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 컨설팅
저번 주부터 취업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다.
이 컨설팅은 **구 청년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무료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신청할 수 있었다.
총 3회, 각 1시간 30분씩 진행되는 듯했다.
컨설팅 첫날.
전 날 먹었던 양꼬치가 문제였는지 당일 계속된 설사로 무려 10분이나 지각한 상태였다.
누구를 만나든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한 걸 알고 있었지만, 꾸룩꾸룩 배가 아파오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똑똑"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숙인 고개를 올리니 나이가 지긋한 남자 컨설턴트님이 계셨다.
(컨설턴트란 단어가 타자 치기 길고 어려우니 컨트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컨트님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말끔한 정장에 정돈된 헤어 스타일. 나이가 많아 보이셨지만, 멋지셨다. 먼저, 내가 어떤 부서로 취업을 희망하는지 현재 준비상태는 어떤지 등등 전체적으로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컨트님은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공백기간에는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내가 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고 하니 컨트님의 동공이 잠깐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내 얘기가 끝난 뒤 컨트님은 본인이 과거에 회계사 공부를 5년 넘게 했었고, 결국 합격하지 못해 취업을 했던 스토리를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고시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컨트님의 말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간접적인 어투로 계속 내가 고시를 이어하시길 권하셨다.
"대한민국에서 전문 자격증 하나 가지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어쩌고저쩌고"
이러면 안 되지만, 나는 속으로 "컨트님은 고시 공부를 대충 했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말 몰입해서 공부만 했다면 합격 못하더라도 후회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조심스럽고 또 간접적으로 권유하는 느낌이었기에 크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무슨 말하는 건지 아니까.
내가 직접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그 주제는 다신 나오지 않았다. 삶의 내공이 어찌나 많으신지 내가 간접적으로 불편한 티를 내면 바로 바로 캐치하고 화제를 전환하셨다. 이후 컨트님은 마저 본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셨다.
중견기업에서 시작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서 글로벌 외국계 기업에 들어간 행복한 시작. 그리고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 결국 망해서 빚이 500억이 넘었던 비운의 결말까지.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동정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저것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컨설팅 시간이 종료됐다. 내가 문을 나가기 전 컨트님은 메일로 자소서와 이력서 틀을 보낼 테니 채워서 회신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나는 한 카페의 멘토이며 회계팀 10년 차 현직자인 분과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자소서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피드백받았으며, 그분의 조언대로 완성한 자소서 틀이 이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컨트님께 자소서 및 이력서를 보냈다.
둘째 날.
이 날은 첫 째날과 반대로 10분 일찍 찾아갔다. 인사를 하자마자 컨트님은 내게 인적성 검사를 시켰다. 빠르면 20분 안에 끝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약 30분 동안 검사를 했다. 검사 이후 나의 검사 결과에 대한 정리와 피드백을 간단히 들었다. 사실 전부 예측 가능한 건데 너무 꼼꼼히 얘기하시길래 답답하게 느껴지긴 했다.
이후 내 자소서와 이력서에 대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너무 중구난방 해요."
이 말을 시작으로 컨트님은 이것저것 짚어주기 시작했다.
먼저 이력서.
"학력은 대학교가 위로 가고 고등학교가 아래에 가야 해요."
"운전면허증 없어요? 모든 자격증을 다 적어서 칸을 가득 채우세요."
"교육이수는 케이묵이라는 홈페이지를 이용하세요."
"사용 가능한 ERP가 없네요? 전산회계 1급 준비하세요."
다음 자소서.
"성장과정 이렇게 쓰면 아무도 안 읽어요. 아버지께서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습니다. 이런 얘기는 너무 진부해서 읽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아요."
"성격의 장단점 이렇게 적으면 안 돼요. 하나의 에피소드 안에서 본인의 성격이 어떠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이와 동시에 어떤 단점이 있었는지를 서술하세요."
"지원동기는... 흠 오케이"
"포부는 내가 꼭 이 회사에서 이뤄가고 싶은 것을 적어야 해요. 이 회사 저 회사 다 적용되는 말 말고요."
한바탕 털리고 나니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기분 나쁘고 나면 오기가 생겨 한동안 꾸준히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크게 발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집중하면서 듣다 보니 어느새 컨설팅 시간이 종료됐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고 후다닥 나왔다.
그리고 청년센터 내 공용 도서관에 앉아 곰곰히 생각했다.
"나라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을까?"
내가 면접관이라면
1) 말 잘 알아듣고 빠릿빠릿한 사람
2) 배려심 있고 밝은 사람
3) 나와 함께 오래 다닐 수 있을 사람
이 3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입에게 전문성을 바라기 힘들 거 같았다. 그래서 자소서 틀을 전체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자소서로 보는 "나라는 사람"을 정직하고 성실하며 협업과 헌신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전문성은 지원동기에 가볍게 학교수업, 관련 동아리 활동, 관련 자격증 취득, 세무사 시험공부. 이렇게 두 줄 이내로 끝내고.
그리고 내가 면접관이라면 뭘 가장 싫어할까 고민했을 때, 바로 만능용 자소서 일 거 같았다. 즉, 우리 회사에 제출한 자소서를 거의 수정 없이 다른 회사에도 제출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소서 말이다. 직무에 필요한 역량 준비 과정이나 성장과정 그리고 성격의 장단점 같은 건 돌려쓸 수 있지만, 지원동기 하나만큼은 별개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토리를 쥐어 짜내느라 바쁜 하루가 더욱 바빠지고 있다.
한 달도 안 남은 일본 여행 일정 계획, 면접 예상 질문 준비, 케이묵에서 회계 관련 수업 공부, 경제뉴스 등 하루가 너무 바쁘다. 너무 바쁘다보니,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힘들지만 나의 유일한 글쓰기 취미니 꾸준히 해야지. 최근, 여자친구의 조언에 따라 여행 에세이도 하나 연재하려고 했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운 좋게도 중견그룹 계열사 중 한 상장자에서 서류 합격 소식과 함께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의 기회를 얻어서 기뻤지만 3,000만 원 중반대 연봉이 뭔가 아쉬웠다. 그리고 건물에 엘리베이터 없는 것과 복지가 굉장히 형편없다는 것도.. 뭐 그래도 나중에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꿈의 기업에 면접 보러 갔을 때를 위해서라도 면접 경험은 많으면 좋을 테니 한 번 가보려고 한다.
세 번째 컨설팅 후기까지 쓰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세 번째 컨설팅은 내일이다.
내일 컨설팅까지 마무리하면 글을 수정해서 다시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