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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2. 2024

농촌에서 살아보기, 청년이 해도 될까?

농촌살이 장단점과 후기

농촌에서 살아보니...

농촌 살이를 시작하고 약 3주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말해서 체감 한 달 넘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3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농촌에서는 묘하게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여기가 지겨워서인지, 재미 없어서인지, 아니면 바쁠 필요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나는 그린대로 '농촌에서 살아보기 귀촌형'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에 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지내본 농촌살이 자체에 대한 감상과 프로그램에 대해 느낀 것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농촌에서 살며 좋았던 것들

일단 공기가 맑다. 뭐, 가끔씩 공사판이 일어나고 밭에 불을 질러 영농 부산물을 태운다거나 하면 공기가 말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맑고 청정하다. 아무튼 초미세먼지의 영향을 적게 받는 것은 확실하다.

 

농촌에도 차가 다니고, 오히려 인도가 없어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이 다니기 때문에 공해로부터 아주 자유롭진 못하다. 하지만 공기가 맑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냐면, 도시에서 지낼 때보다 눈이 뻑뻑하지 않다. 똑같이 핸드폰을 오래 보고 모니터를 오래 보다 눈 깜박임이 적어지면 당연히 눈이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픈 정도가 덜하고, 라식 수술을 했는데도 눈의 건조함이 적다. 그리고 핸드폰이나 모니터를 볼 일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좋다.



공기만큼이나 사람들 눈빛도 맑다. 물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연에 대한 선각자들, 세상을 해롭지 않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긴 했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인상들이 선하다. 도시에서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은 꽤나 날 서있고, 험악하고, 피곤에 찌들어있으며, 대체로 동태눈깔이다. 희뿌연 공기와 잿빛 하늘아래 사는 게 환멸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긴장상태가 된다. 시골에선 그렇게 긴장할 일이 별로 없다.


지나가다 도움을 요청해도 귀찮은 기색 없이 끝까지 도와주신다. 한 번은 모종을 파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모종 가게를 한다며 지인의 지인에게 물어 물어 도로명 주소까지 알려주시더랬다.


노인 분들이 많아서 그런가, 버스 기사님들도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천천히 타더라도 차분하게 기다려주신다. 문득 난폭운전과 짜증을 일삼고 성질 급한 경기 버스 기사님들이 떠올랐다. 물론 사바사겠지만 대체적으로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시골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을에 몇 안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시간에 맞춰야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일상이 아주 느긋하다. 쉬고 싶을 땐 쉴 수 있고 여유있게 지낼 수 있어 이 편안함이 좋을 때도 있다.


같이 지내는 분들도 온정이 많아 잘 챙겨주시고, 무엇보다 맑은 공기와 안정된 정서적 분위기가 좋아 도시에 돌아가더라도 시골이 그리워질 것 같다.




농촌, 이런 건 좀 힘들어

무엇보다 내 또래 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기도 하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한데 또래 친구가 없는 곳에 덩그라니 놓여있으니 적적하고 심심하다. 산골 방 안에서 혼자 할 일도 없이 지내다 보면 우울해진다. 차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없는 뚜벅이는 몇 안되는 마을 버스 시간에 하루 일정을 맞춰야 하므로 상당히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마음에 들어서 찾아 간 동네가 아니라면 이러한 우울감이 더 할 수도 있다. 정말로 시골에 그저 고립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만약 본인이 집순이가 아닌데 뚜벅이라면 너무 외져서 버스조차 안 가는 동네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의 노예가 되어서 원하는대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할 일이 없어 한량처럼 지내는 것도 자기 효능감에 그닥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어떠한 목적으로 농촌이나 시골살이를 하러 가는지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나는 농촌에서 영농기술을 배우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실습 텃밭이나 농가공품 제조등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귀촌형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게 되었더니 영농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습 텃밭도 없었고, 땅도 영 농사짓기에 적합하지가 않았다. 그냥 산골에 덩그라니 숙소만 놓여있었다.


게다가 프로그램이 너무 널널했고, 배움도 깊이가 없었다. 고작 주 2회 일회성, 단발성 체험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는 게 없는 기분이다. 물론 좋은 체험들이고 재밌는 경험이긴 했으나 지속성이 없었다. 학부모가 아이들 데리고 체험관 놀러 다니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장래를 생각하면 나에게 크게 유익할 것 같지는 않다. 일을 할대로 하시고, 퇴직하여 여유있는 노년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청년들이 이 프로그램으로 농촌 살이에 참여하기엔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우선 또래들이 많이 오지 않고 프로그램도 탄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미래 세대를 위해 생태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추천하지  않는다.


또한 벌레가 정말 많다. 메이플스토리의 지네대왕인지 뭔지랑 똑같이 생긴 지네도 봤다. 벌레를 보고도 충격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도시인이라면 벌레로 인해 심신미약이 올 수도 있다... 잘못하다 지네 물릴 수도 있다. 벌레가 많다는 점은 꼭 감안해야한다. 애초에 벌레가 살던 곳에 인간이 터를 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농촌살이가 해보고 싶다면

그렇지만 농촌에서 지내보는 경험은 매우 추천할 만 하다. 일단 청정한 자연과 푸른 하늘을 한 번 맛보고 나면, 도시에 가는 순간 바로 그 하늘과 공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필리핀 봉사활동 당시에 보았던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가 그리워 올해는 절대 도심에선 못 살겠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라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30만원 연수비도 나오고 숙소도 제공받을 수 있지만 이래저래 허술한 점도 은근 많다. 물론 여기 담당자분들도 많이 노력해주고 계시기는 하다만. 청년들의 니즈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농촌 살이를 해보고 싶다면 나는 우핑을 적극 권장한다. 우프란 유기농, 자연농, 친환경 농가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일손을 보태주는 비화폐 교환 활동인데, 우프를 활용해서 무전 여행 또는 생태 유목적 삶을 살아볼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므로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다양한 장소에 머물러 볼 수 있다.


우프코리아 링크

https://wwoofkorea.org/



또한 연수비를 받기 위해 억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지역 생활이 나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몇달이라는 참가 기간을 견뎌야 하는 등, 법적 제도에서도 자유롭다. 호스트와 지내보며 일정을 조율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생태 귀농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되어있다.


관행농 대신 퍼머컬처나 자연농을 가르치고, 주로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롭고 트렌디한 타입의 귀농촌 체험 프로그램들도 많다. 공동체 식구로 지내면서 오히려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공동체의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우프도 마찬가지로 공동체에서 지내는 경험, 자연 순환 농업을 배우고 그 속에서 나의 의미와 존재의 보람을 느끼는 경험, 도움 받고 도움 주는 사람의 온정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안녕시골 등의 홈페이지에서 모아볼 수 있다.


안녕시골 사이트

https://www.hellosigol.com/




다음 계획


나같은 경우, 농촌에서 살아보니 나에게 맞는 지역과 나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인지 더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래도 교통편이 나쁘지 않고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하기 좋은 곳이 마음에 든다. 완전 인적이 드문 곳보다는 적당히 도시와 멀지 않은 곳이 좋은 듯 하다. 산보다 바다가 좋다. 바선생보다 지네가 더 무섭더라. 사람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제도에 얽매여 원하는 만큼 있다 안 맞으면 떠나기 불편한 것은 별로다.


사실 분기점이 왔다. 6월부터는 우프코리아에서 활동가 워크샵도 참여할 예정이고, 뿌리민본에서도 활동가로 일하게 되어 스승님(멋대로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중이다)과 함께 농사 강의 프로젝트도 진행하기로 했다. 스승님을 따라 사회적 연대 및 생태 농법을 배우고 전파하러 8월에 북미 호주 유럽 등지로 출국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뿌리민본 이야기

http://freeofnature.creatorlink.net/forum/view/1024482



거기에 제2사분기 워홀 신청 결과, 합격하게 되었다. 솔직히 작년 오키나와 여행을 갔을 때 정말 편안하고 좋았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올해는 서일본 -규슈, 오키나와, 시코쿠, 쥬코쿠 등-을 중심으로 바닷가에서 우핑과 숙식제공 일자리를 번갈아 하며  바다를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여기저기 바닷가 호텔에서 일을 하다 계약이 끝나고 이동할 때가 되면 우프를 통해서 자연농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울 예정이다.


그리하여 우선은 경로를 틀어보기로 했다. 일단 눈팅만 하던 우프 재팬에 드디어 가입을 마쳤다.

이제 일본 우프 멤버십도 생겼다. 원하는 호스트 농가도 찜해두었고 리조트 바이트에도 지원 면접을 진행했다. 남은 건 결심과 용기 뿐이다.



과연 나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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