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ROW TUMSKI, 아름다운 세상이 잘 보이길 나의 도나 16
"연짱이, 오늘 포즈난 일정 마지막 날인데 어디 갈까? 구시가 볼거리는 대체로 본 것 같으니까 다른 데 가보자."
"다른 데 어디? 말타호수?"
"선택지 1번, 폴란드 공산 정권 하에서 일어난 봉기를 기념하는 미츠키에비치 공원. 선택지 2번, '오스트로프 툼스키(OSTROW TUMSKI)' 라고 불리는 대성당 섬에 있는 성 베드로 & 바울 바실리카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ST PAUL)."
"하나는 공원이라고 해봐야 건물에 들어가서 여기 사람들이 공산정권에 저항하였던 내용 열심히 읽어야 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성당이라서 엄마가 또 스테인드 글라스하고 천장 패턴하고 제단화 엄청 찍게 노동시킬 거잖아. 말타호수는 안 갈거야? 자전거 탈 수 있다며."
"음. . . 말타호수는 대성당 섬 가는 길에 있는 것 같고, 미츠키에비치 공원은 성당하고 반대 쪽에 있어."
"그럼 당연히 성당 들렀다 말타호수에서 자전거 타야지, 엄마."
"이 추운 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싶냐?"
"응, 매우 타고 싶어."
무서운 놈. 연짱이가 대관람차에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들른 도시마다 하였다. 폴란드 사람들의 대관람차 사랑은 대단하여서 들른 도시마다 대관람차가 없는 곳이 없었으니. 눈보라 혹은 비바람 맞으며 타는 대관람차라니 그나마 자전거에 만족하는 연짱이여서 감사해야 하는건가.
대성당 섬은 피아스트(PIAST) 왕조의 첫 번째 주요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968년 폴란드 최초의 주교단이 설립되었고, 성 베드로 & 바울 바실리카 대성당은 같은 해 건축된 최초의 폴란드 대성당이다. 성당 내부에는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묘비와 1512년 고딕양식 제단, 그리고 최초의 폴란드 통치자인 미에슈코 1세(MIESZKO I)와 볼레스와프 흐로브리(BOLESŁAW CHROBRY)의 석관과 동상이 있는 19세기 황금 예배당이 있다. 성당 지하에는 초대 대성당의 유물과 최초 통치자들의 무덤 그리고 세례당이 있다고. 성당 출입문은 건물 정면의 15세기 고딕양식의 정문을 지나 건물 전면에 있으며, 1979년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청동 문은 베드로와 바울의 생애를 보여준다. 성당 내부는 대부분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고.
성 베드로 & 바울 바실리카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ST PAUL) 전면 모습.
교황 요한 바울 2세.
1978년 10월 16일 교황에 선출되어 10월 22일에 임명되었고, 교회 역사상 최초의 폴란드인 교황이시다. 그러니까 456년 만에 처음으로 선출된 비(NON)이탈리아계 교황. 라틴어뿐만 아니라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교황님이셨다. 1981년 5월 13일에는 요한 바울 2세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 국적을 가진 메흐메트 알리 아그카가 교황을 저격하여 중상을 입혔는데, 당시 교황은 로만 카톨릭 교회와 조국 폴란드의 자유노조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여온 이유로 암살음모가 꾸며진 것이라고 여겨져, 저격범과 공모자들은 후에 증거부족으로석방되었던 일도 있었다. 1984년 5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하였다. 교황님 방한과 그의 일정이 매일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것을 나는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대성당 정문 위에는 높은 고딕양식의 창이 있고, 그 위에 계단식 박공(CROW-STEPPED GABLES)과 무늬만
창문인 막힌 창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박공장식이나 모양만 창문일 뿐 실제로는 막힌 창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에서는 비교적 자주 볼 수 있으며, 대성당 자체는 고딕양식 바로 이전 건축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이 쓰였다고 되어 있다. 건축 문외한인 내 눈에는 조붓하고 긴 창문과 뾰족 탑 그리고 두터운 외벽 모습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고딕양식이나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대성당 전면에서 볼 수 있는 두 개의 탑.
경건한 곳이니 예배 중에는 관광객들은 들어가지 말 것이며, 성당 지하에는 폴란드 초기 지배자들의 무덤이
있으니 티켓 구매하여 볼려면 보라고. 연짱이가 으스스한 지하도 싫고 그 지하가 무덤인 것도 싫다고 강력 어필하여 관람하지 않았다.
성 베드로 & 바울 바실리카 대성당은 규모는 매우 컸지만, 지금까지 봤던 성당들보다는 덜 화려찬란하였다. 두 손 모으고 앉아 안온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은 색채감 소박한 성당이었다.
정교 교회(ORTHODOX CHURCH)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수 단지. 지금까지 방문하였던 폴란드 성당들은 전부 로만 카톨릭 성당이어서, 어느 곳을 가도 성수 단지와 성수 그릇이 놓여 있었다.
베드로, 요한, 바울, 야곱 등의 성인을 그려넣은 벽화.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와 여성 성인들을 그려넣은 천장화.
천장화 색감이 참 좋았다.
고딕 혹은 로마네스크 양식 특유의 층고 높은 천장과 내가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좋아서 가슴이 한없이 뛰었다가 다시 차분해지는 현상 두 가지를 이곳에서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었다.
층고 높은 별 패턴 돔 천장. 사랑합니다.
"엄마, 천장 패턴하고 성당 안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란 스테인드 글라스는 다 찍어줄게."
"고마워 연짱이."
토요일도 일요일도 아니라서 느긋하게 둘러보고 있었는데, 저 분들 어쩐지 그냥 모여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저 분들이 서로 담소 나누고 있을 때 좀 더 제단화 가까이 가 보았다. 평상시에는 제단화 패널을 펼쳐놓지도 않거니와 아예 제단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막아놓기 때문에, 지금 같은 경우는 매우 귀한 상황이다. 이 때 눈치챘어야 했다.
대성당의 후기 고딕양식 제단화는 1512년 병풍처럼 몇 개의 패널을 연결하여 만든 장식인 폴립티크로 되어 있고, 제단화 중앙 패널 가운데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성 바바라, 성 캐서린 조각상이 있으며, 양쪽 4개의 패널에는 12명의 여성 성인 조각상이 들어 있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나중에 보니 가운데 까만 옷 입은 분은 신부님이셨고 예배를 집도하셨다. 나머지 분들은 개신교 식으로 말하면 장로님들인 것 같았고, 손에 무언가 예식 도구를 들고 입장하고 퇴장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성당 바닥에 있는 이 청동판은 대성당에 묻힌 초대 주교 요르단(JORDAN)과 7명의 통치자를 기린 것이다.
나와 연짱이가 사진을 찍고 넋놓고 구경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예배 예행연습은 계속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와 연짱이를 몰상식하다고 욕하면 안 되는 것이 연습하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전부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었으며, 기본적으로 이런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매우 고요하고 홀리한 태도로 돌아보기 때문에 민폐인은 거의 없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이 예행 연습이 바로 예배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아닌 월요일이었고,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릴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다녀 본 폴란드 성당들 중 주 중 오전 시간에 예배하는 성당은 한 군데도 없었으며, 열 중 서 너 군데는 심지어 들어가지 못하도록 잠궈져 있기도 하였으니. 그래서 한 언니가 마이크 앞에서 고운 미성으로 찬양 연습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도 노래가 아름다우니 들으며 기도하자, 하고 연짱이와 자리잡고 앉기까지 하였었다.
그런데. 제단이 있는 중앙 단상 쪽에 다시 금지선을 채우더니 바로 예배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와 연짱이는 너무 놀라기도 하였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였고, 어째야 좋을지도 몰라서 엄청 당황하였다. 얼른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하였고, 관광객들은 조용히 출구로 나가거나 뒤쪽에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예배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언니 아닌 오빠의 고운 미성 찬양이 들리고, 신부님이 아마도 예배 축도문을 외우시는 것 같았다. 그 경건함에 눈물이 났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예배 형식은 다를지라도, 우리가 믿는 절대자를 향한 경건한 예배는 늘 마음을 다 해야 하는 것이라 마음이 찡하였다. 지금 이곳에서 예배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이 절대자께 잘 보이고 잘 전달되기를 함께 기도하였다.
어느 새 경건한 마음으로 착석한 사람들. 지금까지 이와 같은 경험이 없어서 몰랐는데, 보통 제단화는 예배 등의 행사가 있을 때 펼쳐놓는 것 같다. 이 때 일기장을 찾아보니 월요일이었던 것을 보면, 개신교식 수요예배나 금요예배 같은 정기예배였거나, 어떤 행사를 위한 특별예배였을지도. 경건한데 자유롭고 무겁지 않아서 매우 인상깊은 예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톨릭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신부님의 예배 축도문이 끝나고 사람들이 찬양을 할 때
조용히 성당을 빠져나왔다. 성당에서 나와 올려다 본 하늘은 높고 맑고 티 없이 파랬으며 공기는 온화하였다. 어제와 다른 날씨도, 아름다운 성당도, 파란 하늘도, 신기한 경험도 감사하였고, 무엇보다 나와 연짱이가 다른 곳 아닌 이곳 폴란드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하였다.
파란 하늘과 참 성실하게도 잘 어울리는 성 베드로 & 바울 바실리카 대성당.
유독 파란 하늘 아름다운 성당을 보다가, 문득.
'사랑하는 염개미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잘 보이길.'
벚꽃 흐드러져 흩날리고 시리도록 눈부셨던 봄의 복판에서 삶의 무게에 눌려 몹시 구부정하였던 염개미에게
도나가 보냈던 메시지가 정말이지 문득, 기억이 났다. 분홍 벚꽃잎이 햇살처럼 내리는 꽃 그늘 아래 서 있었는데도 그것이 햇살인지 빗살인지 깨닫지 못할 만큼 내쉬는 숨마저 몹시도 무거웠던 날이었다.
'사랑하는 염개미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잘 보이길.'
그런 날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언어가 나를 살리는 날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건 배은망덕한 오만이다. 늘 나를 살렸던 것은 사철 한결같이 곁을 지킨 친구들의 진심이었으니 어찌 그것을 아무렇지 않다고 말 할 수 있겠나.
"나의 도나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이 잘 보이길."
파란 하늘보다, 특별한 성당보다 더 아름답고 특별하며 성실한 나의 도나에게.
요한 바울 2세 동상이 있는 대성당 전면 쪽에서 보이는 두 개의 전면 탑 외 사진 속 동쪽의 탑 세 개는 바로크 양식의 둥근 지붕으로 되어 있다.
성당 앞 아마도 소화전.
웬지 산타 할아버지와 커플로 옷을 해 입은 듯한 소화전이었다. 누가 이렇게 한 땀 한 땀, 뜬 정성을 입혀놨을까. 참 따순 겨울 보내겠어요.
성당에서 나온 연짱이는 드넓은 말타호수에서 자전거를 실컷 탈 생각에 매우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호수에서 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이어서 그 넓은 호수 산책로를 연짱이도 나도 끝없이 걸어야 했다.
"아, 이 넓은 데 쓸데없는 실내 롤러장은 있으면서 왜 자전거 빌려주는 데가 없냐고오!"
포즈난 일정 마지막 날 넓은 말타호수에 골고루 울려퍼지는 연짱이의 절규를 모두 들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