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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May 02. 2024

그곳에서 우리는 그림책의 한 페이지가 된다.

경주, [소소밀밀] 무열왕릉점

 "여기는 책을 판매하는 곳이고, 손님들이 많이 나고 들어서 찬찬히 책을 둘러보거나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일정에 여유가 있으시면 무열왕릉 근처 [소소밀밀]에도 방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편에 언급한 대로)


  대릉원점에 계시던 사장님께서 대화의 말미에 무열왕릉점을 언급하셨다. 그날은 이미 해가 저문 시점이었고, 나에게는 바삐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할 두 아이가 있으니 일정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가보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을 주머니에 구겨 넣어 집으로 왔다. 어떤 곳일까. 대릉원점과는 어떻게, 얼마나 다른 곳일까. 궁금증이 시시때때로 커져갔다.


  휴일이 되고, 또다시 우리 책방 원정대는 나들이를 떠난다. 나들이를 가장한 엄마의 책방 기행. 감사하게도 첫째 도담이가 작가 이상의 책사랑을 가진 아이라, 책방 기행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도담이의 기다림을 핑계 삼아 오늘도 출발이다. 부릉부릉 대구에서 한 시간 여를 달렸다. 벚꽃은 여름 잎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으로 남고 싶었는지 바람이 불 때면 꽃비가 나렸다. 봄날도 벚꽃잎도 지나가고 있는 어느 날, 그곳으로 간다!

  경주에 도착하고서 왕복 2차선의 도로를 한동안 달리다 보면 시골 마을에 들어선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따르다 보니 고즈넉한 느낌의 작은 마을이 눈앞이다. 시선 두는 곳마다 기와지붕이라 온통 'ㅅ'의 세상이다. 골목을 한참 들어간 것 같은데 책방이 안 보인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차량들이 여럿 세워진 곳이 눈에 띈다. 여긴가? 기웃하다 보니 한 계단 위에 작은 간판이 보인다. 발견이다!


  계단의 양 옆에 눈꽃처럼 조팝나무꽃이 피었다. 안개꽃의 환영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는데, 어서 오라는 듯 산새가 합창을 한다. 여긴 정말 조용하고, 고요한 시골의 마을이구나. 계단을 올라 마당 앞에 섰을 때, 동그리와 나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이야...여기.. 정말..."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그림책의 한 페이지다. 왜 이곳에, 전혀 상업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책방을 만들었나 수긍되는 순간이다. 

  이곳은 대릉원점 [소소밀밀]의 부부사장님이 운영하는 북카페다. 작업실과 북카페를 겸할 수 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을 꿈꿨던 사장님 부부가 몇 해 전 오픈한 곳이라 한다. 대릉원점과 비슷한 듯, 다른 점이 많았다. 대릉원점이 서점이라면, 이곳은 책을 판매하지 않고, 음료와 간단한 디저트류, 그림책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그림북카페다.


 본채는 음료를 주문하는 공간과, 책을 읽을 테이블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본채의 창가에 햇살이 들이치는 시간이었다. 커튼에 바람과 햇살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찡끗날 것 같다. 본채에서는 책 보다 풍경을 바라보다 가야 할 것 같았다. 이 창가에 '평온하다'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음료를 주문하는 사이 세 남자는 별채에 가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따라 들어가니, 이건 또... 대체. 이곳의 정체는 뭐람. 옛 모습 그대로 살린 서까래 아래에 넓은 테이블을 하나 통으로 놓아, 포근한 패브릭을 깔아 두었다. 아지트, 동굴, 다락방 같은 느낌마저 드는 이 별채에는 마음껏 읽으라며 그림책이 잔뜩 놓여있다. 책장에는 어른들의 마음을 울릴 그림과 이야기가 가득이다. '어른이 무슨 그림책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이 안에서 그 말은 오만이다.

  그저 그런 공간이 없었다. 가능만 하다면 여기에 머물러 모든 책을 찬찬히 다 읽고 싶은 욕심마저 자란다. 시원한 커피와 과자를 먹으며 한동안을 머물다 보니 단체 손님이 들어선다. 둘째 도동이가 슬슬 지루해 몸을 꼬던 참이었기에 큰 테이블을 내어주고 우리는 야외 의자로 향한다.

  도담이는 덜 읽은 책을 갖고 나와 한참을 읽었고, 도동이는 마당에 나타난 고양이 친구가 반가워 콩콩 뛰어다닌다. 볕은 따뜻하고, 두 아이는 각자의 방법으로 마당에서 즐겁고, 신랑은 마당을 걸으며 풍경을 바라본다. 새는 짹재잭 울고, 어미와 새끼 고양이는 우리와 함께 공간을 즐기고 있다. 음료는 달고, 시원하다. 그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책방기행을 다니며 얻게 되는 즐거움의 정체에 대해. 바로 이런 평온과 행복감이었다.  


  지금의 이 풍경을 그림책 안에 그려 넣고 싶었다. 이곳에 앉아 동화책을 쓰고 싶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기도 하다. 무엇이든 하면 그것대로 아름다운 파스텔의 그림이 될 것 같다. 별채에서 읽다 나온 책이 다시 떠오른다. 그렇다, 살다 보니 행복은 이런 거였다.  

 

도담이가 쓴 서점 일기

 우리 가족은 그날, 그곳에서 그림책의 한 장이었다. 행복이었다.  6월이면 마당 담벼락에 장미 넝쿨이 흐드러져 눈이 부실텐데, 여름의 그림책 속으로 가야지. 가지 않을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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