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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08. 2022

사랑하라고 배웠어.

시나리오

-버릴 수 있던 거였어. 도망가는 게 아니라.


하진이 말했다. 뒷 골목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불려나온 세종은 편의점 의자 위에 신발을 벗고 쭈구려 앉은 하진이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 편, 그는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난 왜 그동안 도망간다고 생각했을까. 비겁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냥 그랬어. 사랑해야만 했어. 내 앞에 놓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했어. 교회에서 그렇게 배웠거든. 알지, 우리 집 개독교 집안인 거. 사랑하라고 배웠어. 근데 그 말 너무 폭력적이지 않냐? 또 웃긴 건 나 그래서 죽도록 사랑했어. 심지어 교회를 나오고도 내 오랜 정체성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거야. 헷갈리기도 해. 내가 교회에서 자라서 그토록 사랑사랑 하는 건지, 원래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 그런데 이제 버릴거야 나. 귀찮아. 버리고 싶어. 그런데 나 너무 내 말만 많이 하나? 


하진은 말들을 나직이 내뱉다가 앞에 앉은 세종을 알아차린다. 마치 독백을 하다가 관중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신기하다는 듯한 느낌도 들게 했다. 세종은 그 느낌에 살짝 뻘쭘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당황스러움을 하진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안갯속을 걷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꺾고 말하다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신다. 세종도 같이 맥주 캔을 비우고 묻는다.


-뭘 버리고 싶은거야?


-부모.


하진은 물방울 같은 눈으로 세종을 바라본다. 그 물방울은 너무 투명해 그 안의 불꽃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 뭐 하긴. 나도 부모님 보면서 드는 생각이 많긴 하더라. ‘참고 사는 거 지겹지도 않나…….’ 뭐 그런? 돈 벌어온다고 집에서 술주정 부리며 강자 순위를 다지는 아빠도 짜증나고, 그 얄팍하고 유치한 순위권에서 발언권이 없는 우리 엄마는 순순히 그 사람 주정을 다 받아주고. 그래 아유. 야. 그냥 버려라. 너라도,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버려. 아, 그리고 이건 탈룰라 아니다. 너가 먼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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