔드는지 아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게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채 계속 끄덕이고만 있었다. 마치 나에게 관심 없는 이성에게 열정적으로 구애하는 동물마냥.
면접이 진행될수록 다른 지원자의 스펙을 알 수 있었다. 부가세 아르바이트 경험, 인서울 대학교 등등.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친구는 물어보는 것에 명쾌하게 대답하기보다 애매하게 대답하는 습관이 있어보여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면접관이 "오 당신 A를 가지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옆 지원자는 "아,, 저 저 저는 A가 이 업무 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는 ~~해서 이 직무에 꼭 필요하다. 저는 A와 관련된 B 경험을 했다. B는 확실히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A를 가지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나 혼자만 든 것을 아닐 것이다.
내게 많은 눈길을 주지 않던 임원이 급하게 퇴장한 뒤, 남아있는 회계팀장과 경영지원본부장이 면접을 이어나갔다. 생각해보니 이 때 이 두명은 1차 때와 다르게 내 눈을 잘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그냥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확정된 게 하나도 없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심증만 있는 상황인지라.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들어왔다.
"저희는 즉시 출근이 가능한 사람을 원합니다. 두 분 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시죠?"
참.. 짜증났다.
물론, 인력이 필요하니 사람을 뽑는 거겠지만 이럴 거면 "입사일자 조율 가능"을 왜 써놨냐고.
그리고 채용 공고 마감일로부터 1주일만에 2차 면접까지 끝날 줄 알았냐고..
내가 짜증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1월 중순 = 10년만에 가족끼리 전주 여행, 예비군 2박 3일
11월 말 = 일본여행 3박 4일
나는 당연히 12월 이후에 채용될 줄 알았다. (되더라도)
심지어 1차 면접 때 예비군과 일본여행 일정이 있어서 12월부터 입사 원한다고 전달까지 했다. ㅋㅋㅋㅋ
물론, 내 꿈의 기업이고 내게 너무나도 과분한 기업이라면.. 다 취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기업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기에 했던 말들이었다.
"저는 즉시출근(수요일) 가능합니다." 내 옆 지원자가 한 말이다.
"저는 목요일부터 가능합니다." 내가 한 말이다.
그리고 돌아온 질문
"자네는 왜 목요일부터인가?"
"가족들끼리 여행갑니다."
아마 여기서 나를 떨어뜨릴 생각이었을 거 같다.
솔직히 예비군? 미루면 되고, 일본여행은 이미 여친에게 혼자 다녀오라고 사과까지 다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가족 전주 여행은 미루기 어려웠다. 아버지 상태가 언제 또 안 좋아지실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가족의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면접관들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말이다.
희생하고 헌신을 강요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놈 취업 원하는 놈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 같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전주 여행을 갔다.
대답을 답답하게 하는 얘보다, 날 뽑을 지도 모른다는 근자감을 가진채.
원하는 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취업난이 심하니 되면 가야겠다란 생각도 했다.
뭐랄까.. 이런 기업에 1,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는 점에서 마음이 더 움직였던 거 같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눈을 피했던 면접관들과 나의 마지막 발언 때문에 큰 기대는 접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 중 떨어졌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흠.. 내가 진심으로 가고자 했던 곳이 아니지만, 그래도 최종 탈락 연락을 받으니 기분이 꽤 좋지 않았다.
평가 받아서?
나보다 일 못할 거 같은 사람에게 졌다고 생각해서?
입사일 조율 가능하다는 말을 바꾼 면접관에게 짜증나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짜증났다.
그리고 시작된 자기합리화.
사실 나는 제조업에 가고 싶었다. 그것도 반도체나 제약 및 바이오 쪽으로.
이 회사는 산업 분류가 "제조, 화학"으로 되어 있었으나 까놓고 보니 "가공 유통업"이었다.
1차 면접 보러 오라 했을 때만 해도 "아 제대로 낚였네"싶어서 경험 쌓으러 가고자 했다.
하지만, 최종 2명까지 가니까 마음이 동했나보다.
아, 면접관이 말해줬다. 2명 중 한 명이 뽑힐 예정이라고.
짜증나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복기해야 성장하니까.
패인의 과정을 복기 해보려고 한다.
1. 너무나도 솔직한 가족관계
-> 좀 더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더 물어보면 자세히 말하자.
2. 자기소개만큼은 절지 않게끔 하자.
-> 너무 많이 준비하다보니 자기소개부터 절어버림.
-> 준비부족.
3. 간절함을 보이자.
-> 간절함 없는 지원자는 거만해 보일 수 있다.
-> 즉시 출근 가능하다고 하자.
-> 간절함이 생기는 기업에만 지원하자. (면접 경험 쌓을 거면 제외)
솔직히 이번 최종 면접까지 간 경험은 정말 정말 유익했다. 경험 쌓으려고 지원한 기업에서 최종 2인까지(1명 뽑음) 갔기 때문에 서류만 뚫으면 "나 꽤 괜찮은 곳도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준비를 엄청 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면접관도 나의 결여된 간절함을 눈치챘을 거다.
아니, 분명 눈치챘겠지. 입사하러 온 놈이 여행만 주구장창 다니니깐 ㅋㅋ
면접 중간에 생각보다 많은 연봉에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좀 더 먼 미래를 보자.
그리고 경험을 더 쌓자.
서류에 계속 떨어져도 힘들어하지 말자.
면접까지만 가면 가능성이 꽤 높아질테니.
잊지 말고 상기해야겠다.
나는 무조건 제조업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