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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하나였다

by 슈퍼거북맘

빛이 어둠 한가운데에서 깨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이 빛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깨어남 이후의 삶은 더 이상 ‘극복’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어진 현실 속에서 빛을 바라보며 사는 연습이었다.



언젠가 발달장애 부모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가 자폐라서 좋은 점은 없나요?”


그 아래에 달린 수십 개의 댓글은 한결같았다.

“없어요”


그 글을 읽으며 잠시 생각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아이가 발달이 느리다는 이유로, 우리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한때는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질문들에 사로잡혀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나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사랑에 머무를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사랑에 머무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선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두려움마저 품고 있는 전체의 빛이라는 것을.

그 빛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였다.


어둠과 빛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

두려움과 사랑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존재의 다른 측면이라는 것.

고통과 기쁨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두 개가, 사실은 같은 것임을 깨달은 순간,

삶은 더 이상 비극도, 희극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였다.


나는 오랫동안 착각했다.

아이가 걷고 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아이가 말을 하면, 발달이 올라오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걷고 난 후에도, 말을 하고 난 후에도, 발달이 쑥 올라온 후에도

나는 행복해지지 않았다.


걷고 나면 뛰길 바랐고,

말을 하면 더 유창하길 바랐고,

발달이 오르면 더 빨리 따라잡길 바랐다.


내 행복엔 언제나 ‘~하면’이라는 전제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행복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


무엇 무엇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스텔라를 키우던 그 고통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때,

눈을 마주치며 나를 향해 웃어주었던 그 찰나의 순간에,

무서워하던 미끄럼틀을 용감하게 혼자 내려오던 그 오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지만, 가장 행복했다.


불행과 행복은 서로 다른 두 개가 아니다.

그 둘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른 방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체념이 아니다.

더 이상 바꿀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이미 이 순간에 완전함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어둠이 나를 삼키던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빛이었다.

그 빛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어둠과 빛은 반대되는 두 개가 아니었다.

그 둘은 나라는 완전한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두 개의 다른 얼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전체임을 받아들이는 고요한 선언이다.


그러니 어떤 면이 드러나든 상관없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품는 것이 바로 무조건적 수용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아이가 자폐라서 좋은 점이 있나요?”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하겠다.


네, 있습니다.

아이는 내게,

삶을 둘로 나누던 눈을 멈추게 해 주었습니다.

고통과 기쁨,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이 서로 다른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전체라는 사실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며,

두려움 속에도 사랑이 있고,

어둠 속에도 빛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분별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조차 완전함이라는 것을 안다.


분별이 사라진 자리,

그곳에 남은 것은

무한한 사랑과 고요한 평화의 바다이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보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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