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므락우 가는 길 (3)

시간 나면 세상도 구하는 한국 아줌마는 핑크지  

시트웨 시내를 벗어나 생면부지의 라카인 땅 깊숙이 들어가니 왜 므락우를 숲에 둘러싸인 곳, 또는 숲 지나 더 깊은 숲이라고 표현하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농지나 휴지 뒤 배경은 온통 초록 숲이었다. 또한 가는 곳 마다 아스라한 산능선이 따라다녔고, 그러면서도 곳곳에 구불한 샛강이 들어와 흐르는 매우 신기한 곳이기도 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내 눈으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배편으로는 느낄 수 없는 육로 여행의 장점이구나, 싶었다. 


므락우 가는 길은 도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곳이 공사 중이었다. 말그대로 공사를 하지 않는 구간을 찾는 것이 훨씬 쉬울 지경이었다. 어느 구간 공사장 즈음에서 아저씨는 이제부터 므락우라고 말해주었다. 그 곳에는 우리 연짱이보다 어려보이고 체구도 더 여린 여자아이들이 길 한가운데 박혀 도로 포장을 방해하는 큰 돌을 곡괭이로 깨며 땅을 평탄하게 고르고 있었다. 내 새끼 또래의 남의 집 귀한 딸들이 험한 일을 하는 것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하기에는 많이 고된 일인데도 저희들끼리 웃으며 해맑은 것을 보니 더욱 그러하였다. 모계사회니 부권중심사회니를 떠나 나라가 못 살고 힘 없으면 여자들이 더 고생하는 건 맞다. 가늘고 어린 딸들이 땡볕에 피 같은 땀 흘리며 깔아놓은 길 위를 "How pitiful!" 어쩌고 하며 적선하듯 아무 데서나 잔 돈푼 던지고 가는 관광객은 드나들지 않기를. 아이들이 맞이할 미래는 한없이 밝기를 기도해주었다. 


이미 수확을 마치고 다음 번 파종을 기다리는 빈 논. 이 순박한 나라의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배설된 관광객의 푼돈에 찌들어 악다구니하는 일 없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숙소에 도착하여 아저씨에게 버스터미널을 거쳐 므락우까지 우리를 데리고 다녀준 것 포함 90불을 지불하였다. 꽤 큰 돈인데도 그는 돈을 받으면서 매우 떨떠름해하였다. 오지게 담합을 한 가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지불하였지만, 그것도 'TOO MUCH' 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예약한 숙소는 예상대로 가격대비 성능비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곳이었다. 수도 양곤이나 관광지로 알려진 만달레이, 바간, 인레와 같은 도시들은 그나마 덜 하지만--사실 이들 도시도 옆 나라 태국 관광지와 비교가 어렵기는 마찬가지-- 미얀마처럼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한 나라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4년 전 미얀마 여행을 통해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지불한 돈이 무색한 청소 상태는 내 몸이 조금 힘들면 개선이 가능하지만--사실 이 전 투숙객의 흔적으로 더께가 진 화장실 바닥과 변기를 최소 내가 묵는 동안만이라도 맘 편히 사용할 수 있게 내 손으로 청소하는 건 그저 먼지나 털고 마는 정도는 아니어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룸 컨디션이나 조명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이어서 매니저를 호출하였다. 체크인을 해주던 매니저는 그 새 어디 가고 수습 매니저(?)가 극성맞은 한국인 아줌니를 맞았다. 


"오빠, THE LIGHT IN MY ROOM IS TOO DIM TO READ. (방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뭘 못 읽겠어요.)" 

"TOO DIM?" 

"응, THE LIGHTS ARE VERY LOW. UM, I MEAN THE ROOM IS TOO DARK, SO I CANNOT READ BOOKS. (조명이 약해요. 그러니까 방이 어두워서 책을 못 읽는다고요.)" 

"AH, TOO DIM."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작은 배움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반짝이는 아이의 진지하고 까만 눈동자에 마음이 울컥, 하였다. 이 전 미얀마 여행 중 숙소에서 만난 아이들도 그러하였고 캄보디아 숙소의 아이들도 그러하였고, 유독 되바라진 관광지를 벗어난 곳의 아이들은 배움에 진지하였다. 또한 함부로 공짜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섣부른 선심을 요구할 줄도 몰랐다. 진지하게 일하다가도 아이답게 웃었고, 정당한 대가는 반드시 합당한 노동 뒤에 따른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행위 없이는 대가 역시 없다는 것, 그러니까 노동의 신성함을 거창한 설명 없이도 충분히 보여주는 아이들의 선량한 얼굴이 나는 한없이 좋았다. 그 건강함이 일회용 관광객의 싸구려 선심에 함부로 구겨지고 오염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고통인 터라 나는 더더구나 더운 나라의 관광도시에 가지 않는다. 나와 내 동생을 모델로 사진을 찍고 돈을 달라며 만들어 낸 웃음을 짓고, 너는 돈도 많으면서 왜 이 작은 물건 하나 사주지 않느냐고 고래 고래 따지던 아이들을 보며 절망하였던 캄보디아 첫 여행의 공포와 서글픔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극악스러울만큼 되바라진 아이들의 얼굴 뒤에는 어린 자식들을 이용하여 편하게 푼돈 나부랭이 앵벌이 시키는 부모가 있고, 그러한 고착과 악순환에는 생각없이 싸구려 사탕이며 푼돈을 베푼 기름진 관광객의 뒤룩뒤룩한 노고가 있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들의 배려도 생각도 없는 행동이 미워서 이런 식으로 언급하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 몬 국가이지 소수 관광객의 탓이 아님을 잘 안다. 그렇지만 아스팔트 바닥의 작은 틈새 땅에서도 노란 민들레가 자라듯, 만연한 빈천, 그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같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회구조의 결과물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나 교육의 기회를 열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총명한 아이들 또한 드물지만 공존하는 곳 역시 그곳이다. 그 똘망진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더운 나라의 덜 알려진 동네들을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자꾸만 가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므락우는 관광객의 양심 없는 편의와 이기주의적 의도에 따른 가치 없는 작은 돈에 오염되는 일 없기를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기도하였다. 또한 자국민을 오히려 핍박하는 미얀마 정부에 근본적인 '환부 도려내기'가 꼭 이루어지기를 마음 깊이 염원한다. 


그러는 사이, 매니저가 나타나 친족 마을(CHIN VILLAGE) 투어를 제안하였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당연한 코스라며 거의 확신에 찬 어조의 강매였다. 친족 마을은 얼굴에 문신을 한 할머니들이 사는 소수민족 마을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므락우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 코스이자 관례가 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소수 민족 마을은 절대 가지 않는다. 우리네와 다를 바 없이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늙고 죽는 사람들의 동네가 아닌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마을에 자의 혹은 타의로 갇혀 사는 사람들을 소위 '구경'하는 마음이 유쾌할 수 있을 리가. 무어라 갖다 붙이고 미화를 하여도 사람 동물원일 뿐인 곳을 둘러보는 마음이 좋을 수가 있겠나. 


"우리가 계획대로 배를 타고 시트웨에서 므락우에 들어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투어가 아니면 레이묘 강 풍경을 따로 볼 기회가 없어. 어떡하지?" 

"그럼 예전 인레에서처럼 보트 하나 수배해서 엄마하고 나만 타고 관광지 아닌 일반 마을에 가자고 하면 안되나?"

"인레는 대체로 보트 투어 시 들르는 데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중 가기 싫은 곳을 빼는 게 가능했지만, 아예 새로운 곳을 가자고 하면 얘기가 달라질 걸.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매니저가 일반 투어 가격보다 훨씬 바가지 씌울 게 뻔하고, 들르는 데가 일반 마을 아닌 관광지여도 막상 우리는 잘 모를 수도 있고, 또 이미 다녀온 것을 두고 환불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엄마, 그 사기꾼 배 주인 생각할수록 화가 나."  


조금 생각하다가 그러마, 하니 매니저는 점심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아무 거나 상관 없다고 말하려는데, 옆에 서 있던 연짱이가 씩씩하고 또박또박하게 '국수 싫어'라고. 어쩌다 바지락 칼국수만 가끔 먹는 아이는 더운 나라국수를 질색하는 편이다. 미얀마에서 국수가 싫다니 어쩌냐며 두 오빠가 웃는다. 나는 '난난빙 마테바네(고수는 빼 줘)' 라고 말하였는데, 내 발음이 이상했는지, 아니면 그런 표현을 굳이 미얀마 말로 하는 내가 재미있었는지 둘 다 엄청 웃었다. 안타깝게도 연짱이와 나는 고수가 들어간 음식을 못 먹는다. 여행하는 국가마다 고수는 빼 줘요, 라는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싫어한다. 호갱님에게서 두둑한 커미션을 약속받은 매니저 오빠는 만족스럽게 돌아갔고, 수습 오빠는 방의 조명을 교체해주는 대신 핑크 돌고래 스탠드를 가져다 주었다. 


"오빠, PINK DOLPHIN? 아줌마 LOVES PINK. IT MAKES ME AVAILABLE TO READ BOOKS, AND WRITE A DIARY AND LETTERS TO MY FRIENDS WHILE I AM STAYING HERE. I OWE YOU. THANK YOU. (핑크 돌고래야? 아줌마는 핑크지. 얘 덕분에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친구들한테 편지도 쓰겠네. 고마워요.)" 

"아주마?" 

"응, 아줌마. '오빠'는 알면서 '아줌마'는 모르는구나. 아줌마는 나처럼 결혼한 여자를 말해요. 딸도 있고 아들도 있고 남편도 있고. 한국 아줌마는 힘도 세고, 용감하고, 무섭고, 시간 나면 세상도 구하지요."


내 말이 재미있었는지 아이는 나를 보며 훗, 웃었지만, 연짱이는 이 아줌니가 어디서 순진한 청년에게 사기를 치냐며 내 등을 찰싹 때렸는데, 그게 또 우스워서 셋이 까르르, 웃었다. 부지런하고 똘망한 아이의 선선한 웃음에 더께 앉은 방의 묵은 때와 열린 옷장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던 모기떼에 찌푸렸던 마음이 풀렸다. 아이는 어쩌면 이후 들를지도 모르는 한국인 숙박객에게 '아줌마'의 용도를 써먹을지도 모르겠다. 


평생 할 일 없을 줄 알았던 관광 마을 투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앞둔 심란한 마음을 꼭꼭 여미며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마감하였다고, 그 날의 일기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 03화 므락우 가는 길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