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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l 07. 2023

11. 히든싱어[영탁편]에 나가다

녹화 전 모든 것

녹화 장소는 우리가 달간 뻔질나게 드나들던 상암 jtbc가 아니었다.


 jtbc 거대한 녹화 스튜디오는 일산에 있었다. 도착시간은 오전 10시, 본격 녹화시작은 오후 6시라는 안내와 더불어 각종 제반사항을 전달받았고 나는 서울 처갓집에서 머물고 갈까 고민하였지만 마음 편한 우리 집에서 자고 자차로 방송국에 가기로 하였다. 와이프가 로드매니저를 자처했다. 지인 몇 명을 방청객으로 초청할 수 있었다. 와이프, 친한 친구, 엄마, 동생을 초청하였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따로 오기로 하였고 엄마와 동생도 따로 움직였다.


당일 아침 기상 후 목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히든싱어 준비 전까지는 목을 푼다는 개념을 딱히 갖고 있지 않았다. 목이 풀리는 메커니즘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성대도 결국 근육의 일환이기에 준비운동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퍼포먼스가 분명히 달라진다. 목이 풀리는 패턴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이해하여 당장 목이 나오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 2시간 내외의 시간이 최고 컨디션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을 푸는 발성 일부와 몇 가지 노래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 약 2시간 이후 괜찮은 성능의 목으로 바뀐다.


나는 컨셉상 밝은색 바지를 입기로 했기 때문에 비칠 것을 염려하여 작가님은 하얀 속옷을 준비해 올 것을 당부하셨다. 하얀색.. 군대 이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속옷색깔이다. 그리고 왠지 하얀 속옷을 입고 있으면 덜떨어진듯한 기분이 든다.. 회색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하기로 했다. 일산에 도착하여 마트 2군데를 들러 겨우 하얀 속옷을 구해 방송국에 도착하였다.



미리 도착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기실로 올라갔다.


거대한 방송국 스튜디오의 내부는 신기한 곳이었다. 보안이 삼엄해 보였고 다양한 목적의 스튜디오가 즐비했다. 마침 대기실 근처의 스튜디오에서 아는형님이 녹화 중이었다. 민경훈 님을 봤다, 이수근 님을 봤다며 오 가는 사람들이 말했다. 나도 이동하는 중에 강호동 님의 넓디넓은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앞모습을 못 봐서 아쉬웠다.


헤어, 메이크업 진행이 우선이었다. 순서에 맞춰 사전에 어느 정도 협의된 컨셉에 따라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결혼식 때 한번 이런 것을 받아본 적이 있어 다행히 완전히 새롭고 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항상 짧은 머리를 하고 있기에 적당히 리젠트 느낌으로 앞을 세우는 머리를 세팅하였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무리하고 1차 리허설을 진행하러 세트장으로 이동하였다. 티비에서 보던 바로 그 세트장이었다. 거대한 전광판에 히든싱어라는 글자가 박혀있고 왠지 엄숙한 성직자들처럼 서있는 6개의 통. 이제 곧 저기 들어가서 노래를 하게 된다. 통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일반 무대에서 부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먼저 관객이 내 눈앞에 없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실시간 피드백이 체크되지 않으니 더 긴장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리고 노래를 소절로 끊어 부른다는 것. 사실 가수들은 한 곡을 부를 때 어떤 컨셉과 감정을 세팅하고 기승전결의 형태로 하나의 연극을 완성한다. 하지만 그런 흐름을 배제하고 한 소절만 부르고 빠지는 것은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더 쉬울 것 같은 통 안에서 몇 소절만 부르는 이 과정이 더 긴장되고 어렵기도 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음향을 체크하고 묵직한 마이크를 받아 들고 랜덤 배정된 번호의 통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곳이 히든싱어 통이구나. 방송에서 작은 캠으로 통 안의 가수들을 보여주던 그 공간. 마치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노래를 부르는듯한 그 공간. 통 안에서 문쪽 면은 온통 전자장치 투성이었다. 통 외부면이 여러 가지 화면전환이 되는 전광판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음료가 비치되어 있고 그 옆 벽면에 통 번호에 맞는 가사가 하이라이트 되어 붙어있다. 절대 실수할 일 없도록 눈에 똑똑이 보이도록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피커가 발아래쪽 구석에 있는데 혹시 모를 하울링을 방지하기 위해 마이크는 항상 배 쪽 위로 유지할 것을 당부받았다.


이래저래 1차 리허설이 마무리되었다. 리허설은 중요한 절차이다. 각종 요소를 점검하여 최선의 무대를 예비한다는 점도 있지만 공연자입장에서는 긴장을 덜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몇 시간 뒤에 이렇게 부르겠구나, 눈앞에 수많은 관객들과 카메라, 연예인 패널들이 있겠구나, 그런데 안 떨릴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 리허설은 점심식사 후 약 2시쯤 진행된다.


그때 모창능력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어딘가에 몰래 잠입하여 그 리허설을 듣게 된다. 왜냐하면 그날 가수가 어떤 컨디션과 어떤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체크하여 이를 또 실시간으로 모창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다르다, 역시 막강하다. 그리고 여유 넘치는 바이브로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저 남자, 영탁.


모창 능력자들은 녹화 전에 연예인 패널들에게 모습이 노출되면 안 되기에 동선을 고려하여 조심조심 이동하게 된다. 다시 조심히 이동해 돌아온 대기실 어딘가에서 우리는 보컬트레이너샘과 함께 계속해서 연습을 거듭하고 거듭하였다. 몇 가지 포인트를 바꿔야 하는 것이 있었다.


니가왜거기서나와에서 후렴의 니가왜거기서나와 니가왜거기서나와아~~~ 의 와아~하며 올리는 부분의 박자가 음원보다 실제무대에서 조금 느렸다. 우리는 안무에서 뒷목댄스와 함께 발을 딛는 순간에 음을 올리는 것으로 연습했지만 리허설무대를 참고한 결과 한 박자를 지나 올리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모창의 디테일을 수정할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의상을 결정해야 했다.


의상은 사전에 어느 정도 협의된 컨셉에 따라 각종 의상을 입어보며 결정하게 된다. 평균적으로 4~5벌의 옷을 입어보게 된다. 다른 친구들은 몇 가지 중에 작가님들이 결정을 해주었지만 나는 2가지 중 나에게 결정하라고 하셨다. 나의 컨셉이 누나꼬신영탁이어서 그런지 약간 날라리티 나는 의상들이었다. 교사라는 직업과는 조금 괴리가 있는 의상들이지만 나는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화면에 잘 나오기 위해서는 쨍한 색감의 밝은 옷들이 좋다고 하였는데 처음에 입어본 주황색 자켓과 알록달록한 셔츠, 그리고 크림진을 선택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의상. 나는 그 날라리 옷을 입고 누나꼬신영탁 네이밍으로 방송에 나오기로 결정되었다.

본 녹화때 가슴의 스티커를 떼면 닉네임이 나온다

6시에 마침내 오프닝 녹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순간에도 연습하고 있었다. 7시쯤 1라운드 녹화였고 약 20분 전쯤 번호가 배정되었다.


나는 무려 1번.


임용고시 수업시연에 1번을 배정받았던 기억이 겹쳤다.


가수가 먼저 배정받은 통으로 이동하고 나머지 모창능력자들은 조심히 세트장뒤로 돌아들어가 한 명씩 들어간다. 진짜 방송녹화가 시작된다. 히든싱어는 NG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가수든 모창능력자든 틀려도 그대로 진행되고 방영된다.


2달간 연습을 한 소절에 녹이는 시간이다. 1라운드는 통과해 보자!!



(반주)딴~ 따라딴단다~ 딴~ 따라딴단다♪♬


(다같이)남자답게~ 책임질게~~ 내겐 딱! 딱! 누나가 딱이야~~~~


풋~!내나는 푸!싸과보다..~ 샙..빨간! 사과가 더~ 조우와~~

https://www.youtube.com/watch?v=vqA4nFXI5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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