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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야감 Jul 02. 2023

9. 히든싱어[영탁편]에 나가다

작가님의 정신교육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실무자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작가들이다. 


작가라 함은 일반적으로 모종의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방송분야에서는 그 업무영역이 매우 광범위해 보였다. 일례로 유튜브 댓글을 통해 나에게 연락을 준 작가님은 출연자 수소문과 스케줄 전달 역할을 수행하였다. 현장에서도 출연자 안내와 각종 주변 업무를 도맡고 있었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작가님들 여럿, 그리고 프로그램 전체적인 진행을 주도하는 조금 더 높은 포지션의 작가님이 계셨다. 그중 한 분이 김선명 작가님으로 미스터트롯에서도 영탁을 발굴하고 전담한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히든싱어의 상징 같은 분이시며 본인 스스로 히든싱어 장윤정편 모창능력자로 나오신 이력도 있으시다. 유머러스하지만 강단 있으셨고 무엇보다 본인의 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분이셨다.



첫 댄스연습 이후 매 연습마다 춤연습이 있었다.


몸치 3인방의 뚝딱 바이브는 도무지 개선되지 않았다. 음정박자 신경 써야지, 포인트를 잡은 모창도 신경 써야지, 안무 신경 써야지, 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처 신경 써야지, 아직 자동화되지 않은 이 모든 것을 익히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더군다나 나의 경우 아직 스스로를 깨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나를 깬다는 것은 무대 위에서 다른 내가 되는 것이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공연이며 공연은 결국 어떠한 형태의 연기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몰입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지금도 니가왜거기서나와 전주를 들으면 저 때 생각이 나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작가님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모니터링하며 강도 높은 피드백을 아끼지 않으셨다. 


즐기라고. 여러분은 잔나비도 아닌, 신용재도 아닌, 영탁 모창자들이라고.

영탁이 어떤 가수냐고. 누구보다 무대에서 방방 뜨고 신나야 하는 가수라고.

그런 가수를 모창하고 있는 여러분들, 아직 너무 딱딱하다고.

영탁이 아닌 여러분 무대 자체만 보고서도 관객들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고.

지금 내가 보는 여러분들, 하나도 안 신나 보인다고.

여러분 스스로는 신나냐고.


본인이 직접 시범까지 보이시고 코칭포인트를 짚어가며 출연자들의 역량을 끝까지 끌어내기 위해 핀잔과 동기부여 사이 어딘가를 끊임없이 오고 가셨다.



댄스연습이 끝나면 기본 밤 10시가 넘어간다.


이전에 걱정했던 평일 화요일에도 결국 그 시간이 오고 말았다. 나는 이경우에 2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11시 50분 막차를 탈 수 있는 경우 어떻게든 강남터미널에 도착하여 귀가하였다. 막차 타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처갓집을 이용하였다. 내가 숙박을 해야 하는 날이면 미리 장모님이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해 주셨다. 그럼 새벽 어느 즈음에 들어가 2~3시간 쪽잠을 자고 5시 30분 첫차를 타고 터미널에서 바로 학교로 출근하는 식이었다.


상암 jtbc에서 연습을 마치고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가며 나는 임용고시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밤늦게 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막차를 타고 귀가하던 그때. 8년 전 그때와 나는 똑같이 밤버스를 위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 이유도, 그 마음가짐도 너무도 다를 따름이었다.



확정멤버가 된이후는 노래 연습시간도 길어졌고 매회마다 보컬 선생님들의 구체적인 피드백이 있었다.


댄스연습이 몇 차례 지나고서는 2절에서 통 안에서 나오는 부분 연습도 시작되었다. 1절이야 통 안에서 모창에만 신경 쓰면 됐지만 2절은 진짜 무대이다. 여기서는 또 하나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번호마다 노래 부르는 부분이 다른 것이었다.


가령, 니가왜거기서나와의 경우


(1,3,5번)

니가왜거기서나와 니가왜거기서나와

내 눈을 의심해보고 보고 또 보아도


(2,4번)

딱 봐도 너야 오마이 너야

니가왜거기서나와 니가왜거기서나와


(다같이)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 등을 찍혔네


이런 식으로 안무는 똑같이 이루어지는 도중에 번호에 따라 부르는 부분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일에 내가 어떤 번호를 부여받을지 모르기에 특정 파트만 연습할 수도 없다. 불러야 될 부분에 안 부르든지, 파트 신경 쓰다 안무를 까먹는다든지, 안 부를 때 마이크 위치가 이상하다든지, 실수의 모든 경우의 수가 연습 때마다 발생했다.

가사지는 수많은 피드백 포인트로 더러워진다


이런 난국 속에 녹화 약 2주 전, 안무를 포함한 모든 곡 1,2절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점검하는 각 잡은 연습이 있었다.


평소와 사뭇 다른 긴장된 공기감돌았다. 나름 최선을 다으나 굳어져가는 스태프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발라드 곡인 이불의 2절을 부르는데 마침 마지막 애드립 라인을 내가 해야 했다. 1절만 연습하던 나는 그 애드립의 멜로디라인을 완벽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신감 없이 희끄무리하게 부르고 말았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처참했다.



연습이 끝나고 경직된 분위기 속에 작가님 한분이 우리를 대기실로 부르셨다.

집합이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여러분들 역대 히든싱어편중에 어떤 편이 제일 인상 깊었어요?

동근씨?(대답) 대웅씨?(대답) 혜빈씨?(대답) 희석씨?(대답) 근안씨?(대답)


네 맞아요 휘성편, 쿨편, 임창정편 다 크게 화제된 편들이에요. 그때 나왔던 출연자들은 연예인만큼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연습과정 하나하나 제가 다 기억이 날 만큼 모두가 열심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오늘 여러분들 하는 거 보고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만큼 간절한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금 모창하고 있는 가수는 다른가수도 아니고 영탁이에요. 영탁은 휘성편에 참가자로 나왔다가 원조가수로 나오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다른 가수들보다 통 안에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다 알고 있고 당황도 안 할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영탁 씨가 휘성편때 어떻게 연습했는지 알아요? 그때는 지금 이런 좋은 연습실도 없었어요. 그 당시 멤버들 몇 번 만나고 금방 친해져서 추운 겨울에도 몇 평 안 되는 연습실 자기들 돈으로 빌려 연습하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 지금까지도 친한 거 알죠? 그만큼 간절하고 순수하게 히든싱어에 임했어요.


2시간이나 되는 방영시간 동안 가수 한 명에게만 이렇게 집중하는 프로그램 히든싱어 말고 없어요.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그 내로라하는 가수들 20분 이상 할애도 안 해줘요. 하지만 그 시간의 진짜 주인공은 원조가수가 아니라 모창능력자로 나오는 여러분들이에요. 물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러분들 하나하나 마음은 다 다르겠죠. 누구는 티비 한번 더 나오기 위해 간절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그냥 좋은 추억일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지금 여러분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 자리 하나하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마어마하게 간절한 자리에요. 지금도요 혹시 기회 되면 예심한번 더 볼 수 있냐고, 출연기회 있냐고 연락 오는 분들 수십 명입니다.


도저히 못하겠다 하시면요, 지금이라도 빨리 말씀하세요. 바로 연락드릴 분들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건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예요. 소중한 기회 그냥 보내버리지 마시고 진심을 다해 인생 속 하이라이트 한순간으로 장식하셨으면 좋겠어요."


일동: "...."


위와 같은 골자로 약 15분 동안 우리는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고급 정신교육 시간이었다. 어찌 이렇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유려하게 멘탈을 휘어잡는지. 그 기세와 언변에 압도되어 전기충격기로 지져진 듯한 충격을 받았다. 5명은 그 자리에서 자세부터 고쳐 앉게 되었고 히든싱어에 임하는 마음을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각자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일요일 홍대 부근 연습실을 잡아 모이자며 특훈을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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