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꿈이 생겼다

사서라는 꿈

by 디어문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그렇다고 책을 끼고 살 만큼 엄청난 애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책을 좋아한 것인지, 책이 가득 꽂혀 있는 도서관의 공기가 좋았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독서를 할 수가 없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훌륭한 작품들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시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밑줄을 긋고,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부분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시험을 보는 것이 전부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국문학과나 문헌정보학과 같은 전공을 염두에 두고 진로를 설정하지 못했다. 어릴 때 문학 전집을 읽느라 몇 시간을 꼼짝 않던 아이는 교과서로 만난 이야기들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과를 선택한 탓에 도서관과는 멀어져 버린 전공, 그렇다고 나이 50에 수능을 다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도서관 이용객으로 만족했다. 학교에서 기간제 강사로 근무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 놀러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서 선생님과 친해지면서 사서 교육원을 알게 되었다. 비전공자도 사서가 될 수 있다고? 멀리서 짝사랑만 하던 사람에게 편지라도 전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설렜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영양교사 임용을 보겠다고 어린 두 아이 엄마께 맡기고 교육대학원을 다녔다. 영양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였다. 임용 한 번 보고 포기할 만큼 그 일은 내게 딱 그 정도였다. 핑계만 생기면 포기해버리고 싶은 , 딱 그만큼의 일.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 교육대학원은 왜 간 건가, 비싼 학비에 시간 낭비까지 했다는 생각에 참 쓸모없는 석사학위였다. 그랬는데 석사학위로 정사서 과정 지원이 가능하다니,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더니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꿈도 자격이 있어야 꾸는 거 아닐까 생각했었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경제적 여유

실패를 해도 다시 도전할 시간이 충분한 젊음


어린이의 꿈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부모님이 지불하시니까.

하지만 50에 꾸는 꿈은 많은 비용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교육원에 다닐 만큼 여유 따위 내게 없었다. 월급이 적어 매달 마이너스인데 자격증을 취득해도 50, 무경력, 비전공자, 컴활 자격증 하나 없는 내가 경쟁력이 있나.


지원 서류를 제출하고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추적 관찰 중이던 부위에 이상 소견이 보였고, 외과적 수술이 필요했다. 암으로 발전하지 않았던 덕분에, 약물치료나 부가적 치료는 없었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직장만 다니기에도 힘든 컨디션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친한 언니에게 물었다.

" 내가 이 나이에 자격증이 있다고 취업이 될까? 더구나 지금 시작하면 취득은 내년인데?"

" 무조건 해야지 무슨 소리!", 합격했음 다니는 거고, 자격증 취득 후에 고민하라는 언니 말에 마음을 정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거의 없었지만, 좀 더 줄이고 좀 더 아끼고 처음으로 내 꿈을 위해 투자해 보자.




정사서 과정은 준사서 과정만큼 경쟁률이 높지 않다. 지원자 대부분이 석사 학위자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40명 정원을 조금 웃도는 지원율이었다. 결과 발표 후엔 그나마 등록을 포기한 지원자도 있어서 정원 미달이었다. 수술 후 이석증까지 발병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버거웠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몰랐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이 길의 끝에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그 문이 얼마나 굳게 닫혀있는지는 알지 못했으니.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는 거니까, 꿈꿀 때는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