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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리사 Feb 14. 2021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은 전부 호스피스 병동에서 배웠다

웰다잉 에세이

이렇게 말하면 과장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처음 인수인계를 받으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사실 호스피스에 대해 잘 모르던 상태였다. 갑자기 20병상 병동을 맡게 되어, 얼떨떨한 기분으로 새 직장에 나갔었다. 삶의 마지막에 다가가는 사람들이라니... 어떤 분위기일까 싶었다.

흰 주얼리 시계줄을 내려다보며 너무 반짝이는 거 아닐까, 깃털 달린 신은 굽이 너무 높은 게 아닐까.. 여기선 크게 웃으면 안되는 걸까 별 생각을 다하며 들어섰다.

전임자는 내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안녕하세요?'란 인사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암으로 입원한 환자들은 평균 13.5개의 증상을 가지고 있어. 이 분들이 원하는 건 첫째, 아프지 않는 거고 두번째는 자는 듯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램이야." "그럼 뭐라고 처음 인사를 하면 좋을까요?" 물었더니 "'간밤 잘 주무셨느냐'가 적당하지"라고 알려줬다.

그렇구나...마약성 진통제 용량 조절, 수액 주입 속도, 임종이 가까왔을 때 나타나는 징후 등 기본적인 걸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는 병실에 들어섰을 때 의외로 너무나 평범하고 그저 일상 생활을 하는 분들 같아서 놀랐다.

주섬주섬 뭔가 정리하시는 분, 창가를 내다보러 걸어가는 분, 종이컵에 믹스 커피 타서 들고 오는 분들. 각양각색이었지만 전임자가 일러준대로 평균 수명이 "한 달"이내인 분들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립병원이라 병원장님부터 윗분들이 호스피스에 관심이 많고 잘 챙겨주셨다. 레지던트들도 수가 많고 잘 훈련되어 있어서 다행히 시스템이 잘 돌아갔다. 잘 형성된 시스템에 내가 살짝 얹혀 굴러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삶은 유한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삶의 유한함"이었다. 오전 8시부터 모여 전날 당직보고를 받으면 상당수 환자분들이 밤새 돌아가시곤 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항상 "벌써?"였다. 많으면 1주 간 전체 병상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들이 임종하였다. 빈 자리는 금새 다른 환자로 채워졌지만, 가끔 빈 병상을 바라보면 인간적으로 상실감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상실감은 호스피스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일지 모른다. 암과 같이 심각한 질병을 진단받으면, 투병 자체가 하나의 긴 여정이다. 그러면서 직업처럼 소중한 사회적 역할의 상실, 재정적 손실, 주위와의 관계에서 해 낼 수 있는 역할이 축소된다.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오게 되면 통증을 비롯한 여러 증상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는 이제 어떻게 되는가"라는 존재의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길면 90년, 짧으면 30년이나 50여년 되는, 그런 말기 환자들의 나이를 보면서, 또 그 분들의 곁을 지키는 분들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살아온 모습대로 죽어간다." 정말이다.  짧으면 2주, 대개 한 달 정도 지내다 떠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우리는 그 분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응축된 모습을 보게 된다. 주위 가족관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유대관계가 밀접하고 지지체계가 좋은 가족들은, 한 순간을 아쉬워하며 환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 소원한 관계는 그대로이고, 갈등은 불거진다.  


삶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무슨 후회를 하나

두번째는 "삶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후회하는가"를 보고 느꼈다. 이때 "더 일했더라면" "돈을 더 벌었더라면" 이런 후회를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중간에 산재형(병동 여기저기에 산발적인 입원) 호스피스를 했기 때문에 임종을 돌본 환자수가 500여명에 달한다. 많지는 않은 편이나 1000 례, 2000례 임종을 돌본, 우리나라나 일본의 호스피스 선생님들의 책을 봐도, 결론은 비슷하다.


이 시기는 주위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좀 더 이들과 시간을 보냈더라면,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좀 더 자주 했더라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환자와 가족은 서로를 염려한다. 말기 판정을 받은 후 각각 면담을 해보면,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나야 어쩔 수 없지만, 남은 가족들은..." " 산 사람은 살겠지만, 환자는 어떻게 보내지요?"


 여기선 역설적으로 삶과 건강의 소중함이 깊이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아인슈패너 커피가 단 맛은 쓴 맛을, 뜨거운 커피는 차가운 크림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하듯이.

의료진이 호스피스 팀에 참여하면 스스로 삶의 태도가 열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나를 성숙시켰다. 국내외에서 좋은 추억, 잊지 못할 교류도 쌓았다. 이렇게 임상의로서, 교수로서 충만한 체험을 해 온 것은 인생의 진정한 축복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호스피스를 하면서 배운 문구 중에 이 말을 가장 좋아한다.


"삶은 작은 상실과 작은 재생으로 이루어져있다." 예를 들어 안경을 잃어버리면, 순간적으로 시력의 저하라는 상실과 불편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안경을 찾으면 그 사람은 밝은 시야라는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을 누리게 된다.

호스피스는 사별을 전제로 하지만, 유족들은 또다른 관계에서 혹은 일에서 상처를 덜고 재생을 조금씩 경험하며 살아나간다. 그런 설명이었다. 그때 내 느낌은 반짝하고 전구가 켜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거야... 낙엽이 지지만 새 봄에 잎이 피어나듯이...

병상은 비지만 다른 환자로 채워지고...아쉬움은 남지만 다음 번에는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이 문구에는 희망이 담겨있어 좋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한 삶을 돕는 호스피스

지난 여름 장마가 길었다. 우기에 잠시 드는 햇빛은 더없이 반가왔다. 그런 아침에 산책하면서 생각했다. 우기가 길다고, 햇빛이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소중하다. 비도 너무 세차게 오니까, 좀 약하게 오면 통근길 운전이 덜 어려울 것 같아 다행이었다.

호스피스 환자의 통증이나 괴로운 증상 조절이 이와 비슷하다. 여러 고통이 밀려오지만, 경감의 시기가 있고, 삶의 질이라는 즐거움을 누릴 시간이 교대로 온다. 이 시기에 우리는 호스피스 환자에게 권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오라고 해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라고.. 자신의 주위도 정리하고, 남기고 싶은 말도 녹음하고 등등. 마음을 가능한 비우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오신 분들은 갈등도 미련도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사람이다보니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런 경우는 본인이 좀 더 힘들고, 그로 인해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신체상태가 저하되면 마음의 여유도 따라서 적어진다. 더 이상 암이 치유가 되기 어렵다는 말을 담당 의사에게 들으면 가까운 완화의료 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 호스피스는 임종을 수 개월 앞둔 말기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이다.

대부분의 전문기관들은 외래 자문형 가정형등 유연한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호스피스를 기피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일찍 찾아온 분들이 증상 조절도 잘 되어, 의미있는 편안한 마무리에 다다를 수 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이 올라가면 여명도 길어진다는 고무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사진: 호스피스의 상징인 노란색과 연두색 교차리본


호스피스가 시작하고 발달한 북유럽에서 나온 구호가 있다. 이것은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진수이고, 나와 우리 팀의 자세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신이기에 소중합니다. 당신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 당신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화로운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잘 살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You matter because you are you, and you matter to the end of your life. We will do all we can not only to help you die peacefully, but also to live until you die. -Sisley Sau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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