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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미 Sep 30. 2021

04. 젖믈리에

  아이를 낳고 세상에 적잖이 배신감을 느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이렇게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때가 많은데, 이렇게나 지난하고 고단한데 왜 아이를 낳으면 꽃길이 펼쳐질 것처럼 다들 축하만 했던 것인지. 아니 한 사람쯤은 출산 후 근미래에 닥칠 재앙을 알려 줄 수도 있었잖아. 누굴 붙잡고 탓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온 이병헌처럼 나도 허공에 묻고 싶었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왜?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사람이라서 왜 그랬냐 물어봤자 답할 사람도 나라는 사실. 그리고 그 영화에 명대사라면 이런 것도 있지. '그렇다고 돌이킬 순 없잖아요.'


여하간 출산을 하고 나니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핏덩이를 들이밀고는 누구 하나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일을 엄마라면 당연히 알아야지, 아니 여태 그것도 몰랐냐며 천치 취급을 할 때가 많았다. 머리로 알고 있던 것조차 막상 닥치자 안되는 일 투성이었다. 가령 신생아는 목을 받쳐 안아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건네받자 그 목이란 게 지나치게 가냘파서 목을 건드리기만 해도 사달이 날 것 같았다. 또 임신, 출산 관련 책을 통해 신생아는 두 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젖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봤지만 그로 인해 나 역시 밤낮 구분 없이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려야 하며, 심지어 그 기간이 석 달 열흘 보다 더 이어지리라는 것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다.(낳아 놓으면 내가 자는 동안 누가 봐줄 줄 알았지.) 그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젖을 물리는 법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젖을 빠는 것은 포유류의 본능이라 젖을 물리기만 하면 새끼가 쪽쪽 빨아서 제 살 길을 찾는 줄 알았다. TV 동물농장에선 나자마자 새끼가 알아서 벌떡 일어서던데? 애미 젖을 잘도 찾아 먹던데?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했다. 혼자 서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젖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애미가 대령해야 했다. 모유가 잘 나오도록, 아이를 배불릴 정도의 적정양이 나오도록, 아이가 젖을 잘 물 수 있도록 애미가 노력하는 것이었다니! 처음부터 노력의 분야로 분류했다면 각오라도 다졌을 텐데. 따로 배우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맞으니 모든 과정이 어렵게 느껴졌다. 


출산 후 많은 일들이 그랬지만 모유 수유는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다. 더구나 육아는 산모의 몸이 회복되는 걸 봐가며 단계별로 차근차근 알아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새끼를 낳는 건 내 사정 봐가며 하는 수준별 학습이 아니고 마치 펄펄 끓는 온탕에 누가 확 밀어넣는 것 같았다. '적응기 같은 소리 하네. 잔말 말고 들어가라고!' 하는 것처럼. 풍덩!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 일주일 정도 입원을 했다. 병원에선 첫날은 송장처럼 베개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으라더니 둘째 날부터는 갑자기 걸으라고 했다. 갑자기요? 걸으라고요? 거의 뭐 성경이 따로 없다. 간호사는 베드로요 나는 앉은뱅이라, 간호사가 일어나 걸으라 하면 걸어야 하는 분위기인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나는 누워만 있었다. 

움직이면 수술 부위가 터질 것만 같아서 혼자 일어나 앉기도 무서웠는데 출산 후 삼일 째부터 병실로 전화가 왔다. 아이 젖 먹일 시간이니 다른 층에 있는 수유실로 걸어 내려 오라고 했다. 저기 선생님, 아무래도 뭘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그저께 배를 갈랐던 사람이거든요? 칼로 배를 가르고 꼬맸다고요. 젖을 주라고요? 찾는 사람이 제가 맞나요? 혹시 휠...휠체어 없나요? 간호사들은 휠체어 찾는 나를 어이없어 했다. 아 출산이라는 느와르. 영화에서 보면 산전수전 다 겪은 조폭도 칼에 찔리면 병원에 누워 쉬는데 걸어 내려와 젖을 주라니. (물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 엘리베이터까지도 삼보일배의 속도로 벽을 짚고 엉금엉금.) 


수유실 문을 열자마자 뻘쭘하고 조금 놀랬지만 사회생활의 노하우는 이런 데서 나온다. 속으로 식겁해도 태연한 척할 수 있지. 아마존도 아니고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여성들이 일렬로 앉아서 가슴을 다 내놓고 젖을 주는 풍경이 생경했다. (나는 모유수유기를 내 인생의 아마존기라고 부른다.) 문명따위, 과학따위 비웃는 듯한 풍경. 수유실을 몇 차례 다녀오고 나니 익숙해지기는커녕 수유하러 오라는 간호사의 전화가 갈수록 두려웠다. 나는 수유할 마음의 준비가 안됐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인프라도 나빴다. 젖을 물리는 동안 나는 나대로 답답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용을 썼다. 젖을 빨아 보겠다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용을 쓰던 아이가 칭얼칭얼 시동을 걸다가 결국 와아앙 울음을 터뜨리면, 수유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게 민망해서 아이를 수유실 간호사에게 허겁지겁 넘기고 도망쳐 나오는 걸로 끝이 났다. 


젖이란 것이 신기한 게 출산 후 모유가 원활히 분비되지 않거나 혹은 적시에 배출하지 않으면 젖몸살로 돌아온다. 젖양이 너무 적어도 안되고, 많아도 방치하면 안 된다. 젖몸살이 오면 젖이 퉁퉁 부으면서 딱딱해지고 온몸에 열이 나기도 한다. 감기처럼 땀 빼고 견디면 시간이 지나면서 낫는 게 아니라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점점 더 심해지기 때문에 정면 승부밖에는 답이 없다. 두통이나 복통, 요통처럼 우리가 살면서 겪어 본 성격의 통증이 아닌 데다 약을 처방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환장한다. 진통제가 잘 듣지도 않거니와 애미가 먹는 모든 식품과 약 성분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므로 아파도 약을 먹을 수가 없다. 젖양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문제가 생긴다. 젖은 소모될수록 더 생성되는 특징이 있어 출산 후 옥시토신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될 때 젖양을 늘이지 않으면 젖양이 점점 줄어서 결국 마른다. 


젖양이 적으면 분유를 먹이면 될 일인데. 허허이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출산하고 나니 당분간은 아이를 기르는데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나쳐 '좋은 엄마 플렉스'가 생겼다. 사전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니 스스로 육아 방향이란 걸 세울 수도 없고, 나한테 맞는 방법이 뭔지도 모르겠고 남들이 좋다고 하면 따라야 할 것 같은 지나친 강박증을 가지는 거다. 그런 와중에 아이를 낳은 병원에서도 모유 수유를 강조하고, 주변 어르신들이 모두 한뜻이 되어 '초유는 어떤 보약에도 비할 수 없다', '모유만 잘 먹여도 평생 감기 걸릴 횟수가 줄어든다'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등등 모유 찬양을 서라운드로 해쌌는데. 이러니 칼로 가른 배가 채 아물기도 전에 어떻게 해서든 젖을 짜내게 되는 것이다. 출산 직후에는 모유 수유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나의 직무유기요, 나 편하자고 아이를 등한시하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서 분유를 주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쟁사회에서 자란 사람답게 다 하는데 나만 안할 수는 없지, 하는 마음으로.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젖을 잘 물리는 경산모들을 둘러 보고, 신생아실 간호사한테도 틈틈이 묻고, 새벽녘 홀로 외로이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가며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된다. 


공부나 업무는 한 시간치 노력을 하면 그 반의반이라도 성과가 나지만. 육아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노력을 해도 애는 애대로 양껏 못 먹고, 나는 나대로 젖몸살로 괴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과외 선생님을 모셔야겠다 싶었다. 이런 분야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세상을 속단하지 말 것! 국영수 과외뿐만 아니라 세상엔 젖과외라는 것도 있으니. 병원에서 며칠 지나니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자고 일어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침대 머리맡이나 침대 옆 사물함에 명함이 꽂혀져 있었다. 명함의 디자인은 일수, 급전, 대리운전풍으로 빨강, 노랑이 많이 섞여 원색적인데 내용은 "젖몸살 마사지, 하루 만에 풀어드립니다.". 여러 명함 중에 가장 은은한 디자인의 명함으로 골랐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전반적인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참 많다 싶었는데, 살다 살다 젖과외까지 받게 되다니. 외부 마사지사가 병실에 오는 것은 병원에서 금지한 일이라 선생님은 암거래를 하듯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마치 보호자인 양 슬며시 들어오셨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선생님은 젖믈리에였다. 초면에 거침없이 내 앞섶을 재끼고 젖꼭지 모양을 진단했다.(아이고, 모양이 물기 어렵겠네. 쯧쯧) 그리고 앞으로의 젖양이나 젖의 퀄리티도 예측해 준다.(물젖이네, 참젖이네) 이 리그에서는 출산 전에 봉긋했던 가슴모양같은 건 필요없다. C컵이라고 젖이 더 나오고 A컵이라고 젖이 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민간신앙같은 이야기지만 젖양이 많아도 물젖은 마치 물에 희석된 것과 같아서 배가 빨리 꺼지고 영양분이 적고, 참젖은 양이 좀 적어도 영양분이 많이 함유돼서 좋다고 했다.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참젖이라고 했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이야기에도 조금의 희망을 붙잡고 안도했다. 


젖믈리에 선생님는 가슴을 쥐어짜듯이 이리저리 비틀기도 하고, 등을 풀어야 젖이 잘 나온다며 등을 마사지해 주기도 했다. 젖을 물리는 방법도 알려 주시고, 젖양이 늘어나는 식품도 소개했다. 어디라도 붙잡고 물어볼 데가 생겼다는 게 위안이 되고, 몸이 좀 나아지니 살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젖믈리에 선생님이 가슴에 양배추를 얹고 있으란 소리를 하면 잊고 있던 문명세계의 자아가 말을 걸었다. 아......이게 뭐지? 양배추를 가슴에 얹으라고요? 참 여러 방식으로 자존감이 쪼그라든다. 양배추를 붙인 나 자신을 메타 자아가 비웃으며 보는 것만 같다. 젖몸살로 인한 열이 가라앉으니 안 붙일 수도 없고 거 참. (내가 없어도 문명세계는 잘 돌아가겠지. 다들 하하호호 웃으며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막 AI가 어쩌고, 자율주행이 어쩌고 하는 시대에 살겠지. 인류여, 무인자동차에 실려 다니는 시대가 와도 젖몸살엔 양배추를 붙인답니다.)


주어진 역할은 기를 쓰고 노력하도록 학습된 동아시아의 여성으로서 젖양을 늘이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 망할 놈의 경쟁사회! 애 낳고 누운 나온 사람조차 옆 산모와 젖양을 비교당한다. 도태되는 것도 싫고, 제 아이한테 밥도 제대로 못 주는 어설픈 엄마로 주목당하는 것도 싫고, 내 새끼가 나자마자 겨우 분유를 먹는다는 이유로 불운아 취급을 당하는 것도 싫고. 이 모든 것을 타개하는 것은 내가 젖양을 늘이고 모유 수유에 적응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입맛이 없더라도 한우 미역국, 전복 미역국, 황태 미역국 등 온갖 미역국을 돌려 먹고, 맵고 짜고 단 음식이 아니라 5대 영양소가 골고루 함유된 슴슴한 식품을 섭취해야 했다. 임신기간이 끝나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커피도 언감생심. 이것저것 먹다 먹다 돼지앞발 고은 물을 소금 간도 없이 마셨다. 머릿속은 이게 뭐람,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마존에는 아마존의 법이 있으니까.


두어 달 노력했지만 야속하게도 내 젖양은 늘지 않았다. 하루 한 끼만 겨우 모유를 먹였고 그마저도 젖을 물려 수유를 하는 일명 '직수'가 아니라 젖병에 모유를 짜서 먹였다. 산후조리를 해주시는 분도, 임신출산관련 책에서도 모두가 애 정서가 어떻고, 영양분이 어떻고 하면서 내 죄책감과 나오지도 않는 젖을 동시에 쥐어 짰다. 그뿐이랴, 모유 수유가 잘 안된다는 이야길 들은 일가친척과 이웃들은 모두가 비공식 젖믈리에였다. 흑염소즙을 먹어라, 아니다 호박즙이다! 일단 물이라도 많이 먹어라, 이렇게 물려라 저렇게 물려라, 유축기를 좋은 걸 써라, 젖이 잘 안나와도 세 시간에 한 번은 짜내라 등등의 조언을 했다. 


모두가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라고, 아이에게 좋으니 엄마가 더 노력하고 희생하라고 이야기할 때, 그 노력을 멈춰준 것은 친정 엄마였다. 산후조리를 위해 우리집에 함께 머무르며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던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울고짜는 나를 보면서 단호하게 그만 때려치우란 말을 했다. 육아휴직 끝나면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할텐데 회사에서 눈치보면서 유축하지 말고, 젖 말리느라 또 고생하지 말고 어차피 안나오는 젖 연연해하지 말라며. 분유는 누구라도 시간맞춰 먹이면 되니까 너는 나가서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잠깐씩 자유시간도 가지고 밤에도 이제 그만 푹 자라고 했다. "에이고, 내 새끼 등골 다 뺀다" 는 말과 함께 나를 문명사회로 내보내줬다.  


얄궂은 일이다. 새끼한테 젖 물리는 법은 친정엄마가 제일 먼저 가르쳐줄 줄 알았더니. 온 세상이 나서서 내 엑기스를 뽑아 새끼를 살찌우라고 하는데 유일하게 내 엄마만이 막아섰다. 그리고 나는 내 새끼에게 나를 빨아 먹이는 대신 엄마의 희생을 빨아 먹고, 엄마말대로 커피도 다시 마시고 기름지고 간이 센 음식도 간간히 먹으며 겨우 살만해졌다. 딸아이가 나중에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래서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혼자 외롭게 유축하는 밤을 보낸다면 나도 그놈의 유축기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말할 것이다. 에이고 내 새끼 등골 다 빼네! 모유를 잘 못먹여서 잔병치레를 많이 하면 어쩌나 내심 염려하기도 했는데, 지난 십 년간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분유를 먹든 모유를 먹든 모두 잔잔한 병들을 이겨내며 자란다. 혹여나 나와 같은 아마존기를 보내는 초보 산모가 이 글을 본게 된다면 모유 수유가 애정의 척도가 아님을 말해주고 싶다. 모유를 짜낸 시간을 인생의 암흑기로, 문명이 없던 시기로 기억하는 대신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기쁜 마음으로 돌보는 것이 더 유익한 일이라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두가 젖믈리에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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