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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May 09. 2024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대구, [더폴락]

 또 어떤 책방에 나들이를 가볼까 행복한 검색을 하고 있었다. 등 뒤로 동그리의 말이 주르륵 내려앉는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책방은 소개하지 않아?"

 두둥. 그랬구나. 정작 이곳 대구의 지역책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의도적 회피는 아니었지만,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내 시선은 늘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명언 중의 명언이구나. 여행 삼아, 나들이 삼아 책방을 찾다 보니 가까운 곳은 그냥 스쳐 지날 뿐이었다.

 

 책방을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개성있는 책방들이 이토록 가까이에 많았구나. 그중 단연 눈에 든 곳이 [더폴락]이었다. 대구 최초의 독립책방이라는 점과 특이한 상호명이 마음을 붙잡는다. 멀지 않은 곳인 만큼,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간 짧은 틈을 타 사부작히 다녀오기로 한다. (책방 메이트 도담아, 미안.)


 북성로 하면 우동. 1 대 1 대응처럼 떠올렸던 나의 무지함을 느낀다. 이런 동네였던가. [더폴락]은 경상감영공원 근처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대구에 오래 살았지만, 이쪽은 들어온 적이 없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 길은 최첨단이 주는 전율과 또 다른 류의 잔잔함을 느끼게 한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의 한 중간에 작고 노란 입간판이 보인다. 우와, 건물의 외관도 남다르다. 마당이 있는 적산 가옥(일본식 건축물)의 1층이라니.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터널을 지나는 건 마치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키 높은 책장이 서점의 존재감을 알린다. 길게 뻗은 매대형 진열대와 창가에 놓인 세 개의 테이블은 책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사장님은 우리를 반기시며, 찬찬히 구경할 수 있게 대화의 여백을 주었다. 둘러보니 익숙한 책이 거의 없다. 최근에 발간된 메이저 출판사의 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쭤보니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것을 주된 업으로 하신단다. 건물 만큼이나 놓인 책들도 개성 넘친다. 표지부터 소재, 제목들이 굉장히 다채롭다. 그리 넓지 않은 이 공간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를 담아낸다는 것이 놀랍다.    

 처음 들어설 때의 계획은,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사서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의자에 앉지 못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던 서점으로서의 고정관념을 깨 주는 작은 '차이'가 고마웠다. 어떤 재미가 있는 공간인가.


 1. 개성 넘치는 내용의 책들

 책에도 성격이 있다면, 이곳의 책들은 딱히 교훈을 남기려 애쓰지 않고, 지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소탈하고 허심탄회한 느낌이 강하달까. 책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이 책을 어떤 과정으로 출간하게 되었을까. 관심분야도, 출판 연도도 다양하다. 2018년 이슬아의 문집이 있는가 하면, 2022년에 출간된 책도 있다. 새책을 파는 서점치고 여기는 정말 신기한 곳이다.

사장님이 북성로의 풍경을 펴낸 책들

 2. 서점에서 책을 읽다, 노래 제목이 궁금해졌다.

 서점에 흘러나올 법한 클래식하고 잔잔한 노래가 아니었다. 꽤 큰 볼륨으로 인디풍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책을 고르다 고개를 들면 귓전에 들리는 리듬이 너무 유쾌해 기분이 좋아졌다. 음악 선곡도 이 책방의 매력 포인트 아닐까. 둠칫 둠칫, 혼자 속으로만 느끼던 비트를 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일단 둠칫 두둠칫!

 3.  옹기종기, 아기자기한 소품에 심쿵주의

 담뱃갑 모양의 책을 보고 참신한 아이디어에 놀랐다. 한 장씩 꺼내 읽을 수 있는 책. 짧은 문장이 아니라 정말 책이 한 권 들어가 있다. 주머니에서 초콜릿처럼 꺼내 먹는 책, 흡연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담배 대신 책을 피워 보게." (금연 효과는 보장할 수 없다.)  


 4. 독립출판서점의 존재이유, 서점의 마인드

 이곳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다. 왜 [더폴락]일까. '볼락' 생선이 연상되는 이름이기도 하고, 책방 앞 간판에도 생선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눈에 띈다.

 " 저는 친구와 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가 처음부터 서점을 운영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양성은 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이름을 지을 때 '명태'라는 생선을 떠올렸습니다. 명태는 건조 방식에 따라 황태가 되기도 하고, 북어, 먹태가 되기도 하지요. 표현의 다양성. 그 마음을 나누는 게 저희의 가장 중심 생각이랍니다."


 독립책방의 수명과 존재이유에 대해 논하는 사람이 많다. 독립서점은 3,4년이 고비이며 대형서점과의 차별점이 없어 사라지는 곳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 왈가왈부의 세상에서 10년이 넘는 기간 책방(문화공간)을 지켜내는 두 사장님의 뚝심이 멋지다.


 이곳에 와서 책을 왕창 사가거나, 대단히 삶에 큰 변화를 얻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넓고 쾌적하고 세련된 느낌을 사랑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한 작가들의 책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런 책방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지켜내는 지역의 작가들, 소규모의 출판물들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10년 이상 이어간다는 건, 남들이 말하는 소위 '돈 안 되는 일'에  소신을 지켜간다는 건 어느 정도의 단단함이 있어야 가능할까. 지금 가고 있는 나의 삶이, 하고 있는 일이 어디로 향하는 건지 매 순간 물음표인 나에게,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느라 정신이 없는 내게 작은 변화와 다짐을 준 곳이다.때때로 마음이 흔들릴 때, 무언의 다짐이 필요할 때 잠시 들러 이곳의 책들을 읽으며 생각할 것이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고민 한 가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표현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명태에서 시작한 내가 북어이든 황태이든, 노가리든 동태든 이름은 상관 없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해 제각각의 생각과 이름을 가진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내 이름을 찾아 책방 기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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