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아이, 김은영

잊힌 시간의 조각들 — 말해지지 못한 존재와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흑백의 흐릿한 사진.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벽에 기대어 서 있다. 아이의 모습은 배경과 희미하게 섞여 있어 존재가 지워진 듯한 느낌을 주며, 빛과 어둠의 경계에 놓여 보호받지 못한 외로운 존재의 잔상을 보여준다.]






그때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는 철저하게 내 삶에서 그 일들이 없었던 사람처럼 살았다.

잊힌 듯했고, 그렇게 부정하고 살다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접수 마감일을 며칠 남기지 않았을 무렵, 심란한 마음에 혼자서 관련 사건들의 검색하다 부산일보 웹사이트에 닿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창이 있었다.

순간, 현기증을 몰려왔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 삶에서 그 일들을 지우기 위해 수십 년을 외면해 왔는데 저 창에 이름을 입력하면

지워낸 듯한 과거가 드러날 것만 같았다.


두려움과 기대.

그 사이에서 며칠을 망설이다

마침내 이름을 입력했다.


'김은영'


내가 9살일 때 형제복지원 안에서

외롭고, 무섭고, 고통스러웠던 3년을 살았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허용되었던 이름.

내가 아니었던 이름.

그 안에서 나를 증명해 주던, 단 하나의 이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엔터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용히 깜박이는 커서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록상 나는 거기에 없었다.


1,000일 넘는 시간 동안 그곳에서의 고통을 새기듯 버텨낸 내 몸이 있고,

가족이 그리워 침대에서 입술을 틀어막고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던 내 기억이 있고,

그 숱한 지난한 밤을 고스란히 견뎌낸 내가 이렇게 실존하는데.

기록은,

나는 그곳에 없었다.



"형제복지원"

그 이름은 오랫동안 내게 '침묵'으로 존재해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일 뿐,

세상은 내게 온전한 시선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저 자극적인 뉴스거리 중 하나로 소비되었을 뿐이다.


부모님이 나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하이에나처럼 몰려드는 기자들이 수시로 집을 찾아왔고,

부모님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한 달 가까이 외갓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의 온전한 나로 있기까지

그 사회적 낙인과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더 해맑은 아이, 더 평범한 청소년, 더 보통의 어른처럼 살아야 했다.


그 가면 뒤에서

불쑥불쑥 휘몰아치는 기억들이 나를 덮치면

삶의 의지가 꺾였고,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졌고,

신체에 병증이 나타나며 그 어둠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


지워진 존재, 지워진 이름.

나는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했기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날을 떠올려 본다. 지워지기 전의 나를.




초등학생이었다.

양갈래 머리를 땋은 3학년 여자아이.

학교를 마치고, OO공원 앞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를 포함한 사촌 형제들은 모두 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오빠, 언니, 나도 자연스레 그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여겼다.

부모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자식을 걱정하며 기존의 학교를 고수하셨으리라.


그래서 새로 이사한 집 근처 초등학교를 두고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동네가 막 형성되기 전 무렵에 새롭게 지은 집으로 이사한 터라.

거리가 꽤 있던 정류장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15분쯤 걸으면 집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육교 아래로 걸어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왼팔로 내 목을 휘감아 조였고, 숨이 턱 막혀왔다.

오른손으로는 수건 같은 것을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 순간, 공기와 소리가, 세상이 동시에 무너지는 듯했다.

나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눈을 떴을 땐, 낯선 도시,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그리고 ‘부산역’이라는 간판.

나는 거기 있었다. 왜였는지,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다음은 경찰서.

그다음, 지프차.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 높은 제대로 끌려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 본 것은

커다란 철문과 성벽처럼 둘러쳐진 높은 담이었다.

그 위로는 깨진 유리병 조각들이 가시처럼 빛을 반사되며 빛났고,

덩굴처럼 철사가 그 위를 휘감고 있었다.


기억은 거기서 또렷해졌다.

그리고 이후로의 기억은

한 장 한 장, 몸에 각인된 감각과 공포로 남았다.



나는 어느 사무실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던 짙은 눈썹의 남자.

그의 옷과 모자에는 ‘중대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온몸에 담배 냄새가 풍겼고, 수염이 거뭇했고, 눈빛은 차가웠다.

책상 옆에는 야구방망이와 고리가 달린 얇고 기다란 몽둥이 하나가 눈에 띄게 놓여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느닷없이 파일을 들고 내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다시 이름을 물었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몰랐던 나는 겁에 질려 같은 이름을 다시 말했고,

이번에는 양쪽 뺨을 내리쳤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양손을 모아 빌며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벌겋게 달아오른 귀와 얼굴을 부여잡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사이.

그는 말했다.


“김은영. 이제부터 니 이름은 김은영이다.”


그날,

나는 존재에서 삭제되었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이 나를 찾으러 왔을 때

서류철에 진짜 내 이름은 없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나가려다 말고,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들에게 간절히 말했다고 한다.

“한이 되어 그런다, 아이들이 있는 곳을 한 번만 둘러보고 갈 수 있게 해 달라.”

절절한 하소연에 보초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으로 그곳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기에 받아들여졌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도

그 어디에선가 지워진 채로 김은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그곳을 찾았던 부모님이

실랑이를 벌이며 나를 데려 나올 수 있었던 시간은 자정이 훌쩍 지난 뒤였다.



그 이름은

나를 보호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명령과 통제,

관리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때로는 번호로,

때로는 그 이름으로 불리며

덜 맞고, 덜 기합 받기 위해나는 그 이름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오직 동물적 감각만이 몸에 각인된 김은영으로.


그 이후의 시간은

무질서한 폭력과 공포,

허기와 생존에 대한 혼돈이 켜켜이 쌓인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을 버텨낸 ‘김은영’

지금도 기록 속에는 없다.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 오래도록 버려야만 했던,

그 지워진 이름을 오늘 나는 불러낸다.


상처받고, 얼어붙은 그 아이를 세상으로 이끌어,

따뜻하게 보듬고 조심스레 녹여 내보려 한다.


나는 오래도록 지워지길 바랐고,

그만큼 오래 지워야 했던 그 아이의 이름을

이제야 진심을 담아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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