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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리사 Mar 19. 2021

컬러 테라피

소소한 딴짓

제목을 보면 "그런 게 있어?"라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정립된 설은 아니다. 웃음치료, 독서치료, 아로마치료... 보완대체요법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커피홀릭에겐 커피 한 잔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활기와 재충전을 선사할 것이다. 여자들이 흉금을 터놓는 폭넓은 대화를, 우리는 농담으로 '수다 테라피'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속후련하게 하는 것도 별로 없기도 하다. 애엄마인 나에겐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밖에 별다른 스트레스 해소책이 없었다. 


정말 오랫동안. 집과 직장의 무한반복만 같던 늦가을의 어느 날, 나는 무릎을 다쳤다. 넘어지면서 무릎이 보도블럭의 요철에 패여 피가 철철 흘렀지만, 주위 사람들 볼까봐 무심하게 기다리던 버스를 탔다. 그리곤 계속 나름 소독하고, 항생제 연고를 바르고, 듀오덤도 붙였다. 

진물이 좀 오래 나네... 하면서 십여일 정도 지나도 너무 낫지 않아서 결국 성형외과를 갔다. 정년 직전의 과장님에게 온갖 야단을 다 맞았다. "이건 말이 안되는 거야.."라고 혀를 차시며... 부분마취를 하고 차가운 철제 천정에 큰 라이트가 켜지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 분만 때 말고는 별다른 수술경험이 없었다. 스키도 안 타니 크게 다친 적도 없었다. 


다치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

정말 우스운 게, 그때 내 머릿속에 처음 든 생각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였다. 나 말이다.. 의사로 일한지 22년, 다양한 과 수련을 받은 가정의학과인데.. 같은 병원의 동료 선후배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던 걸까. 항생제도 먹었고, 자가소독도 했으니 낫겠지 했던 안일함이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딱지는 앉았지만 야속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경계부위는 곧잘 가려웠다. 결국 열감이 나서야 나는 환자로서 병원을 찾은 것이다. 12바늘을 꿰맸다. 성형외과 교수님 두 분이 의논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움직이는 부위라, 잘 늘어날 것 같으니 과감히 도려내시죠. 언더마이닝(상처 아래부분 죽은 조직을 파 내는 것)하시고, 당겨서 잘 꿰매면 붙을 것 같은데요?" 뭔가 경쾌한 희망이 느껴졌다. 무릎이라 많이 움직이는 부위이기 때문에 고정을 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스플린트(기브스)가 왠말인가. 게다가 3주라는 기간이었다. 그 기간동안 나는 슬로우 모션의 무성영화 속으로 들어와 사는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환자 보는 일 말고도 연구회, 연구모임등이 잦았었는데 올스톱이었다. "다쳤다며, 굳이 나오지 말고"하는데서 내 걱정도 있겠지만, 부담스러워하는구나 싶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나를 빼고 돌아가는 것 같은 적막한 분위기에서 사실 욱신거리는 무릎보다도 마음이 더 아팠다. "아니 무슨 대학병원 의사가 자기 상처도 관리를 못해.." 이런 말 들을까봐 ,책상 아래에 낮은 의자를 놓고, 다리를 감쪽같이 숨기고 밝은 표정으로 일했다. 다행히 남들은 내 상처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사추기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여태껏 뭘하며 살았는지 모르겠고, 앞으로도 이렇게 마구 달리며 살 것인가 등등. 천만다행히 무릎은 잘 나았다. 

이후 6개월간 특수 테이프로 흉터관리를 해야했지만. 옛날에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태어났으면 이런 상처로도 생명을 잃었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성형외과 교수님이 말씀해주셨다. 어차피 상처가 꽤 깊어서 바로 소독하고 클리닉 다녔어도, 한달 이상 매일 치료받고 보통 일 아니었다고. 흉터도 꽤 울퉁불퉁했을 거라서, 이렇게 한번에 도려내고 꿰맨 게 오히려 나았다고. 그 말씀은 큰 위로가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나는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 그 시작이 무릎 상처였던 거다. 스플린트하고 마루에서 멍하게 있다가, 눈에 띈 무민 캐릭터를 따라 그려보았다. 줄쳐진 연습장 뒷면에 슥슥 그렸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오드리 헵번도 그리고, 디즈니 공주도 그렸다. 조금씩 자신을 얻어서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그렸다. 사실 무작정 따라그리기여서 이게 그리는 건가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2016년 1월 졸작, 무민 가족, 색연필과 가는 볼펜]


색채가 생기를 부여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꼈다. 흑백의 스케치에서 채색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색채가 그림에 생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색채는 명암이고 입체였다. 색채는 소녀의 화사한 볼 웃음이었고, 공주의 바삭거리는 드레스였다. 캐릭터 따라그리기는 인물화, 풍경화로 넘어갔고 미술학원도 다녔다. 둘째 녀셕의 아동미술학원에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리고 받아달라고 했다.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은 정답이 없어서, 어느 그림이 좋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림과 소설쓰기가 비교적 타 분야에 비해,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진입이 쉽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물어봤었다. 나는 질문을 계속 했다. "그림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입체시 그리고 세밀함"이라고 알려주셨다. 

[2017 1월 졸작, 디즈니 10공주, 수채화에 매니큐어 터치] 


아들녀석에 비해 나는 전혀 입체시가 없었다. 스누피로 가을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마을 배경으로 입체시를 배웠다. 원근법인데, 그림이 확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보급형 물건을 쓰다가 고급형으로 갈아 탄 기분이었다. 연필로 스케치만 잘 해도 성취감이 들었다. 내가 뭔가 구체화했구나, 이런 느낌.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는 권력가였을 것 같았다. 초상화를 그려주고,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그런데 채색이 없다면, 인물의 개성도, 계절감도, 풍경도 빛을 잃는다. 

[2016년 12월 졸작, 스누피의 가을 길, 색연필에 부분 수채화 채색]

나는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발견한 듯 들떴다. 이걸 전공분야인 완화의학과 연결시키고 싶었다. 일단 되든 안되든 "테라피"부터 붙이고.. 하면서 이걸 가지고 암 환자들의 삶의 질을 올릴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관련 자료를 찾았다. 과학적 논문은 드물었고, 주로 심리학 칼럼 수준이었다. 책도 두어권 읽고, 한참 유행이던 퍼스널 컬러 진단도 받아봤다. 소감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정도였다. 

일단 색채는 자연에서 유래한 것이고, 원래의 기원을 따라 고유의 이미지를 갖는다. 붉은 색은 불이나 피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강한 주목을 받게 된다. 초록색은 숲이나 초목의 색이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상담실 벽의 색으로 좋다 등등. 뭐 우리가 대부분 아는 것이긴 한데, 어떤 심리학 논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같은 인물사진이라도 배경색에 따라 인물의 표정을 해석하는 정도가 다르더라는 것. 핑크바탕에 들어간 인물의 화난 표정은 블루바탕보다 덜하게 인식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매일 옷의 색을 골라 입고, 여자들은 색조화장품을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주위와의 상호작용을 이어가지는 않는지. 

이 주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때 연구원이던 학생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다. 아침에 지하철 타고 올 때 사람들이 어떤 색의 옷을 입었는지 카운트해보라고. 여름이었는데 놀랍게도 흰색, 검은색, 청색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해외학회를 아일랜드로 갔을 때 형광핑크, 보라색등 다양한 옷 색에 경탄한 적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아쉬움이 들었다. 


소소한 즐기기, 핑크

나는 결혼 전에는 주로 흰 계열의 옷을 입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어두운 색도 잘 어울리는데..'라고 해서 진회색, 검은색을 슬슬 입기 시작했다. 흰 가운과 배색을 생각해서 주로 무채색으로 옷장을 채웠던 것 같다. 대충 집히는 대로 입어도 코디가 쉬운 뭐 그런 핑계를 대면서. 지금은 SNS에서 '핑크공주'라는 과분한 별명까지 얻었지만...그 계기는 그림 그리기였다. 어린 시절 인형 옷입히기 하던 것처럼 캐릭터 따라그리기하면서 너무 베낄 수만은 없으니 옷 색도 바꿔보고, 무늬도 넣고 그랬다. 그러면서 그에 따른 인물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알게 되었다. 무슨 색이 나를 돋보이게 할까.. 생각해봤다. 학창시절에 레드가 어울린다고 듣고 한동안 레드 티, 레드 스트라이프 셔츠 이런 걸 입던 생각이 났다. 이제 와서 시도하기에는 다소 대담한 것 같아 톤 다운된 핑크를 선택했다. 

[2017년 6월 졸작, 오드리 헵번, 수채화]

뭐 그런 소심한, 정말 소소한 딴 짓의 시작이었다. 이젠 옷장의 반이 핑크다. 페일 핑크, 인디 핑크, 핫 핑크... 구두나 백, 액세서리, 물론 화장품도 핑크 베리에이션이다. 남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올해 안 입으먼 못 입을 거 같아서 그래" 이러는 여유도 생겼다. 그림을 취미로 그린 지 4년, 코로나 여파로 화실도 못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컬러풀한 꿈을 꾼다. 의학의 트렌드인 개인맞춤처럼 감성 컬러, 퍼스널 컬러의 시대가 올 것이다. 스스로의 기분이 편하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하지만 시도해보기 전엔 자신도 모른다. 도전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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