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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9. 2024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남자들이 점령한 농촌에 균열 내기

1.

내가 농촌이라는 공간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전부 '아나키즘 혁명'을 위해서였다. 아나키즘 같은 어려운 단어가 들어가고, 혁명이라는 결의에 찬 어휘를 사용해서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없다. 그냥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그런 간단한 소망 하나를 안고 농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자급하지 못하는 삶은 자유롭지 못한 삶이고, 자유롭지 못한 삶은 인생을 타인의 강제든 사회의 강제든 누군가의 강제 아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급하지 못한다면 돈에 의존해야 한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돈을 얻기 위해서 원치 않을 만큼 일하고, 인생을 돈과 바꿔먹어야 한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농촌으로 오게 됐다. 의식주의(衣食住醫)자립으로 내 삶과 세상을 혁명하기.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목표 아래 그런 사명감을 갖게 됐다.


그런데 웬걸. 왔더니 농촌은 순 아저씨들 뿐이었다. 어느 농장을 가도 대표는 아저씨였다. 자연농을 하는 밭에 가도 대표는 중장년 남성이었고, 유기농을 하는 밭에 가도 대표가 중장년 남성이었다. 심지어 프로그램 참가자도 전부 청년~장년 남성이었다! 숙소 대표와 운영자, 멘토링 담당자도 죄다 남성이었다. 부모님은 고추밭에 덜렁 혼자 놓인 딸을 걱정하셨다. 물론 나도 걱정됐다. 여기서 혼자 어떻게 살아남지. 사실 몰랐던 건 아니다. 농촌이라는 공간이 이미 가부장적인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농촌에 대한 로망도, 농촌이 유토피아라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농장을 사회 혁명의 장으로 개혁해보겠다는 원대한 꿈이 득시글대는 아저씨들 틈에서 사그라들어갔다.




2.

이런 문제는 나만 겪은 게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생태적인 삶, 평등한 공동체, 여성의 자립 등을 꿈 꾸고 귀농한 여성들은 죄다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모양이다. 지난 목요일, 소수자로서 여성 농민의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인 '스페이스 공공공'에 갔다가 그 공간의 주인 되는 분께서도 같은 이야기를 토로하셨다. 항상 여자들이 뭔가 해보려고 가면 남자들 뿐이었다는 거다. 생태건축을 하러가도, 귀농 교육을 받으러 가도, 소농학교에 가도 선생이든 제자든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였다. 당장 나도 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20대이자 여성이었다. 그나마도 내 나이 또래이기라도 했으면 의견 정도는 편하게 주고 받았을텐데 온통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들이었다. 어딜 가나 이야기의 흐름을 아저씨들이 나서서 주름잡고 끌어가는데, 발언권조차 얻기 힘든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곳에서마저 자기 살아온 얘기 하느라 바쁜 자아 바보 아저씨들 틈에서 그저 맑은 눈의 광인같은 표정으로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페이스 공공공의 책장은 완전 보물창고였다. 아저씨들은 이 서까래의 목재가 뭐고 시멘트는 어떻게 발랐고 바닥은 무슨 시공을 했느냐며 물어볼 때, 나는 옆에 놓인 책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3.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이상하다. 농촌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할머니들인데, 거기에 오겠다고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은 남성이다. 거기 주름잡고 앉아있는 사람도 남성이다. 돈이 되고 직업이 되면 남성의 몫이 된다. 토종종자를 받고, 입에서 입으로 기술을 전수하며 씨앗을 보존해 온 건 할머니들이다. 호미질로 감자를 캐고 칼질로 밥상을 차렸던 건 할머니들이다. 그런데 시골길이 찻길이 되고, 트랙터와 콤바인이 들어오고, 트럭이 지나다니면서 농촌을 기계가 점령하고 기계를 남성이 점령했다. 가장 생태적이어야 할 공간은 전쟁터가 되었다. 풀과의 전쟁, 벌레와의 전쟁, 자연과의 전쟁. 농기구는 군수 물품과 그 역사를 같이한다.


농촌이 자급의 공간이 될 때는 여성의 공간이었는데, 산업의 공간으로 변하니 남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주방이 자급의 공간이 될 대는 금남의 공간인데, 업장이 되면 다시 금녀의 공간으로 변한다. 가정의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건 엄마지만 레스토랑 메인 셰프는 남성이다.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인간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해온 여성들은 지워진다. 자급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되고 경제적 가치가 없는 노동이 된다. 살리기 위해 해 온 일상의 노력들은 죽임의 문명 아래 그림자가 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과반수다. 어딜가나 생태적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엔 여자들이 대다수다. 세계를 살림의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흐름에는 여성들이 있다. 아마 농촌이든 도시든 그 흐름을 따라 바뀐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세상이 어머니의 노동을, 자급노동을 잊은 것처럼 배은망덕하게 굴어도 언제나 여기에 존재해있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는 이 노동이야말로 살게 해주는 진짜 노동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묵묵하게 삶을 재창조하고 이어나가는 여성들이 더욱 힘을 낼 수 있기를. 자급 노동이 산업 노동에 균열을 내고,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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