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 현대인에게 깃든 50가지 문양

by 김네잎

열린시학 2015년 봄호 (74호)

▣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



당신은 한 번이라도 '보고 만지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이 혹시 가짜는 아닐까?' 의심해 본 적 있나요? 누군가가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묻는다면 보통은 이상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정말로 본인이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은 매우 희귀한 정신 질환으로 환자는 자신의 중요한 장기가 사라졌다거나, 몸의 일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거나, 혹은 부패 중이거나, 심지어 죽었다고 인식하는 증상입니다. 1880년 프랑스의 신경학자 쥘스 코타르 Jules cotard에 의해 ‘부정 망상증 le délire de négatio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따와 ‘코타르 증후군 Cotard's Syndrome’이라고도 부릅니다.




못갖춘마디



어둠과 어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우리

신발 바닥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는데

어둠의 냄새가

자작나무 잎 부스러기와 함께 털려 나오네요

우리는 언제부터 사각의 묘혈에서 살고 있었나

몸의 올이 풀리면서

뼈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눈을 감은 채 뜨고 있는 사람들

눈동자를 짚으면 우리가 흘러나오네요

한쪽 귀마저 잘라 서로에게 건넨 우리는

들리지 않는 것만 듣지요

가령, 바닥난 감정이 다시 차오르는 소리 같은


우리 둘 중 죽은 사람은 누구였더라

깍지 낀 손이 풀리지 않아

심장을 꺼내 볼 수 없는데

괜찮아요

우리는 늘 하나의 심장으로 숨을 쉬었어요

뼈와 뼈 사이로 나무뿌리 밀고 들어와

못갖춘마디를 하나 더 만듭니다

- 김네잎,『열린시학 』, 2015 봄호



어느 날, 늘 하나의 심장으로 숨을 쉬었을 것 같은 관계마저도 못갖춘마디처럼 완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자아가 와해되는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싶죠. 하지만 '괜찮아! 이 불완전한 관계 때문에 하루하루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일지도 몰라.'라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그러면 들을 수 있어요. 가령, 바닥난 자존감이 다시 차오르는 소리 같은...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에 대한 재미있는 예가 있습니다. M. 데이비드 이너프 박사와 W.H 트렌 쏘완 박사에 따르면, 어떤 환자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를 ‘마담 제로’라고 부르기까지 하고, 환자 중 한 명은 자기 자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것을 싸서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라고 했답니다. 자신을 버려야 할 사물로 취급하다니!

영 Young, A.W과 리프 헤드 Leafhead, K.M도 1996년 코타르 증후군을 서술한 바 있는데, 오토바이 사고로 뇌 손상을 겪은 환자가 에딘버그의 한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는 어머니를 따라 남아프리카로 갔답니다. 그는 자신이 지옥에 갔다고 믿었으며 사인은 패혈증이나 AIDS, 혹은 황열 yellow fever이리라 생각했다는군요. 그는 ‘어머니의 영혼을 빌려 지옥 구경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몸은 스코틀랜드에 잠들어있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위 예시 외에도 이 증후군 Syndrome 환자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며, 심지어는 자신을 의미하는 대명사 ‘나’의 사용까지도 거부한다는군요.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에서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 Walking Corpse Syndrome’의 발생은 사고력에 어떤 장애가 있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뇌’와 ‘신체’ 사이의 내밀한 연결고리에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당신은 잘 있나요?



▣ 참고 문헌

1) 스티븐 후안, 『뇌의 기막힌 발견』, 네모북스, 2006, P87.

2) 아닐 아난타스와미 Anil Ananthaswamy,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 자아의 8가지 그림자』, 더 퀘스트, 2017, p35.

3) 위키백과 ko.wikipedia.org (Young, A.W. & Leafhead, K.M. 《Betwixt Life and Death: Case Studies of the Cotard Delusion》. Hove: Psychology Press. 1996. p155.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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