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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05. 2024

자유 찾아 삼만리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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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CGHf6wSBTc?si=7DfNkJNTkuullGl5


나는 살아있고 싶었다. 사는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온 힘으로 살아있고 싶었다. 노동하는 기계, 소비하는 액체 괴물이 아니라 온전하게 인간이고 싶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살아있는 척 하는 대신 살아있음을 매 순간 느끼고 싶었다. 전신의 감각이 생명력을 틔우는 그런 삶을 원했다.


그래서 자연을 찾았고, 시골 행을 감행했다. 그런데 웬걸. 나는 그 곳에서 전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1.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프로그램도 대충대충에 배움다운 배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좋은 강사님을 만나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끌려다녔다.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저씨들한테든, 프로그램을 짜 주는 멘토링 담당자한테든.


농사도 그냥 맨 땅에 헤딩이었다. 누가 영농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실습할 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땅은 돌밭이었다. 고추 몇 개 수확해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숙소는 마을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비탈길 위에 세워진 터라 다니기도 위험했다. 나를 잊고 싶었는데, 좁은 숙소 방 안에 온통 나밖에 없었다.


발이 묶여버리니 온 몸이 답답했다. 전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집에서는 그럴 때마다 수영장에 가서 활어처럼 물을 헤집고 다녔다. 그때 만큼은 온 몸의 감각이 살아 숨쉰다. 몸이 물을 만나고, 귓속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하나 감각이 활성화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 동시에 자유롭다. 물과 내 몸의 경계가 흐려지고 천천히 녹아든다. 물은 어떤 나라도 다 품어준다. 물에 들어가면 아무데도 아프지가 않았다.


향수병처럼 자꾸 물과 바다가 그립더랬다. 생각해보면 난 바닷가에선 한번도 숲을 그리워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가미를 달고 태어났어야 할 운명인데, 뭔가 오류가 있었나 보다.



2.

그래서 때려치우고 올라왔다. 누군가 나를 이동시켜 주기를 바라면서 라푼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내려와서 누구보다 수동적으로 살고 있는 이 역설이 싫었다.


나는 항상 변화하는 역동적인 삶이 좋았다. 마치 모험같은 인생. 매일이 어제와 다른 하루. 그래서 떠나보기로 했다. 계속 꿈만 꾸고 있었는데, 이제 현실에 옮길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비자도 받았고, 우프 재팬 멤버십도 가입했겠다.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사실 원래도 올해는 무조건 떠나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망할놈의 한국인 DNA가 단 한 달도 붕 뜨는 시간으로 둘 수 없다며 이래 저래 일을 벌여놓는 바람에 조금 꼬였을 뿐. 서둘러 출국 계획을 앞당겼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76



나의 첫번째 목적지는 오키나와다. 덥고 지쳐도 그냥 모든 게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곳에서의 삶이 궁금하다. 1년간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큐슈, 시코쿠, 주코쿠 지방을 둘러보고 올 예정이다. 단순히 관광이나 휴식을 목적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가서 무언가를 얻어오기 위함이다.


마음에 드는 장소, 마음에 드는 인연을 만나 마음에 드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소와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 뿌리 내리고 싶은 지역을 찾는다면 더욱 좋겠다. 바다에 가는 만큼, 바다와 원 없이 소통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해양생물체가 되고 싶다. 그냥 한 마리 돌고래처럼.


우핑을 하면서 삶의 철학과 교훈을 나누고 싶다. 일본은 자연농을 창시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나라다. 지나친 기대는 어딜 가더라도 금물이지만, 그래도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프 농가에서 자연에 대해 깨어있는 의식을 직접 보고 싶다. 평화, 여유, 느린 삶의 미학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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