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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5. 2024

직접 잡아먹는 건 괜찮을 줄 알았지

적어도 어패류는...

나는 비건이다. 내 다른 브런치 글을 읽었다면 이미 알 테지만 그래도 한번 더 밝힌다. 나는 3년 차 비건이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원효대사 해골물 사건들만 아니라면 육류는 물론, 동물의 "ㄷ"자도 입에 넣어보지 않았다. 원효대사 해골물 사건이란 비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나물 반찬, 된장국 정도를 먹었던 일을 뜻한다.


시골에서 비건으로 사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쉬웠다. 아마 텃밭 농사가 잘 됐다면 더 쉬웠을 것이다. 비록 텃밭은 날씨의 변덕 탓으로 망했지만, 매일 산에서 고사리, 쑥, 씀바귀, 고들빼기, 오가피 등등을 채취해 야생 나물 밥상을 차려 먹을 수 있었다. 마당에 열리는 보리수 열매를 먹거나 오디 딸기를 따 먹을 수도 있었다. 야생 도토리를 따서 앙금을 내어 직접 묵을 쑤어 먹기도 했다.


직접 쑤어주신 도토리묵.


오히려 서울에서 외식할 일이 부득이하게 생기거나, 공산품을 사다 먹어야 할 때보다 편했다.

같이 지내는 분들은 고기를 입에도 안 댄다는 나의 특이한 먹성도 전부 이해해 주셨다. 아무도 육식을 강요하지 않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항상 챙겨주려 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심지어 숙소에 계시는 이모님 손 맛이 장난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리사 자격증이 있으시다고.


내 목표는 식량 자립이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위해서도 그렇고, 자급을 통해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공장이나 회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진짜 음식을 먹고 싶었다. 내가 음식을 먹기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지역, 얼굴도 모르는 농부들의 노고가 없다면 도시에서 소비하는 생활도 불가능하다. 내가 지구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다. 지구에도 좋고 내 몸에도 좋은 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다.


채식으로 자급자족하는 것이 목표지만, 해녀가 되고 싶었던 것은 바다의 메세지를 읽고 싶어서였다. 바다가 우리에게 보내주는 신호를 이해하고 싶었다. 지금 바다가 뜨거운지, 아파서 상태가 안 좋은지, 언제 얼마큼 잡아도 괜찮은지 등등. 해녀는 지속적으로 그 신호를 읽어오며 바다와 공생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눈앞에서 채취 과정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생태적으로 바다와 소통하여 얻어낸 것이면 거부감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해조류를 자급하기 위해 물질을 배우고 싶은 것이 가장 커서, 굳이 어패류를 따 먹을 생각은 크게 없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 그 생각을 시험하듯 갯벌에서 소라, 낙지, 게, 새우, 다슬기 등을 채취할 일이 생겼다.


일단 채취하는 것까진 괜찮았다. 소라랑 다슬기 한정으로. 그 외에 게나 낙지 등은 잡기도 무서웠거니와 잡기가 미안했다. 사실 소라나 다슬기도 만지면 움츠러들고 살겠다고 꾸물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동물이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따면서 미안해, 미안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잡아 온 것들을 손질해서 삶고, 살을 빼냈다. 살을 빼내면서 계속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이 살들이 단순히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꿈틀대던 생명체였는데. 오히려 이 아이들이 살아생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 보았던 탓에 더더욱 음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옛날엔 이 살을 어떻게 먹었지. 그냥 먹으라고, 식당에서 마트에서 내어주고 음식으로 판매하니 먹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은 소라나 다슬기가 달팽이로 보였다. 생김새나 살점 부분이 달팽이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었다.



회식자리의 식탁은 전부 직접 캐온 것들로 이루어졌다. 도토리, 고들빼기, 고사리. 죄다 산이 내어준 것이다. 낙지도 뻘에 가서 직접 잡아왔다. 이모님은 낙지 탕탕이를 해오셨는데, 낙지 탕탕이를 처음 본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살아있잖아요. 살아 움직이잖아. 저걸 어떻게 입에 넣지. 살아있는데. 움직이는 동물을 산채로 입에 넣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낙지다리가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옆에 놓여있던 고들빼기 겉절이를 착 붙들고 가져가는 것이었다! 위의 사진 왼쪽 구석에 보면 무슨 베개 끌어안듯 겉절이를 끌어안고 있는 낙지다리가 보인다.


다리에 겉절이를 휘감고 접시로 가져가는 낙지를 보는데, 사람 같아서 꽤나 웃겼다. 베개나 애착인형 끌어안는 사람 폼과 비슷해 보였다. 접시 위에 놓인 그 순간까지도 낙지는 살아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먹을 수 없었다. 해녀가 되었다면 이 아이들을 잡고 지지고 볶아 먹는 걸 항상 봐야 했겠지. 어쩌면 해녀학교에 가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몰랐다.


직접 채취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산업적 어업이 아니면 괜찮을 줄 알았다. 생애의 전 과정을 지켜봤다면 괜찮을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지켜봤기 때문에 더더욱 먹을 수가 없었다. 인류는 사냥을 일삼아 살아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원주민 부족을 가더라도 그들은 살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부류들은 가장 생명을 경외한다. 문명인이라고 불리는 부류들은 가장 생명을 경시한다. 사냥과 살생은 문명인의 야만이다. 입맛이든 손맛이든, 쾌감을 위해 살을 취하는 행동은 인간의 본능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과의 분리, 자연의 대상화가 불러온 병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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