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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Jun 07. 2024

잘 익은 책방에 들어서는 행복

전주, [잘 익은 언어들]

 5월의 어느 일요일. 날이 유난히 따사롭고 화창했다. 이런 날은 어디로 떠나든 평균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게 분명하다. 아이가 뛰어놀 장소를 검색하는데, 도담이가 먼저 새로운 책방을 찾아 보자 말했다. 고마운 마음이었고, 설레버린 나는 덥석 아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아이도 새책을 살 생각에 설렜을지도) 그리하여 떠난 곳은 전주다. 우리 원정대 이번 주도 부릉부릉 출발이다.

서점 밖에 적힌 문구들, 심쿵 포인트 가득이다.

 전주에서 맛있다는 비빔밥 집을 찾아 배를 채운 뒤, 곧장 찾은 곳은 전주의 [잘 익은 언어들]. 역시나 번잡하지 않은 작은 도로가에 자리 잡았다. 반듯하고 하얀 건물에 적힌 글귀들이 문을 열기 전부터 심쿵이게 한다.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글귀가 걸음마다 붙잡았다. 수많은 책방을 다녔고, 많고 많은 코멘터리들을 읽어왔지만 이곳의 언어는 조금 달랐다. 감각적이랄까. 그렇다. 이곳의 책방지기님은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짧은 문구에도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무장해제 시키는 포인트가 있다. 이 책방에는 분명 잘 익은 무언가가 있었다.  


 

책방투어를 다니다 들렀다는 글귀가 어찌나 반갑던지

1. 심쿵한 코멘터리에 발길이 잡히고

 벽의 두 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주제별로 짧은 소개와 함께 관련 책들이 꽂혀 있다. 벽면의 두 책장을 훑어보는 것만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로 모든 문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걸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부러움 반, 즐거움 반이었달까. 그러고 보면 설 익은 언어를 가공해 잘 익히는 것이 작가의 소명일지 모르겠다. 잘 익은 언어를 접하는 반가움이 이토록 크다면 말이다.   


세 살도 책을 읽게 만드는 마법의 강아지

 2. 아이와 함께 간다면 설렘은 배가 되고

 한참을 둘러보다 책방의 중앙부에 위치한 책장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어린이들이 창작에 참여한 책들이 아기자기 놓여있다. 따스한 느낌의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앉아 속닥속닥 그림책을 읽고 있다. 한 장의 엽서 안에 우리 가족이 함께 들어온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아이를 위한 책이 굉장히 다양하게 보인다.


책방지기님이 출간한 책과 뚝심의 멘트들

 아이와 함께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 책방지기의 마음이 느껴져 엄마로서 고마웠다. 너무 잘 팔려 '흔한 남매' 책을 입고하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뚝심에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덕분에 도담이도 다양한 도서를 편식 없이 마음껏 둘러봤으니 이 또한 고마운 마음.


다양한 책에 매료된 도담이

 3. 모든 연령, 독자층을 고려한 책방이고

 한쪽 공간은 어린이를 위해, 또 책방이 좋아 방문한 이들을 위해, 신간을 찾는 이를 위해, 독립서적이 궁금한 이를 위해, 잠시 앉아 글을 읽고 싶은 이를 위해 작은 공간들을 마련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동네책방, 작은 책방들이 책방지기의 취향과 판단의 필터링을 거쳐 큐레이션 되지만 결국은 이곳을 찾는 다양한 이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도 좋을 것 같고, 친구와 혹은 아이와 함께 와도 좋을 것 같다.

 4. 더 잘 익은 홍시가 있고

 책방을 모두 둘러보고 나서려는데 한쪽 공간에 자리 잡은 '홍시'코너가 보인다. 중고책 판매코너란다. 세상에, '홍시'라니. 표현이 그야말로 찰떡이다. 덜 익은, 잘 익은 시기를 지나 아주 물렁하게 무르익은 홍시 같은 책. 그냥 두면 물러 스러질 테지만 딱! 지금 먹으면 달콤하고 좋을 홍시. 중고책이란 여러 손을 타고 왔지만 그만큼 잘 여물어진 책이다. 이런 센스는 타고나는 걸까, 학습되는 걸까. 이곳 역시 미소포인트다.



내가 구매한 책과 다정한 그녀의 쪽지

 5. 다정한 말들이 있고

 우리가 방문했던 주말에는 사장님 대신 (잠깐씩 도와주신다는) 직원분이 계셨다. 이왕 멀리 찾아온 거 사장님을 뵀으면 좋았을 텐데,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간단한 질문에도 달려 나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눠주신 덕분에 아쉬웠던 마음이 스륵 녹는다. 동그란 눈에, 단정하게 빗어 내린 생머리, 작은 체구에서도 크게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목소리의 그녀였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분 역시 책을 출간하신, 책을 읽고 쓰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열 사람을 만나면 열 가지 배울 점이 있다더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대화였다. 책방을 둘러보러 전주에 왔다는 말이 너무나 반가웠는지, 메모지에 방문해 보면 좋을 곳들을 손수 적어주기도. 이곳은 사람마저 잘 여물어 있구나.



 이곳을 나와 두 군데의 책방을 더 들렀다. 검색을 하면 금세 알 수 있는, 나름 이름이 있는 두 곳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우리와 맞지 않았던 건지, [잘 익은 언어들]이 너무 좋아 여운이 짙은 탓인지. 글 대신 마음으로만 남기기로 했다.

(본인의 허락을 득하여 올리는) 도담이의 일기 중 일부

 전주, [잘 익은 언어들]에 다시 방문할 거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네'라 답하겠다. 그 땐 어떤 글귀로 심쿵 당할 지 기대하며 말이다. 일기를 보니 도담이도 같은가 보다.


 부디, 나의 글도 잘 여물어 잘 익은 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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