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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락우 가는 길 (2)

한 번 사기꾼은 두 번, 세 번, 열 번 사기꾼 3 

양곤에서 므락우까지 가는 방법은 항공편으로 라카인 주의 주도 시트웨까지 간 다음, 다시 배편을 이용하여 므락우로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버스편이 있는데, 새해맞이 청소를 하다가 허리를 다친 나는 그 중 항공편과 배편을 통해 므락우까지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을 택하였다. 미리 만들어 온 계획안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라면 그러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변수라는 것이 있으니. 


"엄마, 왜 빨리 안 타? 빨리 타야 제일 편한 자리 선점해서 편하게 가지."   

"이 번 여행 국내선은 전부 좌석지정이야, 연짱이. 4년 전하고 좀 달라졌어."  

"아하!"  


이처럼 작은 국내선 비행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4년 전 미얀마 '국민 코스' 라고 불리는 곳 중 하나인 인레를 여행하였을 때에도 나와 연짱이는 국내선을 이용하였었다. 인레가 속해 있는 샨 주는 산세가 험한 곳이 많다. 


장난감처럼 작은 국내선을 보고 있으니 문득. 연짱이가 초딩 저학년이었던 십 년 전 쯤 염개미와 연짱이는 태국 치앙마이 주 '매홍손' 이라는 도시에 간 일이 있었다.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중증 멀미환자인 우리에게 항공편 외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국내선 발권을 하고 씩씩하게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에 탑승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지정석에 앉고 보니 항공기 로고가 이상하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발권한 '방콕에어'의 하와이언 셔츠 같은 로고는 보이지 않고 노란 새부리 모양 로고만 보였던 것. 노란 새부리 로고는 '녹에어' 뿐인데. 탑승까지 다 한 마당에 이 무슨 일이란 말이니. 너무 놀라서 내가 벌떡 일어나니 승무원 언니가 얼른 도도도, 걸어와서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EXCUSE ME, MISS. THIS IS BANGKOK AIR, ISN' IT? I ISSUED A TICKET TO MAEHONGSON FROM BANGKOK AIR, BUT I'M AFRAID IF THIS FLIGHT IS . . . I THINK . . . THIS ONE IS 'NOK'. I . . .  THINK I'VE MADE A BIG HUGE MISTAKE. WHAT CAN I DO ABOUT IT? (저기, 언니. 이거 방콕에어죠? 나는 매홍손 행 방콕에어 항공권을 발권했는데, 어쩐지 . . . 이거 . . . 녹 같아요. 큰 실수한 것 같은데요. 어쩌죠?)" 

"AH, PLEASE TAKE IT EASY, MA'AM. THIS IS A CODE SHARE FLIGHT. YOU'VE CORRECTLY BOARDED. (아, 진정하세요, 부인. 이 항공편은 코드셰어 항공편이예요. 탑승 제대로 하셨어요.)" 


탑승객이 많지 않은 비수기 시즌 국내선 항공편은 코드 셰어가 흔하다는 것을 나는 이 때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발권한 매홍손 행 방콕에어 항공편은 녹에어와 공동운항으로 기내 좌석 공유 중이었던 것. 그 때는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성수기도 아닌 비수기에 그 작디 작은 산골 마을까지 가는 여행객이 흔하였겠나. 설령 있다고 해도 급할 것 없는 여행객은 거의 모두 버스편을 이용하였을테지. 한국인은 나와 꼬마 연짱이 뿐이었던 작은 비행기 안에서 다양한 국적의 탑승객들의 유쾌한 웃음이 나직이 파도쳤다. 그런 일도 있었다. 말하고 나니 몹시 그립다. 내가 태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바닥 만한 첩첩 산골 마을 매홍손. 


내용이 잠깐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나는 미얀마 국내선에서는 코드 셰어를 경험한 바 없다. 미얀마 국민 코스인 양곤, 만달레이, 바간, 인레 코스는 물론, 시트웨처럼 좀 동떨어진 곳 역시 그러한 것을 보면, 미얀마에서 항공사 간의 코드 셰어는 결코 흔한 사례는 아닌 듯 하다. 국내선 항공사가 여럿 있지만,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도시를 운항하는 경우는 국민 코스를 제외하면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시트웨까지 운항하는 국내선 항공사 역시 여럿이었지만, 해당 요일과 해당 시간대에 운항하는 항공사는 거의 지정이어서, 항공사 선택의 폭은 거의 없었다. 


미얀마도 그렇고 태국도 그렇고 작은 국내선 비행기는 대부분 프로펠러 비행기인데, 이 작은 비행기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아니었다. 그게 오히려 신기해서 한 컷. 


라카인 주의 주도 시트웨 착륙 직전. 날개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데도 이 정도인 시트웨 풍경. 칼라단강과 벵갈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어 수산물이 매우 풍부한 아름다운 시트웨. 


시트웨공항. 4년 전 이용하였던 미얀마 헤호공항이 참 작다고 생각했었는데, 시트웨공항은 그보다 더 작았고 공항 밖은 확장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였다. 나름 구색을 갖춘 듯 보이려고 애쓴 시골마을 버스터미널 같은 느낌이었다. 시트웨공항에 비하면 관광객들 많이 찾는 헤호공항은 아주 많이 양반이었네. 하지만 나는 헤호공항 만큼 시트웨공항도 참 좋았다. 우리 엄마 정여사 님 기억 속에 존재하였다가 언제부터인지 옮겨온 회상의 형태로 염개미의 기억 속에도 자리하게 된 오 십 여 년 전 강릉공항의 모습이 어쩌면 이러하였을지도 모른다. 미얀마 스스로의 자의는 아니겠지만, 미얀마는 희미하게 어룽지는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립디 그리운 모습들을 많은 부분 여전히 갖고 있다. 그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미얀마가 언제까지나 지금의 순박하고 훼손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라는 다분히 이기적인 여행자의 마음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한참을 멈춰 선 채 조금은 무겁게 눌린 시선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이 나라의 작디 작은 공항을 둘러보았다. 


"엄마, 짐 찾으러 가야지. 우리 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가 그게 어디로 갈 줄 알고 벌써 넋놓고 있어."  

"어디로 가긴. 캐러셀(CAROUSEL) 위에 있겠지." 

"엄마, 여기 미얀마 깡시골이야. 이렇게 작은 공항에 캐러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4년 전 헤호공항 생각 안 나? 정말 왜 그래." 


앗, 그렇지. 여기는 미얀마지. 


"봐, 엄마. 저기 공항 노무자 아저씨가 끌고가는 거 우리 짐 아니야?" 


그랬다. 탑승객들의 수하물은 전동 캐리어에 차곡차곡 실려 공항 입구에 다시 차례차례 내려졌고, 크고 작은 짐들을 공항 노무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공항 건물 안쪽에서는 작은 테이블에 미얀마어가 빼곡히 적힌 장부를 펼쳐놓고 앉아 있던 공항 직원이 위탁 수하물표(BAGGAGE TAG)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모든 것은 손수기로 이루어졌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항 부지가 보이는 것이 다인 시트웨공항. 한 시간 남짓 나를 담고 날아온 항공편 한 대만 덩그러니 놓인 시트웨공항의 모습에 번잡한 도시를 떠나왔구나,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기대로 부푼 마음은 공항 밖으로 나가자마자 푸스스, 빠르게 꺼져버렸다. 와, 내 평생 만난 삐끼떼 중 가장 극성맞은 삐끼떼가 정신을 홀랑 빼놓는다. 그 중 한 삐끼가 므락우 행 배를 탈 수 있는 제티까지 8,000짯을 불렀다. 화가 난 연짱이가 뭐?, 하고 눈을 치켜뜨니 7,000짯으로,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7,000짯이나 해, 하니 6,000짯까지 내려간다. 원래 제티까지 뚝뚝 3,000짯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택시이므로 5,000짯 선을 예상하고 있었고, 흥정도 짜증나고 해서 그냥 6,000짯에 가는 것으로. 


"6,000짯에 순순히 가는 걸 보니 더 깎을 수 있는 가격이구만."  

역시 배낭여행 경력 12년에 빛나는 연짱이. 


사전 조사에 따르면 시트웨 출발 므락우 행 보트는 아침 7시편과 오후 3시편이 있었지만, 미얀마는 늘 모든 것이 변수이기 때문에, 오후 배편이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나는 아예 작은 보트를 전세 내는 방법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여러 루트를 통해 시트웨와 므락우 왕복 전세 보트 가격은 100불에서 최대 120불이면 매우 충분하다는 것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순박한 미얀마라며 멍청하게 마음 놓고 있었던 내가 이 때 놓쳤던 것이 있었으니, 운송 수단을 소유하고 있거나 운행하고 있는 자들의 나쁜 행태는 어느 더운 나라든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즉, 그곳이 태국이든 캄보디아든 혹은 미얀마든, 그리고 운송 수단이 택시가 되었든 뚝뚝이 되었든 개조트럭이 되었든 혹은 시트웨 특성상 보트이든, 더운 나라에서 운송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대부분'이라는 표현은 매우 순화된 것이다. 경험상 '98.9 퍼센트의' 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크고 작은 돈에 오염되어 모르는 타인을 후려먹는 자들이다. 물가대비, 서유럽 사기꾼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택시 기사는 제티 가는 길에 배주인에게 전화를 하여 그 놈에게 우리를 넘겼는데,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만난 운송 수단을 갖고 있는 더운 나라 사람들 중 그 배주인이 최악이었던 것. 몇 만짯 단위를 아주 우습게 아는 통 큰 악당이었다. 그 작자는 처음에는 편도 120불을 불렀으나 씨도 먹히지 않자 금세 말을 바꿔 왕복 150불을 불렀다. 그러면서 계속 하는 말이 돌아올 때는 정부 페리를 타면 된다고. 대놓고 돌아오는 편은 돈 다 받고 떼먹겠다는 말이잖나. 내가 한꺼번에 지불할 수 없다고 하니 먼저 100불을 내고 시트웨 돌아와서 50불을 내라면서 한꺼번에 다 내면 120불로 깎아주겠다고 하였다. 관광객을 아주 멍청이 호구로 아는 웃기지도 않는 작자였다. 내가 50불을 먼저 내고 시트웨로 돌아와서 100불을 마저 주겠다고 하였더니 관광객은 믿을 수가 없다고 빈정거리기까지. 그럼 나는 너를 어떻게 믿고? 너는 관광객인 나를 못 믿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대놓고 사기꾼인 너를 못 믿는 건 잘못이구나. 그럼 협상결렬, 이라며 돌아서는 내 등 뒤로 그래봐야 므락우 가는 배는 내 것 뿐이야, 하며 얼마나 빈정거리던지. 나는 어찌하여 힘없는 아줌니일까, 화가 났다. 내가 건장한 격투기 선수였으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사기꾼 시키, 라고 웃으며 인적없는 바닷가로 끌고 가서 조용히 수장시켜줬을 것이다. 거래의 전제조건은 상호신뢰라는 것을 철저히 무시하는 상도덕 따위 가볍게 말아먹은 사기꾼. 그 작자의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튀어나온 배는 자의적 게으름으로 미얀마와 미얀마 물가에 대한 이해 없이 여행을 시작한 탓에 타의적으로 무른 호갱님이 된 오만 나라 관광객들 후려서 나온 애먼 큰 돈 열 번, 백 번, 만 번 잔뜩 주워먹은 탓일테지. 호갱님의 사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려는 이후의 여행객에게 그것은 부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그와 같은 사례가 쌓이면 부당한 거래는 당연한 선례로 자리잡게 된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옳지 않은 선례를 하나 더 쌓을 수는 없다. 


"이 봐,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200불을 주는 한이 있어도 네 터진 입으로는 1짯도 안 넣어줄거야, 알아? 이 상도덕 따위 말아먹은 사기꾼 시키야." 

"당연하지, 엄마. 한 번 사기꾼은 두 번, 세 번, 열 번도 사기칠 수 있는 사기꾼이라고." 


아주 또박또박한 발음의 한국어를 그 작자의 얼굴에 꽂아준 뒤, 콧김을 훙, 내뿜는 연짱이와 비장하게 돌아섰다. 궁지에 몰린 타인의 상황을 이용하여 제 배를 불리는 것들에게는 단 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선배 미얀마 여행자의 말은 이 때의 내게는 금과옥조와 같았다. 


사기꾼에게서 호기롭게 돌아선 것은 옳았지만, 안타깝게도 므락우 행 사설 보트는 오후 3시면 끊긴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밤에도 운행을 하였지만, 외국인들을 태우고 밤 시간에 므락우로 가던 보트가 좌초된 적이 있어서, 오후 3시 이후에는 보트 운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사기꾼이 말을 바꿔가며 시간을 질질 끄는 바람에 때는 이미 2시 반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고, 그만큼 나는 마음이 급하였다. 망설일 새 없이 므락우 행 제티 밖으로 튀어나가 이곳 저곳에 정박 중인 다른 배들에 므락우까지 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모두 손사래. 이래서 저 사기꾼이 그토록이나 자신만만했던 것이구나. 나는 네가 만만히 주무를 수 있는 콩떡 호갱님이 되어줄 생각은 없어. 세상에는 호락호락 말랑말랑한 관광객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 오후 3시는 이미 지나버렸고, 화가 난 내 눈에 나를 실어왔던 택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아마도 사기꾼 배주인에게 나를 넘겨주고 커미션을 챙길 생각이었던지 내게 택시비를 요구하지 않았었다. 그는 이곳 저곳 바쁘게 돌아다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전세 보트를 거부한 나를 보며, 어쩌면 그에게 콩고물이라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배로 므락우까지 가는 방법은 물 건너 갔으니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택시기사에게 므락우 버스터미널로 가자고 하였는데, 이 사람은 '버스'와 '보트' 발음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밧싸까(버스)' 스테이션으로 가자고 하니, 므락우 가는 버스는 새벽 5시에 떠나는 것 한 대 뿐이라서 가봐야 버스 없다는 말만 더듬 더듬 되풀이. 시트웨와 므락우 구간 미니 봉고가 하루에도 여러 대 있는 것을 아는데 무슨 소리니. 내가 알아서 할테니 일단 '밧싸까' 스테이션으로 가자고 하였다. 하지만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똘망한 언니도 므락우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대 뿐이고 미니 봉고는 없다고. 언니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속상해하자 언니는 여기 저기 아는 택시기사들에게 전화를 하여 므락우까지 택시비를 물어보는 듯 했다. 사실 나는 사설 보트 대절 뿐 아니라 므락우까지 택시로 갈 경우 역시 대비하고 왔기 때문에, 택시비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편도 120불이 그들의 담합 가격이었다. 여기 저기 알아본 언니의 결론 역시 12만짯(120불)은 지불해야 한다는 것.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더니 슬쩍 종이를 내밀며 생각하는 가격을 써보라고 한다. 모르는 척 70불을 적어주자 언니가 한숨을 쉬며, 이 가격으로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아, 그런다. 그럼 80불은 어때, 하고 내가 가격을 다시 제시하니 종이에 85불, 하고 적더니 나만 믿어, 하는 눈빛. 언니는 곧 나를 실어온 택시기사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택시기사는 편도 150불 아니면 못 간다고 펄펄 뛰었지만, 이 똘망한 언니는 택시기사를 어르고 달래며 내 대신 흥정을 계속 하여 결국 아저씨는 85불에 가기로.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애써준 은인이었다. 그 언니가 너무 고마웠는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거듭 당황하고 있던 탓에 나는 언니의 이름을 물어볼 여유조차 갖추지 못하였다. 이 번 미얀마 여행은 4년 전 여행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여행이었고, 언니는 그 시작점을 열어준 첫 미얀마 천사였다.  


"오늘 안으로 므락우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엄마는 엄청 긴장했어. 숙소까지 이미 다 예약해 둔 상탠데, 오늘 들어가지 못하면 그 많은 숙박비 다 날리는 거라고."

"엄마, 나는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는데. 돈이 좀 많이 들어서 그렇지 당연히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정말 세상 맘 편하고 초긍정적인 놈. 하지만 그런 연짱이도 강 위로 지는 노을 바라보며 므락우까지 배타고 유유히 들어갈 계획을 망친 보트 주인은 몹시 미웠던지, 택시기사에게 보트 주인 이름이 뭐냐고 묻고는 제 일기장에 적어놓기까지 하였다. 착한 대한민국 어린이의 미움을 산 나쁜 사기꾼 시키. 어쨌든 뱃길이 아닌 내륙으로 므락우까지 가게 되었으니, 나름 푹신한 택시 뒷좌석에 앉아 내륙여행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맘편히 누려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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