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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Apr 25. 2024

노을 내린 처마 끝에 그림이 있었다.

경주, [소소밀밀] 대릉원점

 경주를 좋아한다. 경주에 남겨둔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대단히 애틋하거나 절절하진 않아도 떠올리면 웃음이 피식 나는 (아무리 신랑이 베프여도 그와는 공유하기 좀 그런) 귀여운 옛 시절 에피소드가 많은 곳이다. 이미 첨성대와 대릉원, 안압지는 그 옛날의 풍경이 아니지만 또 그 나름의 활기로 사랑스러운 곳. 경주다.


 경주를 사랑하게 될 중대한 이유 하나가 더 생겼다. 이곳이 마음 안에 드리웠기 때문이다. 그림책방 [소소밀밀]. 대릉원 근처 돌담길에 위치하고 있는 '대릉원점'은 작은 책방, 그것도 그림책을 파는 서점이다. [소소밀밀]이라는 이름은 성긴 곳은 성기게, 빼곡한 곳은 더욱 빼곡하게 채운다는 동양화법의 명칭을 빌어 지은 이름이란다. 느긋하고 성긴 성격의 그림책 편집자 아내와 꼼꼼한 성격의 일러스트레이터 남편이 여백이 있는 삶을 꿈꾸며 서울 생활을 떠나 뿌리내린 곳이라 한다. 2017년에 오픈했다는 이곳은 그간의 시간을 보여주듯 부부의 아기자기한 손때가 그대로 묻어난다. 작은 화분 하나, 그림 하나도 허투루 놓인 것 없이 그림 같았달까.


 그림책방이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아니고서야 발길이 닿겠나. 좀 조용한 서점이겠구나 예상했다. 보기 좋게 틀렸다. 이곳은 이미 너무나 유명해서 황리단을 찾는 이들이 관광코스처럼 찾는 곳임을, 체감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심지어 주말의 오후였으니 말해 무엇하리. 방문객들의 연령과 성별도 다양했고, 젊은 층의 고객이 꽤 많이 찾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소박한 외관에 알록달록 그림 같은 실내 

 우리가 방문한 때는 노을이 지붕 끝에 내리는 시간이었다. 구옥 지붕에 스르르 물드는 노을빛이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규모가 작은 구옥을 개조해 만든 서점이었다. 신축보다 어려운 게 구옥 개조라는데, 남겨둔 지붕의 서까래가 멋스러워 고개를 들게 만든다. 아담한 응접실에 들어간 기분이다. 공간을 오와 열로 세심하게 나누어 칸칸이 정성을 들였다. 외관은 소담한데, 실내는 파스텔 톤의 화병과 화분, 다양한 그림들이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그림책방답게 유아를 위한 책부터 어른의 감성을 소환할 그림까지 대문자 T도 F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그림들이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두 번 걸음 할 것 같다

 황리단길은 주말이면 사람들을 실어다 부어 놓은 것처럼 인파가 대단한 관광지다. 그 지척에 있는 이곳의 인기도 대단한 듯했다. 잠시 머무는 동안에만 수없이 손님이 나고 들었다. 잠시 들렀다 가는 손님부터 한참을 고요히 책에 빠진 이들까지. 그중 내 또래의 여성 두 명이 여사장님과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그림책을 추천해 주시는 사장님 말의 매무새가 다정하고, 꼼꼼했다. 저이는 다음에도 이곳에 와서 그림책을 사겠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살구빛 미소, 그리고 포근하게 짧은 대화

 실내 사진촬영이 금지되는 책방이라 살짝 난감했다. 찍어온 사진으로 기억을 떠올려 글을 쓰는데 사진을 못 찍으면 이 예쁜 걸 어찌 다 기억한담. 이런 난처함을 핑계 삼아 사장님과 몇 마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예상보다도 더 환하게 웃으시며, 몇 장의 사진을 허락하셨다. 서점의 시그니처 그림은 부부의 아이가 책을 보는 모습을 남편이 직접 그린 거라며 살구빛 미소를 지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포근하면서 단단한 느낌. 유쾌했다.  

  그곳에 잠시 물들었던 내 아이들 

 도담이와 서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둘째 도동이는 아빠와 마당 구경, 정확히는 길고양이와의 대화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한켠에 놓인 고양이 집에 때맞춰 나타난 냥이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지나치게 애정을 갈구하는 도동이를 보니 함박웃음이 나온다.


 [소소밀밀]은 아름답고 방문해 볼 만한 서점이었지만, 주말 핫플레이스인 이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래 머물기란 한계가 있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이곳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까 막막한 기분이 들었을 때 사장님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말을 건네셨다.


  "**** 근처에 ****이 있어요. 거기는 여기보다 조용하고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아요. 주차할 공간도 작게나마 있고, 찬찬히 둘러보시기 더 좋을 테니 기회 되시면 들러보세요." 


 그렇다. 고백하건대 사실 이 글은 정말, 너무나, 완전히 아름다웠던 ****을 쓰기 위한 프롤로그였다. 내일이라도 달려가고픈 아름다운 그곳에 대한 글은, 노을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써 볼 예정이다. 궁금증을 안고 [소소밀밀] 대릉원점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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