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오마이북]
여기 몇 번쯤 왔더라? 세 번째 방문쯤 되는 것 같다. 집에서 4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 카페가 밀집한 지역과 조금 떨어진 곳에 [오마이북]이 있다. 동그리와 둘이서 오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함께했다. (비록 도동이는 아빠와 차에서 잠이 들었지만). 그래, 나의 서점메이트가 있으니 괜찮다. 도담아, 가자!
인근에선 이미 유명한 곳이다. 커피를 마시며 신간과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북카페라 해서 찾아가 보면 책은 벽장인 양, 그림인 양 놓여 있고, 사람들의 수다만 한창인 곳이 많다. 멀리까지 갔다 실망하고 돌아온 적도 적지 않다. 동네 서점에 가면 책을 오래 구경하기가 눈치 보일 때도 더러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여느 서점 못잖게 신간이 다양한 데다, 도서관만큼 책을 편하게 꺼내 읽을 수 있는 분위기다. 책을 읽고 싶어 온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독서에 흠뻑 빠진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출입구에 들어서니 이번에도 커피 향이 코끝에 맺힌다. 열심히 달려와서 그런지 커피가 절실하고, 독서도 간절하다. 마음이 급해진다. 아이의 음료와 내 라떼를 주문했다. 꽁지머리에, 희끗한 머리칼과 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분이 커피를 만들고 계신다. 이쯤 되면 직감이 발동된다. 저분이 사장님이구나. 무심한 듯, 무뚝뚝한 듯 커피를 건넨다. 긴 대화는 없었지만 과하지 않은 친절도 나쁘진 않았다.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이미 많은 자리가 채워져 있다. 아이들이 앉은 긴 테이블이 그나마 헐렁해 보여 그 옆에 도담이와 나의 엉덩이를 안착했다. 어린이 책장에 흥분한 도담이는 곧장 달려가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비닐이 씌워진 책들은 읽을 수 없었지만, 아닌 것들은 조심히 펼쳐볼 수 있게 허락되었다. 도담이는 책 속에 풍덩 빠져들었다. 내가 고른 책은 <모든 요일의 기록>. 역시 글 잘 쓰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요즘 내가 가진 생각과 결이 닿는 부분이 많아 공감이 갔다. 홀린 듯이 한참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책만 읽기에는 이 공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를 정리하고 본채를 나서니 작은 뜰이 있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별채가 보인다. <오, 마이 아지트>. 좁고 길게 뻗은 작은 공간이다. 여기에서 심야 책방이 열리고, 밤 시간에는 주류도 판매한단다. 캬, 주류라니. 응? 이 외진 곳에서 한 잔 하면, 집에는 어찌 돌아간담.
사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북스테이>다. 서점 동의 정면에 세 개의 스테이동이 있다. 내부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깔끔하고, 심플했다. 마침, 저기에 캐리어를 끌고 오는 두 명의 여성이 보인다. 20대 중반쯤 됐을까. 친구 사이인가 보다. 14인치쯤 되어 보이는 캐리어를 끌고 다른 손에는 하얀 비닐을 달랑인다. 그 안에는 맥주 여러 캔과 마른안주가 보였다. 지나가며 “너 오늘 무슨 책 읽을 거야?” 란다. 이곳에 숙박하며 서점에서 늦도록 책을 읽다, 별채에서 술도 한 잔 하는 코스인가 보다. 진정한 ‘북캉스’다. 와!
부러움 때문이었을까, 급격히 고파오는 배를 움켜쥐었다. <북스테이>동 옆 건물로 들어갔다. <오마이쿡>이다. 카페형 서점 앞에 주류 아지트가 있고, 스테이를 하는 데다 그 옆에는 식당이라니. 이런, 작은북마을이다. 숙박은 못해도 음식 맛은 보고 가자! 청도라 그런지, 반시를 올린 음식이 귀여운 맛을 냈다.
저마다 마음 속 다락방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 지칠 때, 속 상할 때, 숨고 싶을 때, 답답하지만 다 말하고 싶지는 않을 때 찾는 다락방. 내게 있어 책방은 그런 존재다. 희로애락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 글들을 읽으며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다 사는 건 비슷하구나.’ 싶은 위안을 얻곤 한다.
이번 나들이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힐링이었다.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셨고, 야외 의자에 앉아 잠시 찹찹한 바람을 쐬니 상쾌했고, 책 읽으러 왔다 맛있는 밥도 먹었다. 볕이 좋은 날, 비가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그 어느 때쯤 북스테이하며 제대로 된 북캉스를 기약해 본다. 다음을 기대하는 것도 삶의 큰 행복이므로. 올해 휴가 때 호캉스 대신 '북캉스' 하는 건 어떨까.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