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사회 탈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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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출국이다.
벌써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 될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생각하니 이런저런 현실적인 걱정들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일본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텐데 막상 정말로 간다고 생각하니 "이게 최선인가" 싶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기껏 헬조선을 벗어나 간다는 게 과로사의 나라였다.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말라죽진 않을까. 이 걱정이 내 발걸음을 가장 망설이게 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걱정과 함께 내린 결론은 위와 같다. 현대 사회가 자연과 인간에 대한 몰이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그 동안 수도 없이 강조하고 반복해왔지만, 현대의 노동만큼이나 그 측면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올 해 초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나는 이제껏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살아왔다. 가족들의 돌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상태로 나를 유지하는 게 가능했을까. 확신이 없다.
그런데 앞으로 밖에 나가서 매일 노동도 하고, 나를 돌보고 챙기는 일까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어떻게 일도 하면서 자기 돌봄까지 동시에 수행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여유나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건강하게 잘 먹을 수 있을까. 끼니를 잘 챙길 수 있을까. 직원 식당이 있긴 했지만 비건 메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가서도 자연식물식을 최대한 실천하고 싶어서 호기롭게 도시락을 싸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매일 도시락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바쁘고 스트레스 받으면 밥을 굶는 내가 엄마의 보살핌 없이 나를 잘 먹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혼자 일하고 나를 돌보기까지 해야한다는 것만으로도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웠다.
사람은 혼자 사는 동물도 아니고, 노동하는 기계도 아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핵가족화를 넘어서 일인가구가 점점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을 뿐더러, 그 일인 가구들은 역시나 노동에 지쳐 먹고 사는 일을 가장 소홀히 한다. 퇴근하고 돌아와 배달음식을 사 먹거나 치맥을 땡기거나 하는 식이다.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나 기력조차 남길 수 없는 현대의 노동환경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인간은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태어났지, 강제된 노동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의지할 구석이 반드시 필요하고, 스스로를 보살필 여건이 되지 않을 때 서로서로 보살펴 줄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함께 먹고 자는 식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지금의 사회에서는 기댈 구석같은 게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혼자 삶을 책임지기까지 해야한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아무것도 해치치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엔 무언가 바라는 게 많았던 것 같았다. 바라지 않는 것을 바랐고, 세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바랐고, 물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기획이 많았다. 처음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 존재론적 문제 등에 대해 깨달았을 무렵에는 세계에 대한 걱정, 분노, 선진국에 살면서 저지른 무책임한 행위에 대한 죄책감, 사회적 사명감 등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도 단순해졌다.
그냥 평화롭게 살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무해하게 살고 싶다. 사람답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좀 살게 해달라는 게 큰 욕심은 아니잖아. 난 정말 그뿐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으레 그렇듯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저 빼앗긴 자유를 되찾고 싶을 뿐이다. 그래야 아무것도 해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칠 필요가 없어진다. 나라는 존재가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동시에 비굴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현대 사회는 자해 사회다.
내가 나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 아무 음식이나 몸에 욱여넣고, 남이 시키는 대로 하루를 보내며 심신을 망가뜨린다. 여유도 기력도 남아있질 않다. 그러니 질 좋은 휴식을 취하기 보다 시체처럼 누워 릴스 숏츠 넘기기만 연신 반복하며 뇌를 망가뜨린다. 삶이 자해투성이다. 고통을 마취하려 소비하지만 마취 효과는 잠깐이다.
소비는 좁은 시야로 보면 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넓게 보면 나를 갉아먹는 행위에 불과하다.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는 지구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타인의 자해 인생을 유도하고,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는 뭇 생명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급증하는 폭염과 이상기후. 전부 내가 하는 과잉생산 노동과 그를 달래기 위한 과잉 소비로부터 비롯된다. 나의 자해는 살해와 무관하지 않다. 살해는 돌고 돌아 다시 내 목숨을 위협한다. 우리는 자해를 하며 남을 해치고, 남을 해친 결과 자해를 한다. 자본주의는 자살이자 타살이다.
난 이제 죽이는 일은 지쳤다. 아무것도 해치고 싶지 않다. 노동하느라 내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싶지도 않고, 내 몸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고 싶지도 않다. 소비하느라 내 필요를 남한테 외주 청탁 맡기고 싶지도 않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로 인생을 가득 채우고 싶을 뿐이다.
이왕 가는 거 제대로 살아보자
일본에는 그런 삶을 보고 싶어서 가는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었다. 그래. 말라죽지 않으려면 중간중간 우핑*(WWOOFing)으로 숨 돌리는 시간은 필수다.
*우프 참고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76
그리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바로 돗토리현이다. 인구밀도도 적고 한적한데다가 바다와 사구까지 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수영 애니메이션의 배경지라 가보고 싶었는데, 그 곳에 천연발효종 빵을 만들며 자본주의의 흐름에 반대하는 삶을 추구하는 카페까지 있단다. 가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해당 카페는 인턴십이나 스태프 모집도 상시로 받고 있어서 지원해 볼 예정이다.
그 외에도 시간이나 여건이 되면 오키나와, 시코쿠, 큐슈 쪽의 생태마을에서도 지내보고 싶다. 가가와현, 가고시마 현 쪽에 눈여겨 봐 둔 곳이 있다. 후쿠오카 쪽에도 부산 등 한일 교류를 지속해 나가며 평화를 추구하는 'NPO 이토나미'라는 곳이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만약 다 둘러보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주소지 등록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이곳저곳 돌아다니기가 어렵다면 귀국 후 다시 3개월 간 관광비자로라도 돌아보고 올 생각이다. 이왕 가는 거, 잠깐 여행 삼아 다녀오기 보다 확실하게 각 생태마을에서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