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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락우 가는 길 (1)

세상은 좁고 사기꾼은 늘 코앞에 있지 2 

언제나 그러하였듯 이 번 여행 역시 인천공항 탑승 게이트 앞에서 도나와 베니아, 토비어멈에게 출국 전 무사 귀환 약속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나의 출국 준비는 완료되었다. 며칠 전 여행 앞 둔 못난 친구 한 번 보겠다고 먼먼 우리 동네까지 온 도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꼭 가야겠니, 아픈 나를 걱정해주었다. 


"그러게 왜 꼭 여행을 앞두고 대청소를 하는거야." 

"이 맘 때 새해맞이 대청소 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뭘." 

"먼지 좀 얹고 살면 뭐 어떻다고 몸을 그렇게 혹사를 하다가 다치는 건데."  

"누가 들으면 우리집이 무슨 먼지 청정구역인 줄 알겠다."  

"그러니까 살살 하고 살라고. 게다가 이 번 여행지 중에 네가 제일 궁금해하는 곳이 지금 분쟁 중인 곳하고 가깝다면서. 내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잖아. 몸이 성할 때도 힘든 곳일텐데, 하필 지금처럼 아플 때 꼭 그런 데에 가야겠어?" 

"므락우는 분쟁지역과 차로 6시간이나 떨어진 곳인데다, 외국인 여행자의 안전 여부와 그 분쟁 자체는 솔직히 관련이 없어. 국내선 비행기 타고도 다시 배편으로 4시간 이상 들어가야 해서 가기 힘들어 그렇지 여전히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곳이야. 여행 중의 내가 늘 겁쟁이여서 그런 것일 뿐, 꼭 가고 싶어. 4년을 벼른 곳인 걸." 

"그래, 내가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더라도 연짱이와 함께 간다는 것 명심해. 알지?" 

"그럼. 늘 아이와 동행하는데 내가 위험한 여행지를 선택할 리가 없잖아. 무모한 짓은 더더구나 안 하지."


내가 가려는 므락우가 있는 라카인 주는 알려진 바대로 '로힝야' 갈등 상황이 진행 중인 곳이지만, 실제로 므락우와 로힝야 쪽은 비교적 거리가 멀다. 오히려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로힝야' 관련 문제보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정부군과 반군의 대치 상황에서 비롯된 예고 없는 폐쇄 여부가 더 큰 문제였다. 2017년 당시 라카인 주는 정부군과 반군의 대치 상황의 기미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그곳을 여행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연짱이가 그곳을 다녀온 2년 후인 2019년, 정부군과 라카인 반군의 대립으로 므락우가 외국인 출입 봉쇄지역이 되었다는 것을 다녀오신 지인분에게서 전해 듣고 꽤 놀랐었던 기억이 난다. 지인분이 므락우에 도착하여 체류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정부군과 반군의 접전이 있었고, 대치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정부에서 나온 공무원이 숙소로 지인분을 찾아와 숙소에서 므락우 제티까지, 그리고 시트웨공항 이미그레이션까지 지인분과 동행하여 확실히 므락우를 떠났는지를 확인하였다고. 미얀마에서 외국인은 기차 티켓, 버스 티켓 한 장을 구입할 때에도 반드시 여권을 제시하여야 하고, 외국인이 묵는 숙소 역시 따로 지정되어 국가의 관리를 받는다. 그런 식으로 미얀마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은 손수기로 장부에 기록되어 주 정부에 보고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막상 겪을 때는 내 돈과 내 시간을 들여 내 의지로 들어온 곳에서 억지로 쫓겨나는 참으로 어이없고 불쾌한 경험일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철두철미하게 '관리되는' 외국인이 미얀마 내부 상황에 휘말려 희생될 가능성 역시 매우 희박해지는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자유를 잃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해야 할까. 각 주마다 민족이 다른 다민족 국가로 이루어진 2020년 이전 평상시의 미얀마는 그러하였었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과 국민 전체가 군부의 강제 진압과 폭력 상황에 놓여 있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미얀마를 여행하는 개념 상실 관광객은 당연히 없겠지만, 업무차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은 물론 외국인 기자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2021년 현재 미얀마의 현실이다. 


2017년 당시 므락우는 정부군과 라카인 반군의 갈등 상황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극성스런 소매치기 흔하고 심하면 강도를 만날 수도 있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하여도 충분히 안전한 미얀마였지만, '예고 없는 지역 폐쇄 가능성 같은 걱정거리가 조금 있기는 해도 꼭 가고 싶어' 라는 말은 걱정할 도나를 위해 꾸욱, 삼킨다. 그저, 기도해줘, 라는 말만. 언제나처럼 도나가 여행 중인 나를 위해 매 순간 기도해 주리라는 것, 그것 하나 굳게 믿고 안심하고 떠난다는 것을 도나도 나도 잘 알고 있다. 꼭 믿고 염려하지 말라는 도나의 대답은 조금 남아 파닥이던 여행 전 증후군을 다독이고 진정시켜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방콕 공항 착륙 직전. 먼지처럼 많은 사람들 바글거리고 분주하여 나는 참 싫어하는 방콕. '체' 하는 일상을 떠난 사람들이 쉽게 적나라한 욕망을 풀어놓는 도시. 이곳에 애정이 있었다면 분주하여 생동감 넘치는 다채로운 도시라고 했겠지.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애정이 깃들지 않은 시선은 참 담백하고 객관적이기 쉽다. 그만큼 비난도 쉽고. 방콕 수완나품공항은 방콕 외곽에 위치해 있으니, 이곳은 방콕 외곽일 것이다. 잘 정돈되어 파종을 기다리고 있는 부지런한 물 댄 논이 가지런하기도 하지.  


방콕 수완나품공항에서 환승을 하여 미얀마 양곤 행 탑승을 기다리는 4시간의 대기 시간 동안 탑승 게이트는 EA1에서 E5로 바뀌었고, 비행기는 약간 연착을 하여 양곤 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환전부터 해야겠다 싶어서 주변 은행을 찾고 있는데, 이상한 낌새를 내보이는 아줌마가 은행은 전부 문 닫았다면서 자신이 1,300원에 환전을 해주겠다며 접근. 참 어리석게도 은행이예요, 하고 물으니 당연히 은행직원이라고. 


"엥? 은행직원이 무슨 삐끼처럼 파견근무를 다 나오나, 이 늦은 시간에? 4년 만에 와서 그런가?" 

"엄마는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늦은 시간에 어떤 은행에서 직원을 파견근무 보내. 게다가 방금 수하물 찾는 곳 옆 은행에서 1,340원대 환전율 보고 나왔으면서 느낌이 안 와? 저기 사람 많은 데는 은행 아니면 뭐야, 그럼." 


그랬다. KBZ은행은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도 환전을 하고 있었던 것. 그토록 명명백백한 증거가 코앞에 있는데도 아줌마는 매끄러운 얼굴로 공항 내 은행은 전부 문 닫은 상태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뭘까, 이 아줌마의 당당한 거짓말은. 


"엄마, 내가 늘 말했지. 세상은 좁고 사기꾼은 항상 코앞에 있다고. 엄마는 진짜 혼자 어디 다닐 생각은 하지도 마, 인제." 

"미얀마 사람들 4년 새 살림살이 엄청 각박해졌나 보네. 뭐 그래도 환율 금액에서 뒤에 남은 우수리 잔돈만 챙기는 정도면 사기라기보다 커미션 정도라고 봐줘야겠지?"  

"작은 액수라도 사기는 사기지, 엄마. 엄마가 맨날 하는 말이잖아. 바늘도둑, 소도둑이 어디있어. 도둑은 그냥 도둑인거라고. 바깥 땡볕에서 비 맞은 것처럼 땀 흘리면서 일하는 언니들 생각해 봐. 이 더위에 시원한 공항에서 완전 불로소득 올리는 거잖아, 저 아줌마." 


참 한결같이 기준 잣대 엄격한 연짱이. 아이의 시선은 조금 어릴 때나 조금 큰 지금이나 그른 데가 없다. 세상에 큰 도둑, 작은 도둑이 어디 있나. 남의 것 탐하는 도둑은 액수나 건수가 크든 작든 그냥 도둑인거다. 일반적으로 공항에서 환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시내에 비해 환율이 터무니없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곤 공항의 달러 환율은 시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양곤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국내 도시로 이동하는 나와 같은 여행자들은 양곤 공항에서 꽤 많은 액수를 한꺼번에 환전하는 일이 흔하다. 그러니까 환전액수가 커질수록 양곤 공항 사기꾼 아줌마의 커미션을 가장한 사기 액수는 우수리 잔돈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된다는 것. 게다가 미얀마 물가 대비 몇 천 짯은 미얀마 중, 소도시 노상에서 고되게 일하는 노동자의 하루 수당을 웃도는 큰 돈이다. 노천 플라스틱 의자나 야시장 구석에 앉거나 서서 무언가를 먹는 것을 질색하는 1 퍼센트만 빼면, 시야 넓고 판단력 빠르고 느긋한 연짱이는 99 퍼센트 옳다. 별난 엄마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고 3을 앞두고 남들은 가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머나 먼 타국 깡시골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생고생을 앞두고 있는 훌쩍 큰 연짱이. 잠깐 울컥, 하였다. 


므락우로 이동해볼까,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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