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시간의 조각들 — 말해지지 못한 존재와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양갈래 머리를 한 어린 여자아이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반으로 갈라진 팥 찐빵을 양손에 들고 행복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 찐빵에서 나오는 빛이 아이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으며, 배경은 아련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처리되어 추억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본 글에서는 당시의 추억과 감각을 살리기 위해 현재 표기법과 다른 옛 표현(예: 찹쌀 도너츠, 빠다코코넛)을 사용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먹방 유튜버 쯔양이 면 요리를 먹는 영상을 봤다.
짜장면, 짬뽕, 우동, 온갖 면들을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 나도 모르게 “우와, 맛있겠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말을 내뱉고 한참 뒤, 나의 변화를 뒤늦게 알아차린 나는 혼잣말을 했다.
‘아, 이제는 정말 이 음식에 아무런 감정도 없이 반응할 수 있게 되었구나.’
예전에는 ‘짜장면’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속이 더부룩해졌다.
형제복지원 안에서도 가끔 ‘특식’이라는 이름으로 짜장면을 배급하곤 했다.
그곳에서 직접 뽑은 면에 양파 몇 조각, 감자 몇 조각이 섞인 검묽은 소스가 얹어졌던 그 음식. 그곳에선 그걸 짜장면이라고 불렀다.
쌀의 질이 좋지 않았고,
쪄낸 밥은 특이한 냄새를 풍겼으며,
반찬들도 열악했던 그곳에서 먹던 짜장면은 특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바깥세상에서 먹던 그 맛은 절대 아니었다.
그곳에는 부모와 함께 끌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같은 소대에 얼굴이 흰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잡혀 왔다고 했고, 어느 날 식당에서 배식을 받다가 주방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마주쳤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몰래 작은 것을 받아오곤 했다. 기름이 살짝 얹힌 고추장, 익힌 감자나 생감자, 소금 같은 것들이었다.
그 아버지도 잡혀온 입장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며 눈치껏 융통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리라.
그때 그 친구에게 건네받은 한 개의 생감자를 배가 고파 소금에 찍어 먹었던 적이 있다.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감자처럼 느껴졌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그 기억이 떠올라 엄마 몰래, 생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어본 적이 있다. ‘으, 이게 무슨 맛이야’하며, 인상을 찡그리며 바로 뱉어냈다.
그 맛은 결국, 감자 자체가 아니라
배고픔과 허기가 만든 맛이었다.
그 아이를 통해 조금씩 나눔을 받아먹었던 그 음식들. 그건 정말 산해진미보다 더 큰 위로였다.
짜장면 또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중국집에 가면 늘 우동이나 짬뽕을 시켰다.
친구들이 “짜장면 안 좋아해? 너는 짜장면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야” 하고 말하면,
그냥 “응, 짜장면은 무슨, 짬뽕이 최고야”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한민국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대명사 음식으로 통하는 짜장면.
다시는 엄마, 아빠 우리 가족을 볼 수 없다는 절망 뒤 돌아온 집이었기에,
짜장면은 나에게 그곳의 공기, 그날의 표정, 냄새, 분위기…
그 모든 것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빠다코코넛이라는 과자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배급되던 과자 중 하나. 누군가 나에게 먹어보라고 건네면, 나는 한사코 사양했다.
달고 기름지고 입에 눅진하게 남았던 그 맛.
그걸 받았던 날의 공기, 날 선 긴장 속 들떠 있는 아이들의 표정.
나에겐 이 과자가 애처로움과 배고픔으로 각인된 과자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내가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오직 나 자신만의 의지 덕분만은 아니었다.
형제복지원의 기억 이전,
나를 따뜻하게 품어줬던 맛을 기억 속 그리움의 온기로 그 맛이 내 안에 살아 있었기에, 나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소풍 가는 날이면 참기름 냄새에 눈을 떴다.
엄마가 새벽부터 김밥을 싸셨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엄마 옆에 엎드려
양손으로 턱을 괴고 김밥이 완성되길 기다리던 어린 나.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엄마는 웃으며 김밥을 썰었고 그 꽁지를 하나씩 입에 넣어 주셨다.
어린 새가 모이를 받아먹는 듯한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
그 온기, 그 맛 하나가 나를 얼마나 오래 데우고 있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마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찹쌀 도너츠, 야채튀김, 발효된 찐빵…
매번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엄마는 부엌에 서서 정성스레 뭔가를 만들어내셨다.
어느 날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집안에 퍼져 있었고,
방 안엔 갓 튀긴 야채튀김과 찹쌀 도너츠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우유를 따라 함께 건네며,
“배고프지? 얼른 먹어” 하고 웃으셨다.
그 웃음엔 늘 고단함보다 따뜻함이 먼저 배어 있었다.
또 어느 날은 엄마가 주전자 하나를 들려주며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주전자를 빙빙 돌리다 신나게 받아오면,
어느새 안방 아랫목에선 찐빵이 발효되는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이윽고 엄마에게 건네받은 찐빵을 반으로 가르면 먹음직스러운 팥 앙꼬가 가득했다.
그 따뜻한 온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먹던 그 감각은 지금도 손끝에 남아 있다.
그 음식들은 내게 ‘맛있는 음식’이기 전에
엄마의 체온, 엄마의 목소리, 엄마의 손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음식들의 이름을 들으면 맛보다 먼저 엄마의 사랑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 아빠.
아빠는 항상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실 때면
양손 가득 검정 봉지에 무언가를 사 오셨다.
그래서 항상 우리 삼 남매는 오늘은 아빠가 뭘 사 오실까? 설레어하며, 각자가 바라는 음식을 꼽아보기를 즐겼다.
동글동글 맛 좋았던 시장 만두,
시원하게 베어 물던 제철 과일들,
그땐 귀하디 귀하던 바나나와 파인애플,
사이즈 큰 시장 통닭까지.
아빠가 웃으며, 큰 검정비닐봉지에서 기름기가 묻어있는 종이봉투를 꺼내 반을 가르면, 삼 남매의 탄성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통닭 한 마리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 나에겐 닭을 먹을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그 통닭을 먹을 때면
엄마와 아빠는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두 분 다 거의 드시지 않으셨다.
그러다 따뜻하게 바라보던 그 시선 속에 엄마를 바라보며 아빠가 살코기를 뜯어 엄마 입에 넣어 주면, 엄마는 항상 아빠에게 닭날개를 건넸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날개 먹으면 바람난다. 그러니 너희는 먹지 마라. “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알게 된 건,
닭날개가 가장 영양가가 좋다는 민간속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먹을 것을 양보하시던 부모님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다정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빠는 또 종종
출근 전에 우리 삼 남매를 깨워, 집 뒷산 울창한 숲길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어린아이라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울산의 백양사 인근 함월산 어귀였던 듯하다.
삼 남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재잘거리는 소리로 길을 채웠고,
나는 막내라 아빠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아빠와 눈이 마주칠 때면
언제나 환한 웃음을 지어주셨다.
가는 길 중간에 양궁터가 나오면 아빠는 우리가 활을 한 번씩 잡아보도록 해주셨고,
정상에 다다르면 국민체조 음악이 울려 퍼졌다. 우린 그 소리에 맞춰 깔깔대며 몸을 움직였다. 그런 뒤 보상이라도 하듯 산 중턱에서 아빠는 따듯한 콩국을 사주셨다.
어린아이 입맛에 짭조름한 콩국은 "이걸 왜 먹지?" 하는 맛이었지만, 이제는 아빠가 왜 그 고소하고 따듯한 콩국을 건넸는지도 안다. 그 모든 장면이 아직도 따뜻하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
숲길, 바람, 땀방울, 웃음, 손, 그리고 아빠의 얼굴까지.
언어, 신체 폭력이 일상다반사인 그곳.
다음날 누구 하나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곳. 오늘은 제발 덜 맞고, 덜 기합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눈뜨게 되는 아침을 지나, 새들도 잠든 깊은 밤 오늘도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밀려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그 외롭고 지친 어린아이를 유일하게 지탱하게 해 준 기억들이었다.
너무 일찍 지병으로 엄마와 아빠를 잃은 이후에도, 사춘기 시절 그리고 갈피를 못 잡던 성인기 시절에도, 사는 게 힘들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기억들은 언제든 되살아나 흔들리는 나를 붙잡고 견디게 해 주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맛이라는 감각이 얼마나 많은 것을 데려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굳건하게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를.
어떤 맛은 나를 찌푸리게 만들었고, 어떤 맛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나를 살게 했습니다.
그 시절을 말하기보다, 그 시절을 견디게 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맛을 기억하고 있나요?
어떤 기억이 오늘의 당신을 살아가게 하고 있나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