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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6. 2024

인연은 푸르른 차 밭 다원에서 만나

귀촌 8~10일차

1.

다도 체험 일정이 잡혔다. 다도 체험? 재밌겠네. 다도 체험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몰랐으나 일단 뭐라도 잘 배워두면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겠지. 처음엔 그런 마음이었다. 듣기로는 가족들이 모여서 차 농사부터 찻집, 숙박까지 겸하고 있는 곳이라기에 혹시나 그 곳에서 할만한 일을 좀 구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도 '팜 투 테이블 레스토랑'과 지친 여행객들이 묵고 갈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하는 일을 연계해 보고 싶었기에 설아다원이 어떤 형태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체험 장소인 설아다원에 도착.

설아다원 전경



프로그램은 차 밭 산책과 설명, 다도 체험, 차 밭 제초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같이 모여서 농장주 님의 공간 해설을 듣는데, 초장부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설아다원이 "우프 코리아 호스트 농가"라는 것이다.


우수 호스트 농가로서 상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마침 우프 코리아 활동가인 내가 우연찮게 방문한 공간에서 우프 코리아 호스트를 만날 확률을 구하시오. 아마 로또 맞을 확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우프를 모를 때 방문 할 수도, 자연농이나 유기농에 관심이 없을 때 방문 할 수도, 혹은 방문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을 일인데. 어떻게 마침 내가 우프를 알고, 우프 코리아를 알고, 우프 코리아와 연을 맺어 활동가로 일하는 중일 때 우연히 호스트 님을 만나게 될 수가 있었는지.


우프 코리아의 우수 호스트 농가로 선정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부터 차 밭과 호스트 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곳의 밭과 호스트 님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

이어지는 차 밭 설명에서는 '역시 이 분, 뭔가 좀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밭을 보여주시기에 앞서 밭 주변에 난 잡초들에 대해 하나 하나 설명해주셨는데, 웬만한 잡초의 이름과 효능을 알고 계셨다. 정말 다양한 잡초들이 밭 주변에 자라고 있었다. 이것은 약을 치지 않는 증거라고 하셨다.


자라나는 잡초들은 거의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괭이밥, 별꽃, 민들레, 질경이, 광대나물, 돌나물 등등. 무엇이 어디에 좋고, 어떻게 번식하는지 등등을 전부 알고 계셨다. 이런 걸 알면 잡초라고 무시하지 않고 전부 활용할 수 있으니 좋을텐데. 종종 차 밭 주변의 잡초들을 뜯어 곧바로 샐러드를 만들어 드신다고도 했다. 멋진데. 갓 따온 신선한 들풀로 하는 식사라니. 말이 잡초지, 그건 사실 약초였다.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적이었다.


차 밭에 잡초가 자라도록 두신다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았거니와, 그것들을 활용해 샐러드나 반찬으로 만들어 드신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말이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는 감자 밭이었던 허허벌판 1만 여평의 땅을 사서 차를 기르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묘목을 구해다 심은 것이 아니라 재래종 차의 씨앗부터 뿌려 기르셨다고. 차 나무가 자라는 기간 동안은 수익을 전혀 낼 수 없으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차 밭을 이끌어 오신 것이 대단했다. 차 밭은 유기농, 혹은 거의 자연농으로 재배되고 있었고 차 나무 외에도 녹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3.

다도 체험을 마치고 이어지는 차 밭 제초 작업에서는 기회를 엿보다 드디어 호스트 님께 말을 걸 수 있었다. 아까 우프 코리아 호스트 농가라고 하셨잖아요. 저 사실 우프 코리아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그렇게 얘기했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어떻게 동지를 여기에서 다 만나느냐고. 호스트 님께서도 '이 친구 말이 통할 것 같다'라고 느끼셨는지 돌연 이거 알아요? 저거 알아요? 하고 이것 저것 말문을 열기 시작하셨다.


제초 작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넥스트젠을 아느냐, 오로빌을 아느냐고 물어보셨다. 아니 그 이름이 어떻게 여기서 나오지? 정말 놀라웠다. 나 또한 넥스트젠(세계 생태 마을 네트워크 한국 지부)에서 진행하는 인도 에코빌리지 오로빌 투어 프로그램의 모집 공고를 저도 보았기 때문이다.


참고 링크:

instagram.com/nextgenkorea/p/CzLzPenJYqD/


인도 오로빌:

http://www.auroville.org/


오로빌은 인도에서 탈자본주의, 생태 영성 대안 공동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아주 거대한 규모의 에코 빌리지-커뮤니티다. 이 곳에서는 퍼머컬처,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 건축, 적정 기술 등을 가르치고, 저렴한 가격에 숙소에서 묵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호스트 님께서는 짝꿍 분과 함께 넥스트젠을 통해 이 곳에 다녀오셨다는데, 호스트 님은 2주, 짝꿍 분께서는 한 달이나 지내다 오셨다고. 그만큼 만족스럽고, 배울 점이 많았던 경험이라고 추천해주셨다. 나에게도 꼭 한 번 다녀오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호스트 님 말씀으로는 현재 오로빌에서 지내고 있는 한국인은 약 40명 정도로, 그 분들과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숙박비도 전혀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한참 생태 공동체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 가장 유명하기도 하며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한 오로빌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이 곳을 직접 방문하신 분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경험하고 싶었던 것을 직접 경험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넥스트젠은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의 한국 지부로, 국내에서는 다양한 생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젝스트젠에서 하는 EDE (eco village design educaiton)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싶어서 설명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나와는 그 분위기가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어색해 결국 합류하진 못했다. 하지만 다양한 생태마을이나 생태적인 삶에 대해 자료를 모을 수가 있어서 꾸준히 염탐하고 있다.


넥스트젠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여쭤보았더니 호스트 분의 가족 분께서 해당 단체의 후원 회원이기도 하고, 넥스트젠의 활동가인 분도 계신다고 하셨다. 놀라웠다. 그렇게 큰 단체가 아닌데 어떻게 넥스트젠을?




4.

거기에 더욱 놀라웠던 건, 호스트 님께서도 "0원으로 사는 삶" (박정미 저) 책을 아신다는 거였다.


도서 링크: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850806


관련 서평: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40


이 책은 정말 제가 읽고 깊이 감명 받았던 인생 책 중 하나다. 읽으면서 정말 많이도 울었던 책이기도 하고. 보통 책의 서문이나 초반은 좋은데 후반으로 갈수록 감동이 덜한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결론까지 정말 완벽했다. 삶을 살아가는데, 왜 숨만 쉬어도 돈을 내야하는 거지? 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0원 살이의 형태를 경험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정신적인 문제, 세상의 연결고리,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까지 모든 통찰을 아우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책은 흔치 않아서, 요즘 세상에 정말 없어선 안 될 단비같은 책이다.


호스트 분께서도 이 책을 읽으셨는지, 나에게 아느냐고 물어보셔서 정말 놀랐다. 심지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책이라 읽은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수 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도 딱 읽자마자 내 인생 책으로 등극한 이 책의 이름을 대셨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같은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지향점을 꿈꾸며,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작정하고 골라서 만나기도 정말 힘든 일이다. 이렇게 우연히 방문하게 된 찻집에서 우프-자연농-대안적 삶까지 모든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어쩌면 하늘이 나에게 이 분을 소개해주기 위해 나를 여기로 부르신 걸지도.


호스트 님께서는 영국의 킨세일도 다녀와 보셨고, 윤구병 선생님께서 오래 전에 하셨던 부안 변산 공동체에서도 지내보셨다고 한다. 나는 전부 책으로만 읽었던 곳인데 그 곳을 직접 경험하고 오신 분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일본의 야마기시즘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고, 초창기에 생겼던 계획 공동체들이 욕심을 부리면서 분쟁이 일어나 해체 되는 과정도 직접 보셨단다. 그러면서 느끼신 점은,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즐겁게 살아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하셨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이 함께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나도 지난 나바스 단체 봉사 활동을 통해서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 것인지 몸소 느꼈기 때문에 공감한다.


나바스 단체 봉사활동기 참조: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63



또한 인생을 즐겁게, 즐기면서 살아야 하고 무엇이 되었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들었다. 다양한 공동체들을 경험해 오셨고, 지금까지도 여러 방면에서 농민, 생태, 약자를 위한 사회 운동에 힘을 쓰고 계신 분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즐겁지 않으면, 그리고 함께가 아니면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는 것을 오랜 세월 느껴오신 거겠지.


저는 바다가 좋아서 섬에 살고 싶어요. 섬에서 대안적인 삶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회 운동이 하고 싶어서 도시가 아니라 농사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냐며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괜히 뿌듯했다. 그러고는


"시골에서도 도시에서와 똑같이 돈에 매여 살면, 계속 바쁘게 일만 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려면 내가 시골에 와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슨 뜻을 펼치고 싶은지 자세히 그려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윤슬 씨도 그 "0원 살이" 책의 저자처럼 윤슬 씨만의 "0원 살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윤슬 씨는 정보량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니 충분히 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이제 그 이상을 실천해 나가는 일만 남았어요.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일을 함께 해 줄 마음 맞는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면 더 좋겠죠. 훨씬 즐겁게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깊은 조언도 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일이 끝나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또 한번 놀랐던 것은 호스트 님도 나가노현에서 자급자족하는 부부의 다큐를 보신 적이 있다는 거였다! 그 다큐가 굉장히 재밌고 인상깊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나 또한 그 다큐 영상이 인생 다큐였기 때문이다.


다큐 이야기 참조: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57


이 영상을 알고 계신 분이라면 이야기가 더 쉬웠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다만 저는 산은 답답하고 수영을 좋아해서 바닷가에 자리 잡아 자급자족을 실천해보고 싶어요, 라고 간결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는 미네랄이 듬뿍 담긴 해수와 해풍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작물들도 더 튼튼하고 영양가 있게 자란다. 이 말씀을 드렸더니 관련해서 전남 무안에 고구마를 해수 농법으로 키우고 계신 "행복한 고구마"라는 농장도 소개해주셨다.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날 자리가 생겨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귀촌 살아보기에 오고 나서 회의감 투성이였지만 설아다원에서의 순간만큼은 '정말 오길 잘했다,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브이로그:

https://www.youtube.com/watch?v=73DKCQHxJ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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